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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Feb 27. 2020

[코로나, 기후위기, 그린뉴딜] ① 코로나 사태

사회정치경제 지평에서의 위기

본 글은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글에서는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과 사회정치경제 전반의 지평에서 위기가 전염‧가중·증폭되어 맞을 국면을 다룬다. 두 번째 글에서는 코로나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 분석하고, 코로나위기와 기후위기가 같은 원인으로 초래되었을 뿐 아니라 양의 되먹임 관계임을 밝힌다. 마지막 글에서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저감과 적응’의 전환책으로 그린뉴딜을 말할 것이다.

※ 이 글은 생태적지혜연구소 미디어(https://ecosophialab.com)와 그린뉴딜한국네트워크 홈페이지(https://greennewdeal.kr/forum/view/37276)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들어가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회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 사태는 중국 때문에 벌어진 외생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자리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이제껏 한국사회를 구성해온 구조에 내재해있던 내생적인 사건이다. 피상적인 원인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에 눈을 둘 때, 자유무역과 생태계 파괴, 공장식 축산 등 기후위기와 같은 원인으로 코로나위기가 초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앞으로 기후조건의 악화에 따라 감염병이 더욱 잦고 극심해질 것이며, 이 경우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대응력과 지역사회 회복력, 공공성과 민주주의가 감소하면서 악순환의 기로에 진입한다. 우리에게는 기후위기 시대 ‘적응과 저감’을 기조로 사회 전반의 안전망 확충과 녹색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당연히 수출주도 경제에서 순환의 사회적 경제로, 이동률은 높지만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재난대비 ‘이웃사회’로의 총체적 전환을 이루어야 하며, 이 전환의 이름을 ‘그린뉴딜’이라 부르고자 한다.


위기의 고조


하루가 다르게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에 대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또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녀오며 여러 가지를 보고 들었다. 그러고는 이전까지 나의 모든 인식과 판단이 사태를 심히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써놓았던 섣부른 말들을 폐기하고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 2월 23일 정부가 위기 경보 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높이면서, 코로나 사태는 진실로 ‘심각한’ 국면에 돌입했다. 우리는 사태를 주의하여 정밀히 직시해야 한다. 마스크 좀 잘 쓰고, 손 좀 잘 씻고, 외출 좀 자제하고 식의 주의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의 향방에 주의하여야 한다.


출처: TheDigitalArtist


처음에는 사람들이 유난떠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과민반응이자 과잉대응, 불안과 공포가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지 않고 퍼져나가는 것을 분석하고 비판하려는 게 필자의 초기 의도였다. 사람들의 관심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집중되면서, 실로 해괴한 원인진단과 잡다한 소리가 난무했고, 그 가운데에서 중국인들의 식습관과 같은 피상적인 진단1과, 확진자 마녀사냥, 총체적 혐오가 일어났다. 언론에서는 경쟁하듯이 코로나만 대서특필하여 중국 유학생과 우한주민이 마치 숙주인 것처럼 몰아붙였고 사람들의 불안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사회의 다른 긴박하고 급박한 이슈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후위기는 코로나와는 비할 데 없이 심대한 위협이다. 기후위기에는 놀랄 만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코로나에는 이리 호들갑인 까닭은 무엇일까.2 코로나19 바이러스감염증의 치사율은 약 1%3다. 위험도는 실제보다 훨씬 과대평가되었고, 보건학적으로 감기 꼭 그 수준의 위험도이니, 이렇게까지 야단 떨 거는 없다는 말을 하려 했다.4


코로나는 자연적 질병이지만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재난이다

칼 폴라니(Karl Paul Polanyi, 1886~1964)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러나 치사율 1%의 코로나 위험도가 제아무리 낮다 해도,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위험은 분명 고수위 상태다. 낮은 치사율로는 현재 사회 전체에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는 ‘코로나 사태’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럼에 “야단 떨 거 없다”는 말은 바이러스만큼 빠르게 전염되는 공포와 불안을 조금도 잠재우지 못한다. 코로나는 자연적 질병이지만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재난이다. 우리의 ‘일상’에 난 균열은 점점 커지고 있고, 그 가운데 사회적 신뢰도, 경제적 안정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사회적 위험’에 대해 폴라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파시즘도 모두 다음 사실로 설명되는 현상이다. 즉 일단 사람들의 마음이 모종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면, 그 위험의 원인들이 제거되기 전에는 항상 공포가 그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어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법이라는 사실 말이다. (중략) “사람들은 경험을(공포를) 결코 기억에서 떨쳐낼 수는 없었다(K. Polanyi).”

 칼 폴라니(Karl Polanyi), 『거대한 전환(1944)』, 홍기빈 역, (도서출판 길, 2009), p.484


즉, 사회적 불안과 공포, 신뢰의 하락은 한 번 발생하면 그것이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하고 아니고의 여부와 관계없이 실재한다. 설령 그것이 실체가 없더라도, 크게 위험한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위험으로 인식하고 공포를 느끼는 순간 작게 시작된 위험은 증폭되어 사회적 위기가 된다.5 의학자들이 거듭 강조한 사실이지만 사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낮은 치사율 까닭에 크게 위험하지 않다.6 그러나 이미 이 혼돈의 정동은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염되고 있고, 심각한 악순환의 국면으로 접어든 지금, 더이상 바이러스에 의한 생명위협이 대수가 아니다. 이 위협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상존해왔지만 지금까지 비가시화되었던 다양한 문제들을 연쇄적으로 터트릴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기후위기가 영구동토층을 녹이고 열대우림을 불태워 악순환인 ‘양의 되먹임(Plus Feedback)’과정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점(Tipping point)’을 돌파하는 것처럼.



위기에 위기, 파국에 파국


역사 속에서 사회적 불안이 위험을 폭발시킨 사례는 차고 넘쳐왔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더욱 이러한 위기들에 취약하다. 칼 폴라니의 분석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자기조정시장이라는 건 안정적인 수요공급, 상호 신뢰에 기초한 ‘자유로운’ 거래를 전제하기에, 그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된다. 은행의 뱅크런을 생각하면 쉽다. 사람들이 은행에 줄 서서 차곡차곡 인출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일어 모두가 은행으로 달려가면 은행은 즉시 도산이다. 특히나 금융에 산재한 버블(위험)이 터지면 사태는 최악의 국면으로 향한다. 2008년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무분별하게 파생금융상품을 발행해 시장의 복잡성과 거래량은 확장되었는데,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위기에 위기를 곱하며 줄도산을 낳았다. 금융시장이 안전하지 않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제껏 높이 쌓아왔던 성은 와르르 무너졌고, 모든 것이 허구였음이 드러났다. 1920년대에는 철석같이 믿어왔던 금본위제의 붕괴가 사태를 파국에 파국으로 이끌었고, 결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 극우 파시즘 세력을 민주적으로 집권시킨다. 전 세계를 휘감았던 세계대전은 이렇게 빚어져 문명을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었다.


안 그래도 공포가 넘실거리는 이 시국에 이런 무서운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이 맞을까 하는 괴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미 사회에 폭넓게 퍼진 불안과 공포는, 마치 아래로 굴린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만 가고 있어 총체적 마비 수준에 근접해가는 듯하다. 사회‧정치‧경제를 막론하고 위기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 혼돈의 정동은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염되고 있고, 심각한 악순환의 국면으로 접어든 지금, 더이상 바이러스에 의한 생명위협이 대수가 아니다. 이 위협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상존해왔지만 지금까지 비가시화되었던 다양한 문제들을 연쇄적으로 터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 : 좌혜선, monster dancing#2 130x162cm 장지에 목탄, 분채채색, 2020




사회정치경제 지평에서의 위기


사회정치경제 지평에서의 위기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경제적 지평에서의 위기를 보자. 시장은 사람들의 불안 신호를 가장 빠르게 수용하여 드러낸다. 시장과 마트의 진열대가 텅텅 비었다.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주가는 폭락했고 외국자본은 발을 뺐다. (코스피지수는 21일부터 26일 사이에 18%p가 하락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금 1조 4000억을 회수하였다. 무역 길이 막히자 ‘수출형’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해고(혹은 ‘사실상 해고’)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IMF 이후 고용유연화 구조조정에 들어가, 수요와 경기에 따라 고용을 고무줄처럼 조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지금의 경제구조는 코로나 위기에 극심히 취약하다. 마찬가지로 IMF 이후 노후 불안으로 자영업자가 급증했다. (OECD 기준 25.1%인 700만 명, OECD 평균보다 무려 10%p 높다.) 이들도 장사가 마비되어 시름에 잠겼다. 몇 건물주가 임대료 하락의 ‘자선’을 베풀며 칭송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건물주인 집주인 땅주인은 오히려 상대적 (불로)소득을 얻고 있다. (2007~2016년 동안 매년 평균 GDP의 24.2%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했다.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2017) 하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은? 배달 노동자들은? 뻔하고 훤한 이야기지만 이 위험은 당장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사람들에게 깊숙하게 짙게 전가된다. 사회적 약자들은 바이러스의 위험으로부터 해고의 위험으로부터 더욱 취약하고, 발생되는 위기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가중된다. 불안과 공포는 날이 갈수록 파동을 칠 테고, IMF 이상의 경제적 여파가 사회를 얼어붙게 할 것이다. 사람들을 자가격리시킨 채.7


이것만으로도 사회적 지평의 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모든 공적기관이 폐쇄되었고, 사회적 안전장치들도 덩달아 폐쇄되었다. 경제위기와 사회위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총체적 위기로 접어듦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앞서 열거한 경제적 위험은 사회적 위험을 낳는다. 이미 해고부터가 사회적 위험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이 쌀쌀한 공기 속에서 각자도생의 철학이 더욱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는 정책실패의 가능성을 높이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출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가 극단을 횡행함에 따라 일관된 파악과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따라서 현명한 대처도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 그 점이 우려스럽다.


슬픔은 당장에 있다. 장애인, 저소득층, 노숙인, 쪽방 거주민을 비롯한 취약계층이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다.8 빈곤층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무료급식소가 중단되고, 노인 일자리도 사라졌다.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은 갈 곳이 없다. 이들은 질병에도 취약하게 노출된다.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 103명이 집단감염 되었고 그 중 무려 6명이 사망하였다. “한 달간 외출도, 면회도 없었던” 폐쇄병동과 그 바깥 세계는 철저히 분리된 공간이었고, 코로나 감염 전에 이미 ‘격리’되었던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9 중증장애인 시설인 칠곡 밀알 사랑의 집에서도 확진자가 수십 명이 속출했다. 코로나 사태가 기존의 사회적 모순과 위험을 어떤 국면으로 접어들게 하는가. 이제껏 방치된 시한폭탄들이 줄지어 터지고 있다.


정치적 위험이 곧바로 이어진다. 늘 그래왔듯 사회가 위기에 빠질 때에는 극단적인 극우세력이 등장한다. 미래통합당(구 자유한국당)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미 만사공인으로 그들이 구시대적잔존병폐적폐 세력이라는 것은 훤하고, 그것이 언제 박멸되는가의 시간문제였건만, 이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듯 더욱 극단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략만을 따지며 위기에 편승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하며, 극우주의 세력이 으레 그러듯 인종차별적이고 폐쇄적인 입장으로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을 금지하라 따위의 대안을 내놓으며 이 혼란을 넘기려 한다. 이미 특위 명에 ‘우한’이라는 지역 명칭을 넣겠다는 비상식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고집으로, 국회 코로나 특별위원회 구성을 보름이나 연기되게 만들었다.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차마 넘을 수 없고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미래통합당의 행보는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에 대한 기본적 도의도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파렴치한 작태다.”10 더욱 주의해야 하는 것은 정치적 위험이 일개 적폐 세력이 득세하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폐쇄된 지금의 국회처럼 정치가 마비된다는 데 더 큰 위험이 있다. 하루빨리 시급한 의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전환의 국면을 마련해야 하는데, 국회는 문을 닫았고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이미 의석을 차지한 기득권 세력은 이를 기회로 자신들의 수명을 늘려가고 있다.


가야할 길

이 무서운 시나리오들이 기우이길 바란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는 이 기우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글들은 앞서 열거한 이 위기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다. 코로나가 설령 잠잠해지더라도 그것은 이미 사회에 수많은 상처를 남긴 뒤일 테다. 더하여, 앞으로의 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사회를 낙후시킬 가능성이 높다. 반면교사(反面敎師)하고 교훈을 얻어 지금과 앞으로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원인에 대한 상세하고 섬세한 분석이 필수적이고, 근시안적 지평이 아닌 장기적 계획을 형성해야 하며, 사회 전반을 위기에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저감과 적응의 전환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이 글에서는 아직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엇이며, 전염되기 시작한 원인과, 여기까지 사태가 치달은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쓰지 않았다. 기후위기와 코로나가 맞물려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그 대안으로써의 전환의 로드맵과 비전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했다. 다음 글에서 해나갈 것이다. 일단은 모든 것은 위기인식과 비상사태 선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다음편에 계속…

  


1. 중국 후베이성은 코로나의 원인이 아니라 발생지일 뿐이다. 신종바이러스의 원인을 매번 중국, 멕시코, 메르스, 중동 이렇게 발생한 곳에만 탓을 돌린다면 피상적인 시야와 접근에만 그칠 수밖에 없다. ↩


2. 의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기후위기를 분리시켜 대비했지만, 사실 코로나위기는 기후위기의 일종이다. 더하여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는 원인이 같을 뿐만 아니라 양의 되먹임 관계라 위험을 주고받으며 위기를 가속화한다. 다음 글에서 이를 자세히 풀어볼 예정이다. ↩


3. 코로나19바이러스감염증 치사율은 0.04%-2%로 이야기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중간값인 치사율을 1%로 가정하고 위험도를 치사율로 조작적 정의 내린다. 치사율은 전체 감염자 중 사망자의 비율로 병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된다. 


(1) 오명돈 코로나19 중앙임상위원장은 “전 인구의 40%가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 폐렴은 발병환자의 10%이고 그 중 사망자는 1%”라며, 치사율을 0.04%로 진단했다. (「신종 코로나, 국민 40% 감염되고 2만 명 사망할 수도」, 한국일보, 이지현 기자, 2020.2.20.) 

(2) 강칠용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교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낮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에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는 치사율이 지금까지 볼 때 2% 가량이니 사스나 메르스에 비해 높지 않다. 2002~2003년 사스는 약 10%에 달했고, 2015~2016년 메르스는 치사율이 35%가 넘어 코로나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위험했다.”라 말하며 치사율을 2%로 설명했다. (「바이러스보다 공포 확산이 더 문제… 한국 의료진 잘하고 있다」, 허문명, 주간동아, 2020.2.16.) 

(3) 범학계의 권고안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코로나19의 임상적 특성을 종합하면, 2월 20일 현재 중국의 후베이성은 3.3%의 치명률을 보이지만 후베이성 이외 지역(0.7%)과 중국 외 발생 국가(0.9%)는 1% 미만의 치명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인플루엔자의 치명률 0.05%보다 높지만, 사스의 10%, 메르스의 30%보다는 크게 낮습니다.”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 권고안」, 2020.2.22.) (치명률은 의학적인 관리를 받고 있는 전체 환자 중 사망자의 비율로 관리가 안 되는 경우는 통계에서 배제해 급하게 바뀌는 현재 시점에서 통계를 낼 수 있다.)↩


4. 하지만 코로나의 위험성은 전염력에 있다. 사스와 메르스 대비 낮은 치사율이지만 높은 전염률을 가진다. 더하여 무증상환자에 의해서도 감염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을 증폭시키는 특수한 질병으로 역학한다. ↩


5. 사람들을 휘어잡는 것은 공포이다. 그 두려움의 감각에서 여타의 행위들이 결정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에 앞서 감각이 존재하고 인간의 행위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그렇기에 공포의 감각은 위기인식을 낳고 위기의식을 만들어 사회적 위기감을 만든다. 자칭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자처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맹목적인 불안에 혀를 찬다. 그러나 사회는 사실과 과학으로만 분석할 수는 없다. 사회는 합리적이지 않다. 1%의 치사율이 일상에 1%만큼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느낀 위기감은 결국에는 사회적 위기가 된다. 시발점이 무엇이었든 결국에는 사회적 재난으로 흘러가는 이유다. ↩


6.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서 「치명적인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부실한 공공의료다」에서 바이러스의 위험성은 낮다 보지만 공공의료 인프라의 부재가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다 지적한 바 있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의 성명서, 2020. 2.14.). 강칠용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주의 깊은 대처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너무 과도한 공포는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치사율이 낮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러스보다 공포 확산이 더 문제… 한국 의료진 잘하고 있다」, 허문명, 주간동아, 2020.2.16.) ↩


7. 한편 자본가들에게는 이 위기가 기회다. “‘투자의 귀재’ 또는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89)이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에 따른 주식시장 급락에 대해 저가매수를 위한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이상배 특파원, 「버핏 “美경제 아직 강해… 주가급락은 저가매수 기회」, 머니투데이, 2020.2.25.) ↩


8. 박중엽 기자, 「장애인, 쪽방 거주민에게 더 가혹한 코로나19, 마스크조차 구할 수 없다. 무료급식소 문 닫고, 일자리도 없어져」, 비마이너, 2020.2.21. ↩


9. 유기훈(노들장애인야학교사), 「폐쇄병동 코로나19 집단 감염, 감추어진 질문들, 폐쇄병동의 경계와 일치하는 집단 발병의 범위, 코로나19가 무너뜨린 경계, 그리고 인간의 조건」, 비마이너, 2020.2.23. 


10. 녹색당 논평, 「코로나19 정치적 이득 노리는 미래통합당 심판!」, 2020. 2.24 ↩



※ 이 글은 생태적지혜연구소 미디어(https://ecosophialab.com)와 그린뉴딜한국네트워크 홈페이지(https://greennewdeal.kr/forum/view/37276)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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