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위기
위기다. 두 위기가 감돌고 있다. 숫자 8 두 개가 머릿속을 맴돈다. 전자의 8은 세계최고부자 8명이 세계 부의 절반을 가지고 있다는 옥스팜의 통계다. 후자의 8은 8년으로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남은 시간인 탄소예산 소모시간이다. 쌍팔의 위기이자. 쌍둥이 위기다.
마르크스가 명명백백 관찰했듯, 자본은 인간과 자연을 동시 소외시키고 동시에 파탄낸다. 결국 이 기후위기와 경제위기는 시작부터 같은 원리로 자행된 위기이다. 이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먼저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분리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 원인이 같다면 같이 해결해 나가면 될 일이니까. 결국 위기의 심화, 그리고 해결방향이 같다는 것. 위기가 기회인 이유다.
마르크스의 생태학
우연과 필연을 마음에 두고 책을 읽어나갔다. 마르크스, 과학, 생태학도 중요한 키워드였지만. 우연 속의 필연은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에피쿠로스의 편위(휘어짐)이야기.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토대를 둔 자유, 실천. 필연이 우연과 우발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생각.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힘 빼고 인생사는 법을 배운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나는 의지와 다짐에 많은 것을 의존했다면. 예컨대 의지로 모든 게 다 될 수 있다던가. 올곧은 뜻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던가.
지금은 내가 주위의 환경과 생태계에(특히 날씨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자연과 사회 속의 존재임을 감안해가야지 싶다. 그 속에서의 실천이자 변화다. 조금 더 여유롭게, 흐르는 물에 몸을 쉬이 맡기려는 것처럼 살려고 함을 말해본다. 변화란 기회가 올 때, 유기체가 우연하게 발현된 것처럼 자그마한 필연을 피워내는 일임을.
두 가지가 남았다. 첫 번째는 어느 의도와 목적에 오염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을 바라볼 때 진정한 생태학적 사유를 피워나 갈 수 있다는 점. 두 번째는 물질적인 조건들이라는 토대 위에서 인간 자유의 ‘휘어짐’을 이야기 한다는 점.
우리는 인류세의 인지를 기반으로, (과학적인 정보와 지식들을 기반으로) 어떤 휘어짐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지 싶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정신은 이 토대 인식에서 뜻 깊게 피어날 수 있지 싶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함은 중요하다. 자본주의를 가장 면밀하게 총체적으로 분석해낸 맑스의 사유가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생태학은 반 근대, 반 자본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으로 물질대사에 균열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명을 일구는 것이 어찌나 중요한가. 생각하면 자본주의의 폐악이 자연적이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음은 당연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모순과 소외는 동시에, 그리고 함께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기오염이 호흡기질병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돌고 도는, 빗방울의 여정처럼 생태계에 우리가 존재하는 한,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그 생태계의 균형을 좋으나 싫으나 지속해야한다. 그럼으로 자본주의는 미련한 것이다. 당장의 탐욕에 이웃과 터전과 미래를 팔아먹는 짓이므로.
* 2019.12.21, 남일성 교수의 <녹색프로젝트> 서평과제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