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스물여섯

by 노마 장윤석

오늘은 하루 종일 메일함을 들락날락할 것 같다. 며칠 전 본 면접이 오늘 나와서,, 기분이 묘하다. 영어면접이라 떨면서 이틀 밤새고 우리말로 질문 듣고도 묘했는데. 당락에 따라 다른 것들이 주르륵 정해진다. 하반기, 절실히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요새 나를 지칭할 때 연구(노동)자라 이르게 된다. 이보다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가 정확하겠지만. 수식어가 화려한 것은 사실 직위나 급여를 받는 일 같은 게 없어서 그렇다. 보통 학생 정도로만 썼는데 마냥 배우고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란 핑계는 썩 괜찮다. 공부하겠다 말하고 일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특권에 기대면 살기는 편하고 마음은 조금 불편하다. 내가 쌓아올린 모든 것은 다 누군가의 마음과 언어, 그리고 시간이기에. '배움 당하고' 일하지 않는 상태인 게 늘 마음에 걸렸다. 나도 일 잘할 수 있는데, 내가 그간 해왔던 배움과 일들이 요긴하게 쓰일 곳이 없을까. 누가 요새 뭐하냐 그러면 연구한다고 둘러댄다. 맘 놓고 공부하다가 학위 따고 뭐 연구소 직함 달고 연구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고(7년 5개월), 당장의 문제들을 헤쳐갈 연구는 정작 중요한 곳에는 텅텅 비어있다. '청년 팔이'가 아닌 청년 연구가 얼마나 있을까? 혹은 부동산 시장의 멘탈리티, 커머닝 연구는? 다산의 지공주의(토지공개념) 연구도 비어있고, 일리치 연구도 그냥 하나도 없고, 한국 철학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기후와 계급론도 연대가 긴요해지는 마당에 참 중요한데 텅텅 비었지 싶다. 그냥 기후위기를 선명히 생각할 때 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주류 이론들은 모조리 깨진다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빈다. 즉 우리가 마주한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사회 전역이 그렇겠지만 싹 물갈이가 필요하다.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과 빚어낸 생각들(이론, 이데올로기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는 없지 않나. 아직 미숙하기 그지없지마는 이번에 지원서를 쓰면서 보니까 스무 페이지 넘어가는 소논문을 열댓 개는 썼었더라. 세미나도 엄청 열었었고. 나름대로의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성실한 노동이었던 것 같다.

그보다 돈 받고 연구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살던 집에서는 나가라 그러지, 아버지는 휴학하면 경제적 지원 끊는다 그러지, 한 학기 일 안 하고 사니 빚은 어느새 100만 원 됐지, 분명 내가 기억하는 나의 삶은 특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좀 서글픈 것들이 박혀 있는 듯하다.

그래서 금전적 인정이 절실하다. 내가 해 온, 그리고 한 일이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왜 기본소득 연구 중에 충격적이었던 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에 자살위험자와 자살률이 급속히 줄어든다고 한다. 금전적 지원이 사회적 안정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월세 내고 장 보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돌봄과 보살핌, 살림처럼 값을 매겨주지 않는 노동은 서럽다. 보통 그런 게 증권 분석하는 일 같은 것보다는 귀할 텐데 사회란 게 이리 돼먹었다. 연구와 활동도 마찬가지, 가장 절박히 필요한 곳에서 세상을 좀 더 낫게 해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데 왜 돈을 안 주냐.. 연구자 활동가 기본소득 필요하다.. 지원책이라도 좀 많이 두던가. 새마을운동 50주년 기념 지원사업 이런 거 말고.

그보다 지원 주제가 '한국 기업의 전 지구적 에코 사이드'인데, 이거 떨어지면 이 이야기 어떻게 연구하고 공론화하고 그러냐.. 절박한 이야기를 내가 절박해서 못하면 그보다 처량한 게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것저것 찾아다니면서 해나가 보겠지? 이렇게 마음의 보험을 걸어둔다.

세미나가 두 개 있는데 어제 마감하려 했던 그린 뉴딜 글은 틀만 짜 놓고 쓰지는 못했다. 글 쓰러 가봐야겠다. 한 몇 달은 싸맨 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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