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꿈도 많이 꾸고 잠도 많이 잔다. 방금도 따사한 봄볕에 몸맘 뉘이다가 자고 일어났다. 네 시 삼십팔 분. 네 시 삼십팔 분. 네 시 삼십팔 분 시간이 아까워 속으로 몇 번 되뇌이다 그만두었다. 이 생활이 거진 두 달이 흘렀는데도 심심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뭘 한 거지. 마음만 부리나케 요동이느라 온 진을 다 뺐나. 꿈을 한 잠에 못해도 두어개는 꾼다. 옛적에는 꿈 많이 꾸는 그런 애들을 꿈꾼이라 불렀던 것 같은데, 나는 나를 어여쁜 말 납두고 잠탱이라 부른다. 엄마의 호탕한 웃음이 떠올랐다. “너 뱃을 땐 김포공항 옆 공항동 집이었는데 비행기가 날아가든 날아오든 푹 잤었지. 근데 낳고보니까 너가 그런거야. 옆에서 폭탄 터져도 코오 잘 것만 같더니까. 어찌나 웃기던지.” 며칠 전 답답함에 견디다 못해 본가로 내려갔다. 이젠 나도 내가 뭔지 모르겠다 싶어서 간만에 방황하는 기분 좀 냈다. 가족앨범을 펼쳐들고 엄마의 메모가 옆에 두런두런 적힌 옛날사진들을 봤다. 아이구 내가 어디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게 아니었구나. 엄마는 넋을 잃게 예뻤고 아빠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네 하면서 웃었는 데 나이듦이 확연해 조금은 짠했다. 지금의 내 마음으로는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다.
평화롭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전태일의 문장을 읽으면서 쉬운 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유복하고 배부른 고민과 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가정이 부끄러워 더 말들을 쓸 수 없었다. 사람 사는 게 뭔가 건조하게 묻다가 온갖 절박함으로 타오른 불꽃을 만나 푸념 같은 나의 물음은 재가 되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내 나이에 그는 몸에 불을 붙였다. 그는 딱 내 나이까지만 살았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나이는 그가 살아보지 못했던삶이다. 고통과 좌절 속에서 피워낸 삶에 비해 나의 삶은 너무나 부끄럽고 비루해 쓰라리디 쓰라린다. 한평생 굶어본 적도 구걸해본 적도 가슴과 몸뚱아리에 불을 질러본 적도 없는 삶을, 지금까지 그래왔듯 계속 이어나가다 언젠가 이런 마음들을 잊어버린 채 살겠지. 무료하게 하루를 흘려보낼까 두렵다.
으레 막막할 때 그러듯 삶의 의미가 뭔가 묻고 있다. 참 유복하고 안온한 물음이다. 나에게는 절박함이 없다. 신중함, 섬세함, 총체성 이런 단어들로 나를 휘양찬란하게 수식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 이상일 수 있을까. 전태일의 삶은 지금도 있다. 다른 의미의 벽들, 좀 더 꼬이고 교묘한 결들의 벽이 생겨났고 두터워졌지만 전태일 앞에 놓인 칼날서린 벽은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먼저 산 사람들의 헌신과 사랑에 침묵으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의 가치를 앞세우며 언어와 철학의 집 안으로 안온하게 숨어버린 나는 자격이 되지 않는다. 이놈의 자격 운운하며 비겁해진 적이 많다. 좋은 핑겟거리 하나 잡은 것처럼.
며칠 전 찜질방에서 쪽잠을 잘 일이 있었는데 참 누추한 곳이었다. 주말 야간 요금 14000원이나 받으면서 탕은 두 개밖에 없고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코로나로 성화인 시국, 참 아닌 때 간 셈이다. 쪽잠을 청하는데 노인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빈민보호소와 무료숙식소가 문 닫으면서 잘 곳 없는 사람이 여기로 모였지 싶었다. 집단감염되기 참 알맞은 곳이었다. 극심한 공포가 찾아들면서 나의 삶과 이들의 삶이 참 동떨어졌음이 닥쳐왔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엄마는 마른 내가 걱정됐는지 계속 뭔가를 먹이고 싶어했다. 본가에 가면 으레 부모들이 그러듯 온가지를 다 갈아먹이는 거 있지 않나. 내가 채식한 뒤부터 유독 심해졌다. 잠복결핵이니 뭐시기 그거 발병하면 어쩌냐는 거다. 그 마음 알기에 달갑게 먹고 그랬다. 불안과 공포는 합리성과 가능성 따위와는 무관하다는 거 아니까. 그런데 다시 내 집으로 돌아가는 날 엄마는 저녁으로 랍스터를 주문했다. 가족끼리 단란하게 먹기에 팔뚝만한 두 마리 랍스터는 참 이질적이었다. 사회를 좀 넓게 보라 사회학을 배웠는데 나는 유독 집에서만 사회학 회로를 굴린다. 중상층 가정의 안락함과 풍요로움 평화로움을 견딜 수 없는 탓일까. 커다란 플라스틱에 랩으로 둘둘 감긴 랍스터의 견갑이 으스러지자 역겨움이 치밀었다. 동남아 어딘가 다국적자본의 보이지 않는 왼손과 원주민들의 착취된 오른손으로 잡아올려진 이이는 탄소를 미친 듯이 내뿜는 비행기를 타고 방부제 흠씬 맞으며 시장 매판대에 온종일 누워있다가 산채로 삶아졌겠지. 생명의 빛이 꺼지는 마지막 순간의 감정은 분노였을까 원망이었을가. 나는 먹지 않겠다 선언하고 엄마의 토라진 표정과 비린내 속에서 먹는 둥 마는 둥 밥을 밀어넣었다.
나를 지키는 것과 가족을 지키는 것과 세상을 지키는 것은 왜 자꾸만 부딪히나. 충만하게 평화롭고 무해할 수는 없는가.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몇 자 적다 부치지는 못했다. 아까워 옮긴다.
“사랑과 정성 듬뿍 받고 갑니다. 나는 그래요. 풍요로운 시대에 부모 잘 만나서 부족한 것도 없이 못 먹어본 것도 없이 못 가본 곳도 없이 유복하게 자라났지요. 사랑도 듬뿍 받고 좋은 이야기 듣고 정의로운 뜻 알고 자라났지요. 나의 유복하다는 면은, 뒤집어 부모의 녹록치 않음이었을 진데, 그럼에 마냥 아름다웠다고만 쓰는 것은 안되겠습니다. 한 없이 고맙고 그러지요. 얼핏 잊고 사는 빚과 은혜를 떠올릴 때마다 그러지요.
어젯밤 전태일 평전을 읽었습니다. 나의 삶이 참 비루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다가 감사하다가 나는 날 어떻게 불태워야하나 고민하다가 그랬습니다.
미안하잖아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돈데. 죽음을 상상하지 못한 나는 몸에 불을 붙이고 목에 줄을 매단 힘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릅니다.
나는 그 죽음들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나요? 매번 부끄럽다는 말만 입에 올리고 그만두었다 다시 올리고 그래요. 나의 부모는 장례식장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간의 평화가 철저하게 얼룩진 거짓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낄텐데. 좋은 게 좋은거다. 적당히 행복하게 이런 말들이 참 부질없게 느껴질텐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덮어두고 아름답다 혹은 평화롭다 이르는 것들을 깨부수고 싶어요. 평화로운 식탁의 그림자에 숨어있는 살육과 착취와 불평등과 위선과 외면을 낱낱이 식탁에 올리고 싶어요. 그러면 배부르고 비겁한 말들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겠지요. 정적이 화목이라 믿어왔던 요란을 대신하겠지요. 영정사진이 담긴 액자가 식탁위에 툭 올려진 장면을 생각합니다.
마냥 우울하자는 것 아니고 슬픔에 젖어있자는 것도 아닙니다. 애도의 윤리를 잊어버린 삶이 사무치게 비루하게 느껴진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이는 생각은
젊은 나날의 생각과 다짐들을 어느 순간 보잘것 없는 구시대의 것들로 둔 것은 아닌지. 남들과 비교하다가 맞추다가 자기를 잃어가지 않는지. 나는 마땅히 잘 살고 있는지. 융통성있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 좋지만, 내가 애써 이런 선들을 세우지 않으면 부끄럽고 비겁하여 살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