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2020.5.11. (月)
노 마
박경리는 『토지』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저문 뒤를 그리고 있다. 1905년을 배경 삼아 그는 이렇게 썼다. “역사는 진정 정신문화의 종말을 고하고 물질문명의 홍성을 도모하고 있는 것인가. 저 푸른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보며 흙을 빚던 사기장이의 천심은 가고 나사못을 깎는 시대가 오고 있다.*”
오늘(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지금으로부터 126년 전 1894년 5월 11일, 이제는 정읍이라 불리는 황토현에서 동학민은 첫 승을 거뒀다. 간혹 동학농민혁명을 부패한 조선 후기의 수탈과 핍박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민란’으로, 혹은 종국에는 실패하고 만 혁명 정도로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들이 보였던 기지와 품었던 뜻을 이리 일축하는 것은 시대를 좁게 건넌 후대의 몹쓸 시선이다. 그들은 왜 난을 일으켰나. 그들은 어떤 뜻을 품고 있었나. 그들은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했나. 물어볼 것이 많다.
때는 격변기였다. “옛 하늘과 땅은 해체되어 버리고 아직 새 하늘과 새 땅은 열리지 않은 시대, 동학은 한 세기가 종말을 고한 자리에서 태동한 철학**”이였다. 외부로는 서구, 청, 일본 등의 열강이 조선을 둘러싸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내부로는 당론에만 치중하는 조정과 대대로 부패한 관리들이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이에 동학민은 궐기하여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외쳤다.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하게 한다, 서양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지킬 것을, 부패한 관리를 척결하고 신분 해방과 만물의 평등을 이룰 것을 외치는 그들의 마음에는 개벽(開闢) 두 글자가 있었다. 개화도 척화도 아닌 개벽. 줏대 없이 머리를 숙이는 것도, 뭐 있는 것도 없이 똥고집 부리는 것도 아닌, 새 세상을 제껏 열어보자는 것이다.
오늘날, 박경리가 쓴 것처럼 푸른 하늘은 지고 물질문명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그들이 외쳤던 개벽이 잊히지 않고 역사에 더 강렬하게 새겨졌다면 어땠을까. 개화파와 척화파는 질기게도 살아남았다. 서구 선진 문물이라면 한없이 옹졸하게 받아들이는 진보와,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말과 행동을 앞세우는 낡아빠진 보수로 이름을 바꾸어 눈꼴시린 풍경을 국회고 학회고 곳곳에서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누가 이 땅의 문제들을 주체적으로 풀어 가보자 하고 말하는 이가 있던가? 한 세기 전 오늘 이 땅의 모든 곳에서 휘날렸던 개벽이라는 말과 뜻이 아직까지 유효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종교와 철학과 사회운동, 이론의 덕목과 실천적 수양과 정치적 운동이 하나로 결합하였던 동학혁명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돌이켜야 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시대에 안주하거나 시대와 불화하며 살아간다. 시대상과 시대의 한계 같은 것들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스며드는가 하면, 이따위 시대에 태어났다는 게 한없이 원망스러워 견딜 수 없을 때도 잦다. 그래도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시대를 넘어가고자 했던 사무치게 아름다운 시도들이 있었다. 시대의 아픔과 고통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새 시대를 열어보고자 일어났던 사람들이 있었다. 동학혁명의 마지막이었던 우금치 전투에서 그들은 죽창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 자식은 이 시대에서 못 살게 한다는 마음이었을까. 다음 시대에 못 이룬 개벽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그들은 내 부모의 부모의 부모다. 나는 이어지고 있고 이어갈 것이다. 그들을 기억하고 기리며 글을 맺는다.
* 박경리,『토지』4제 1부 4권 19장 ‘친일파’, 나남, 1972, 64p *
** 김상봉, 「파국과 개벽 사이에서 – 20세기 한국철학의 좌표계」, 대동철학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