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재난의 여파
잔인한 사월입니다. 살고 있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신지요. 오랜만에 시작하는 세미나를 어떤 마음으로 열어야 하는지 조금 고민됩니다. 거진 두달의 혼란스러운 시간을 지나보내고 어느덧 사월이 왔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기후위기 시대를, 단기적으로는 코로나 시대를 살게 된 것 같은데요(물론 기후위기가 코로나의 직간접 원인임을 상기하면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를 코로나 시대라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는 그리 짧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상의 풍경이 이렇게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게 지금이 전환기임을 절실히 느끼게 합니다. 1789년 자유주의 혁명, 1929년 대공황, 1997년 IMF처럼 2020년도 역사에 뚜렷이 기록되고 회자되겠지요. 다음 세대의 학생들은 어느 과에서 어느 공부를 하든 2020년에 대해서 읽고 듣게 될 겁니다. 그 때도 봄은 오고 벚꽃은 피겠지요?
그간 모든 곳과 것이 침체를 맞았구나 느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의 결과는 꽤 많은 부분 우리가 꾸어왔던 꿈과 하고자 했던 계획들을 무기한 미루며 무너뜨렸습니다. 무너졌다 쓰기에는 이르지만요. 제가 가장 마음이 저렸던 부분은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낙관을 하지 않게 된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많은 시민단체와 청년 단체에서 이상적인(조금은 낭만적인) 생각을 그만둔 것처럼 보입니다. 전태일의 수기를 읽으면서 그 어려운 시대에도 당장의 앞에 놓인 악 혹은 부조리가 내일에 내일을 거듭하면 물러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그의 말에 뭔가 띵해졌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3.1, 4.3을 거치면서 드문드문 떠오르네요. 우리는 어떤가요? 한 주 전 우리는 선거를 앞두고 지금 이 상황에 이런 면과 쇼를 보아야 하는지 토로했었지요. 감도는 막막한 분위기 속에 등장한 쓰러져도 일어나는 오뚜기 인형이 떠오릅니다. 이제 선거는 앞으로 한 주 남았습니다. 저는 환멸감과 싸우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빈곤한 상상력이 자꾸만 움츠려드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상상의 빈곤이 참 슬픈 말인 것 같습니다.
정신계 상담과 진료가 늘어났다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허하고 혼란스럽고 그런가 봅니다. 허함에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일관했던 한 달을 보낸 저라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마냥 무력감과 허함에 젖어있을 수는 없는 일, 낙담과 속에서 부유하는 것은 어제까지만 하려고 해요. 꽃이 흐드러지게 핀 수목원 거닐다 이 상황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당시로서는 힘들었을) 시간들은 분명 다른 아름다움을 낳았습니다.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앗아간 페스트는 이후의 보건의료와 과학의 발전을 가져왔지요. 미래에 대한 낙관을 멈춤으로써 우리는 그간 경제성장과, 개발논리의 전제였던 직선적 진보관을 부수어낼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공장이 멈추자 공기가 맑습니다. 작년 이 맘 때는 미세먼지로 정말 잔인한 사월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도와 남미에서는 멸종위기의 바다거북이 돌아왔답니다. 진득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늘 없었는데 이렇게 생겨서 조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어제는 친구랑 “학구파들은 지금 너무 유리한 것 같아! 갇혀있어도 책 읽고 글 쓰느라 심심할 틈이 없다니까. 못난 글이라도 달고나 커피만큼은 하겠지” 하면서 낄낄거렸네요. 역사의 끝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참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을 어떻게 보아야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 다시 생각해봅시다. 이 상태를 긍정하고 오늘의 세미나를 기분 좋게 열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거리두기가 앞으로 뉴노멀이 될테니 이전의 일상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보다 지금의 일상을 다채롭게 꾸며내 상상의 지평을 넓히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첫 세미나의 주제는 ‘코로나 시대 재난의 여파’입니다. ‘여파’라는 말을 썼지만 이 낱말의 뜻은 남은 파도, 큰 물결이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잔물결, 어떤 일이 끝난 뒤에 남아 미치는 영향이니 지금 쓸 말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고비를 지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사태를 시대로 바꾸어 씁니다. 처음에는 하루빨리 물러가길 바라며 ‘코로나 사태’라 썼었지요. 코로나가 사회와 (그 속에 묻어든)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의해봅시다. 재난의 결과는 어떤가. 코로나 시대에 사회정치경제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지금까지의 세상을 만든 주류 학문, 주류 논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할 이야기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리고 발제에 덧붙여 제가 혼자 종합하기에는 정보와 자료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일었습니다. 발제자의 역할은 딱 마중물, 전망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미래를 전망하려면 각자가 아는 이야기들을 모두 꺼내놓고 나누어 종합해야 합니다. 집단지성이랄까요. 그러니 우리가 듣고 보고 느낀 것들을 두런두런 이야기해서 한 가래의 전망과 한 뜻으로 만들어 봅시다.
* 공기생태정치경제연구소 4월 세미나 첫 주차 발제문의 서두입니다.
** 4월 8일 아침에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