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2020.05.17. (土)
노 마
ㄱ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맑은 공기, 안정된 사람, 안전한 사회 속에서 살면 위기를 입에 올릴 필요가 없다. 저 먼 곳 어딘가의 치열한 슬픔과 잔인한 고통을 떠올릴 필요 없이 편히 살면 된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잠시 뒤면 잊을 비보를 듣는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다.
ㄴ
“은강 바람은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분다. 그 바람이 공장 지대의 유독 가스와 매연을 바다와 내륙으로만 몰아갔다. 그런데 오월 어느 날 밤, 은강 사람들은 바람이 갑자기 바람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람은 바다로 안 불고, 내륙으로도 안 불고, 공장 지대의 상공에 머물렀다가 곧바로 주거지를 향해 불었다. 그 바람은 기복을 이룬 시내의 구릉을 넘어 주거지 일대에 가라앉으며 빠져나갔다. 막 잠이 들려던 어린아이들이 바람이 방향을 바꾼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갑자기 호흡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어른들도 악취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이 아프고, 목이 따가웠다.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시가지와 주거지에 안개가 내리고, 가로등은 보이지 않았다. 대혼잡이 일어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 아무도 정확히 말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은강 역사에 전례가 없는 생물학적 악조건 속에서 자기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은강의 비극이 또 다른 오월 어느 날 밤, 바다 건너 벌어졌다. 인도의 비샤카파트남이 지옥이 됐다. LG화학 산하의 공장에서 스티렌 가스가 누출되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다. 35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가고 12명이 죽었다. 사람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지고 곳곳에서 비명소리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2020년 5월 7일 현지 시각으로 새벽 3시였다. 그로부터 네 시간 반 뒤,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에 이 기업의 경영진과 부회장은 온라인 생중계로 당차게 기업의 ‘뉴비전’을 발표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학을 인류의
삶에 연결합니다.”
기업의 미래는 창창하다. ‘뉴비전’ 선포식은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1위 달성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 기업은 코로나로 인한 저유가로 이번 분기 ‘깜짝’ 영업이익을 냈고, 몇 주 전에 7000억 규모의 친환경 대출 그린론 조달 체결식을 가졌다. 폴란드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지어 친환경 미래를 위해 이바지하겠단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우리 기업이 닦겠습니다.”
기사가 났다. “LG화학, 인도 공장 사고 소식에도 주가 ‘꿋꿋’” 지옥을 조명한 언론은 많지 않았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내뱉었다. “재가동은 당분간 어렵겠지만 과도한 우려는 없을 것이고, 가동 중단에 따른 연간 손익 감소는 제한적일 것이며, 다만 사고 관련 위로금 지급 등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세상 모든 일들을 주가로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디에 사는가. 천국과 지옥이 한 날 함께 있었다.
ㄷ
확인된 사망자는 열두 명이다. 처음에는 열 명이라 적었는데 매일 아침 수가 는다. 평생 장애를 가지게 된 이도 수십 명이다. 이렇게 몇 명 죽었는지를 세다, 사람의 목숨을 수로 치환하는 과정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인다. 죽음에 집계되는 하나의 숫자이기 전에 누군가의 얼굴이고 이름이었으니까. 그래서 수는 잔인하다. 이를테면 “1993년부터 2004년 사이에 인도의 농부들이 10만 명이나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 초국적 기업들이 생태농을 돈 되는 산업농으로 갈아치우는 과정에서 대대로 농사짓고 살아온 농부들은 극단에 내몰렸다. 전 지구적 개발의 역사 혹은 자본의 역사는 참 잔인했다. 이번 사고와 참 닮은 1984년 인도의 보팔 가스 참사는 살충제 회사 유니언 카바이드 사의 소행이었다. 사고 즉시 2800명, 총 2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낳은 이 참사는 인도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세월호처럼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유니언 카바이드 사는 이 죽음들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2001년 다우케미컬 사의 인수를 통해 자연스레 잊혀졌다. 지옥은 펼쳐졌는데 책임자는 없다. 지금도 이 기업은 주식시장에 잘만 상장되어 있다. 내가 얼굴을 아는 ‘한’ 사람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는데 십만 명에 이만 명이라. 참 잔인한 수다.
ㄹ
비샤카파트남 참사 하루 전날에는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같은 날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는 강남역 사거리 72미터 철탑 위에서 333일째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삼성은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2007년 고 황유미 씨는 삼성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6년 8월에는 삼성 베트남 공장에서 일하던 고 르우티타인떰 씨가 입사 4개월 만에 급성 심근염으로 숨졌다. 또 하나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삼성은 두 죽음이 자기들과는 무관하다 했다. 산업재해 처리도 되지 않고 위로금이라는 이름의 뒷돈만 건넸다. 한편 작년 베트남 총리는 삼성의 성공이 베트남의 성공이라며 삼성에게 추가 공장 유치를 부탁했다. 삼성은 베트남 수출의 3분의 1을, GDP의 28%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 살리려면 죽음이 대수인가. 법조계는 이번 사과로 이재용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 환송심 결과에서 집행유예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ㅁ
동지 하나는 쓰레기가 턱 밑까지 차오르는 기분을 견딜 수 없다고 말했었다. 코로나의 역설로 공기가 맑아지고 거북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으며 마음 놓았던 것도 잠시, 쓰레기가 가득 찼다고 한다. 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뭐가 바뀌겠거니 싶었는데,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값보다 새로 만드는 값이 싸졌단다. 그래서 재활용 수고 업체의 창고에 압축된 플라스틱들이 곧 넘쳐버릴 듯 산을 이루고 있다. LG화학의 비샤카파트남 공장도 플라스틱 공장이었다. 누출된 스티렌 모노머는 스티로폼과, 폴리스티렌 수지, 포리에스테르 수지를 만드는 데 쓰인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지옥에 연루되어 있다. 탄소 예산은 오늘 자로 7년 7개월 13일 남았다. 우리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중「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80p
** 조세희, 「기계도시」, 186p
*** 필립 맥마이클, 『거대한 역설』, ‘3장 개발 프로젝트의 국가적 틀’, 14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