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두렵다. 아침에 포크레인 소리에 불안하게 깨어 바삐 산을 오르다가 왼쪽 발목을 삐었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비질을 했다. 그간 살림을 열심히 해왔는데, 집에서 쫓겨나게 된 후로 허무하게 느껴져 한동안 집을 치우지 않았다. 너무 늦게 전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일 년간 쓸고 닦고 매만지던 내 집에서 나가게, 아니 나는 계속 살고 싶으므로 쫓겨나게 된다. 재건축 이야기다. 곧 갈 곳 없는 신세가 된다.
밥도 안 하고, 잠도 대충 자고. 요가도 명상도 없이. 그래도 뭐를 하려면 공간과 마음이 정갈해야 하니까 무리해서 움직였더니 지금은 걷지를 못하겠다. 해야 하는 게 많은데, 내가 얼른 기운차려야 하는데. 지금은 쉴 때가 아닌데.
숨이 턱턱 막혔다. 하루 종일 기업 코린도를 팠다. 파다가 못 보겠어서 멈췄다가 좀 쉬다가 다시 보다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의혹과 연결고리와 지옥의 맥락. 내 머릿속에서 파악된 이 총체성을, 총체적 난국을 내가 지금 말을 못하고 있다.
분노가 사그라들면 용기가 움츠려 들어 두려움이 밀려온다.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분노와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나는 지속 가능하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그렇다. 아는 사람 다 알겠지만 이 동네 최고 개복치라 픽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가 좀 지나면 나오고 그런다.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나를 확 타오르게 하는 힘이 사라지고 확 주저앉아 버리면 또 숨어버린 것에 미안해서 한동안 스스로를 괴롭히다가 나중에야 쭈뼛쭈뼛 거리며 미안했노라고 전하겠지. 내가 누군가에게 믿음직스러운 동료일까. 동지일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사람이지는 않나. 여기까지 생각이 가면 내가 두렵다.
동지들에게 전화를 건다. 분노에 힘입어 코린도, 포스코 대우, 삼성, LG화학, SK, 한전, 수출입 공사의 악행을 연이어 엮어놓고 내가 진단한 원인과 대안의 그림을 보인다. 만남 속에서 방향은 명확해진다. 별개의 사안으로 말해지던 이 기업들의 사건사고는 한국 기업의 방탄복 같은 기업 지배구조와 정부기관의 비호, 보증, 지원(ODA, PF) 속에서 일어났다. 국내 언론에서는 시사인, 한겨레 정도를 빼놓고는 이 사태를 보도하는 곳이 없다. 주가에 대한 기사는 녹색 분칠이 잔뜩 되어 공론화를 막는다. 지금도 코린도를 치면 ‘마스크 기부의 아름다운 선행’이 가장 먼저 뜬다. 글로벌 녹색기업으로 유명하다. 얼룩덜룩한 선의가 역겨워 나의 선의조차 믿지를 못하게 되었다. 전화가 끝나면 다시 두려워진다.
악을 자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상한다. 연구팀을 꾸려 공부와 공동연구를 이어가고, 아야프를 지원하고, 이쪽 활동가들을 만나고 사람을 모으고, 각 기업의 지배구조 및 현황을 공론화하고, 이 모든 걸 엮어내는 이론틀을 정립하고. 나가서는 포스코 앞에서 연막탄 터뜨리고 시위하고 진정 넣고 해야 할 텐데 이건 떠올리기만 해도 헉한다. 누구에게 함께하자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가장 뜨거운 나도 두려운 일들을.
며칠 째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남은 학기 내야 하는 것들도 다 겨우겨우 내고 있다. 내가 심정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는데, 누굴 돕고, 나를 믿고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안정되고 충만하게 언어를 정돈하고 온도와 확신으로 동지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나.
긴 글을 쓰면 사람들이 안 본다. 어려운 말을 해도, 먼 곳의 고통 이야기를 해도 그렇다. 감각되지 않는 고통, 인지되지 않을 때 보이지 않는 고통을 말하고 알리는 것이 지금 나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의 만남에서 주체성이 형성됨을 안다.
어제는 이루리 씨의 light beside you를 듣다가 ‘내 손을 잡아 주었네’ 하는 가사에서 터졌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그 포장을 벗겨내고 지옥으로 끌려가는 이들의 손을 잡는다. 물론 내 손도 누가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그림을 한 장 올린다. 좌혜선 작가님의 ‘Monster Dancing’, 참 손 잡아주고 싶은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