한국철학사상사
1. 들어가며
본 글은 고려말 조선초의 인물들을 통해 시대배경․철학이념․역사적 의의를 서술하는 과제로 작성한 글이다. 주홍성, 이홍순, 주칠성이 지은『한국철학사상사(1993)』를 교재로 수업하고 있으며, ‘제 4장. 려말 선초의 철학사상’을 중점으로 인물 정도전을 택하여 서술하려한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의 유물론적 역사관과 인물과 시대를 다루는 방법론에 대해서도 고찰해보려 한다. 그럼과 동시에 삼국시대의 유물론적 자연관에 대한 부분을 서술하고, 유물론-기후과학적 역사관에 대해서도 잠시 짚어본다.
2. 유물론적 역사관
이 책의 저자들은 독특하게도 한국철학사를 ‘역사적 유물론’ 사관을 통해 서술하였다. 옮긴이 김문용 ․ 이홍용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아마도 필자들은 이미 정식화된 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전통철학 이해방법에 따라 우리의 철학사를 이해함으로써 관점의 통일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각 사상유형의 전통적인 표현 형식을 넘어서 그것의 실질적 ․ 사회적인 의미를 추출하고 이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추상적 사유의 발전과정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8p).”
이 방법론은 흥미롭다. 보통 대개의 철학사 서술이 관념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나 시대배경, 사회․경제구조는 읽는 독자가 다른 텍스트들에서 읽어와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런즉, 철학사는 사유의 발달과 사조의 영향관계만 그릴 수 있을 뿐이었으니, 자칫 공허해지기가 십상이었다. 하지만 역사적 유물론 사관은 사회․시대․경제적 상황과 맥락을 보다 풍부하게 짚어낼 수 있다. 철학 관념은 경제적․사회적 토대에 분명 상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방법론처럼 역사를 온전한 유물론 - 계급투쟁의 관점으로만 사유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 유물론은 시대배경과 사조의 이해 측면에서 폭넓게 사용되었고, 이를 통해 “철학사를 ‘계급투쟁사의 반영’이라는 측면보다는 ‘인류 인식의 발전사’라는 측면에 비중을 두고(8p)” 있다.
그럼에 이 책은 한국의 철학을 고대 노예제 시대의 생산관계부터 다루고 있다. 물론 소유의 등장 이후 생기는 계급관계 또한 분석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다. 유불도 사상은 모두 봉건사회 지배․지주계급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순수한 이론은, 순수한 철학은, 순수한 사조는 없다. “사상의식이라는 것은 일정한 사회적 산물로 결코 영원불멸할 수는 없는 것이다(131p).”
3. 유물론적 자연관
특히 저자들이 유물론적 자연관에 대해 다룬 부분이 흥미롭다. 저자는 삼국시대의 유물론 철학과 무신론 사상을 다루며 다음과 같이 썼다.
“삼국이 봉건사회로 들어선 이후 사회의 생산력과 과학기술은 더욱 발전하였다. 사람들은 생산활동을 하는 중에 자연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며 이아 함께 유물론적 자연관을 발전시키게 되었다(42p).”
저자의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생산활동, 즉 생산관계가 진보․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자연관이 이전의 종교적․숭배적인 것에서 유물론적으로 바뀐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샤먼과 천신숭배의 관념론에서, 자연과학의 발달에 따라 세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는 역사의 진보로 파악된다. 다음 인용구의 마지막 문장에 서 이 설명은 잘 드러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삼국시기의 무신론 사상은 주로 숙명론을 반대하는 가운데서 엿보이고 있다. 그들은 인간생활의 길흉화복이란 하늘이 안배하는, 다시 말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란 생산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자연과학적 인식을쌓아 가며, 그리하여 자연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이다(44p).”
위와 같은 유물론적 자연관이 인간의 철학 전반과 멘탈리티(mentality)에 대해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적 사유가 가지는 힘은 분명히 있고, 동양의 과학 – 유물론적 자연관은 서구의 근대과학과는 확연이 대비되는 듯 보인다. 자연의 유기체적 특질과 공진화적 토대에 위치하여 인간이 자연과 공진화하는 방식으로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하고,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살아감을 인지하는 자연관처럼 보인다. 기를 사유하는 것이, 하늘을 단지 자연상태 가운데 하나요 만물 가운데 한 가지에 불과하다 설명하는 관점인 것이다.
4. 기후과학자의 역사적 유물론, 기후과학적 자연관
유물론적 자연관에 대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 기후과학, 역사, 유물론, 자연관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흥미로운 주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계급을 중점으로 보는 (사회중점) 역사적 유물론을 확장하면 자연조건과 기후조건에 대한 고려가 가능해진다. 기후과학자 조천호 박사는 역사변천의 많은 맥이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장한다. 역사의 변천은 기후조건에 의해 결정 – 결정론은 아니고, 지대한 영향 - 되기도 했던 것이다. 조천호 박사는 조선의 건국과정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기후조건이 열악했던 14세기 초, 명나라가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워짐)그 당시 우리나라는 고려 말이었다. 1309년과 1367년에는 한여름에도 바람이 너무 차가워 사람들이 겨울옷이나 가죽옷을 입어야 할 정도였다. 가뭄마저 이어져 백성들이 기근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었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온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했고, 마침내 1392년 조선왕조를 열었다”
물론 결정조건은 아니다. 조천호 박사도 “기후변화 역시 그 자체로서 특정한 결과를 필연적으로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빙하기는 지구 평균 기온의 작은 변화도 엄청난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썼다.
그럼에도 이는 역사를 좌우하는 것이 사회조건을 넘어 자연조건에도 큰 힘이 있음을 말한다. 기후조건은 그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었다. 가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 한 번에 왕조가 갈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철학사를 볼 때 더욱 깊은 유물론적 역사관을 견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5. 려말 선초의 시대배경
10세기 고려왕조의 건립과 함께 불교는 융성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의천의 천태종과 지눌의 선종(조계종)이 크게 유행하였지만 13세기에 이르자 불교는 타락에 젖어 통치계급의 부패와 권력투쟁, 탐욕추구로와 결을 같이한다. 나라에는 망조가 일었다. 사회․역사적 조건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계급모순이 심화된다. 고려말기의 세습귀족, 불교승려, 지방의 중소지주는 갖가지 세금으로 농민들을 수탈했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집을 버리고 뿔불이 흩어졌고, 나중에는 고려 조정의 재정미달로 큰 사회적 곤경에 처하게 된다.
둘째, 통치계급의 내무모순이 격화한다. 신돈의 개혁이 실패한 후 세습귀족과 불교계 승려들이 사회․정치적으로 무궁한 권력을 누린다. 이들은 그칠 줄 모르는 토지겸병으로 말미암아 마침내는 지방의 중소 지주계급의 이익을 침해하게 된다. 이에 따라 통치계급 내부에 대립적인 파벌이 생긴다. 대농장주의 이익을 대표하는 보수파와 중소 지주계급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개화파로 나뉘는 것이다.
셋째, 고려왕조시기, 거란, 몽고, 왜구의 침탈에 몸살을 앓는다.
안향과 백이정은 이런 역사적 조건 아래서 주자학을 받아들인다. 주자학은 이색․정몽주․정도전 등의 인물을 통해 봉건질서를 재정비하는데 역할을 다한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대토지겸병의 폐단을 폭로하면서 전제의 개혁과 과전법의 시행을 촉구하였으며, 사상적으로는 객관적 관념론을 내세워 불교의 주관적 관념론에 반대하였다. 불교를 누르고 유교를 높이면서 주자학의 통치적 지위는 확고해진다. (19p, 요약)
6. 정도전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고 싶다. 그 까닭은 그의 배불사상이 유물론적 요소와 변증법적 요소를 안고 있는 까닭이다. 저자는 “어떤 면에서는 정도전이 그 당시 유물론 사상의 발전을 반영하는 측면 또한 없지 않다(20p).”고 말하고 있다.
한편으로 저자는 정주학자들의 이론에 유물론적 사상이 드러나는 까닭은 사상 자체의 속성이라기보다 관념론 비판의 위치에 서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저자는 레닌Lenin의 『철학노트』를 인용한다.
“한 관념론자가 다른 관념론자의 관념론 기초를 비판할 때는 항상 유물론적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비판할 때라든지 헤겔이 칸트를 비판할 때가 다 그러하였다(137p).”
이어서 저자는 “이색․정도전 등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이 불교의 주관적 관념론에 맞서 싸워 나가면서 보여 준 유물 변증법사상과 무신론 사상은 한국 유물론 발전사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정도전의 사상은 어떠하였는가. 그의 사상은 정주학임에도 불구하고 대립의 위치인 까닭에 유물론적 색채를 띤 것인가.
정도전의 배불사상은『불씨잡변』『심기리편』에 집중되어 있다. 정도전은 철학상으로 불교를 비판하는 것을 자신의 필생의 임무로 여기고 있었다. 그의 이론은 객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이루어졌으나, 앞서 말했듯 유물변증법적인 색채를 띠었는데, 이는 그가 불교의 ‘운명윤회설’과 ‘삼세윤회설’을 반대하며 천지만물이 모두 기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다 말하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한편, 이는 정도전이 사회개혁가이기도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 다음을 보자 “정도전(鄭道傳)이 사전 개혁에 찬성하자 이성계는 강력히 이를 추진해, 중앙에 급전도감(給田都監)을 설치하고 도의 양전(量田)을 시작하였다. 반대하는 자는 탄핵·추방하고, 1390년(공양왕 2년) 음력 9월 공사 전적(公私田籍)을 소각하여 철저한 개혁을 실시했다. 이듬해 음력 5월 새로운 전제(田制)의 기준이 되는 과전법(科田法)을 정식으로 공포하였다. 이로써 권문세족의 경제적 토대는 무너지고, 이성계 일파의 경제적 기반이 구축되었으며, 새로운 왕조의 물질적 기초가 확립된 것이다.”
정도전은 사회개혁을 위한 길과 이론적 논박의 길을 분리하지 않았다. 기성의 권력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기성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불교를 비판했던 것이다.
7. 질문
책 전반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남는다. 아래에 옮기며 글을 맺으려 한다.
1) 역사를 유물론 발전사로 보는 것이 옳은가?
2) 유물론적 역사관을 강하게 적용하여 한국철학사를 분석하는 것의 한계는 무엇인가?
3) 진보와 보수는 지배․통치 여부의 계급적 차이로 발생하는가?
* 2019.10.15, 김은규 교수의 <한국철학과 그리스도교사상> 과제로 제출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