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기억
써야 할 글을 쓴다. 털고 적응해야 살 수 있다. 마침표를 찍어야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다. 이사를 잘 마쳤습니다 하고 전해야 내 맘이 편하겠다.
집에서 미안하지만 나가주어야겠어요 하고 통보를 받은 날은 피아노를 주워온 다음 날이었다. 맷돌 위 피아노 학원에서 낡은 피아노를 버려, 하늘이 준 선물인가 보다 하고 예규와 연우와 끙끙거리며 끌차에 실어왔다. 장정 셋이 들기에도 무거워 집 안까지는 들여놓지 못하고 일 층에 두었다. 토크쇼에 가 떡볶이에 맥주를 마시며 땀방울을 식혔다. 조율사와 운반사에게 연락을 하고, 피아노를 올리는 김에 이 집에서 언제고 살아야겠다 싶어 집주인에게 계약 기간을 연장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 한 달 전만 해도 연장해주기로 말했었기에 당연히 될 줄 알고 피아노 놓을 곳을 생각하며 설레하고 있었다. 답은 금세 왔다. 집을 구하셔야 할 거 같아요. 미안하네요.
내가 살던 빌라는 지은 지 삼십 년이 넘어 재건축 이야기가 솔솔 퍼지고 있었고, 내가 살던 집 주인은 그 재건축 분양권을 바라고 집을 산 사람이었고, 피아노를 주워온 바로 그 날 6월 17일 나온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실거주 2년을 못 채울 시 재건축 분양권 대상자에 포함시키지 않는 제도가 있었다. 집주인은 나를 쫓고 이 집에 들어오거나 전입만 해두기로 했다.
날벼락에 수긍이 가지 않았다. 삼일을 아무것도 못 하고 시름시름 앓았다. 나는 계속 여기 살 줄 알았는데. 학교도 1년 남았는데. 이사를 또 어떻게 하고, 이런 집을 또 어떻게 구해. 피아노는 어떻게 하고.
살다 보니 혹은 말해 버릇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건데, 내 집이 아니었다.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매일 쓸고 닦고 채우고 꾸미고 그랬다. 아늑하고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부단히 애썼다. 남성, 지식인이 대체로 집안일에 연고가 없는 경향에 보기 좋은 반례가 되려 살림 실력을 연마했다. 가끔 아버지가 자취방이라 부르면 낮은 목소리로 살림집이라 정정했다.
그런데 살림에 쏟은 힘과 시간은 곧 정이었다. 공간과 정이 들어버렸다. 이사는 그 정을 강제로 떼어내는 과정이었다. 나가야 하는 날이 서서히 다가오는데 갈 곳이 없다는 불안감은 이사 갈 집을 계약하는 날까지 계속됐다. 집에 신경 쓰느라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제 때 하지 못하곤 했다. 본가에 돌아가거나, 같이 살 사람을 찾거나, 아니면 아예 짐 다 옮겨놓고 배낭 달랑 매고 방방 곳곳 돌아다니거나, 혼자 살 집을 구하거나, 선택지는 많았지만 그만큼 막막했다. 꽤 오랫동안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몰랐다. 일층에 놓인 오래된 피아노처럼 그냥 있었다. 경비아저씨가 어찌할 거냐 하셔 뒤늦게 종이를 한 장 붙여두었다. “곧 피아노를 치우겠습니다. 사정이 생겨 미처 옮기지 못했습니다. 불편을 끼쳐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5동 303호 장윤석.”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갈 곳이 떠버리자 사는 게 녹록지 않아졌다. 아, 언제든지 쉽사리 흔들릴 삶이었구나. 내가 처한 여건들과 사회적인 위치들이 드러나자 불안함이 찾아왔다. 공간은 중요하다. 그리고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코로나를 비롯 기후위기는 우리가 서 있는 물적 토대에 어떤 식으로든 위험을 가져온다. 그게 감염병이든 물난리든 폭염이든 안전한 공간이 절실해진다는 점에서는 같은 재난이다. 그것도 인재. 더 심해지고 가중될.
장장 54일간 장마가 내리쳤다. 그렇게 비가 퍼붓을 줄은 몰랐다. 피아노가 그렇게 습기에 약한지도 몰랐다. 내가 데려온 피아노, 내가 다시 버렸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대형 폐기물 신고를 했다. 만 오천 원을 냈다. 이 피아노에는 쉼멜이라 적혀있었다. 세계 3대 피아노 사로 불리는 쉼멜이라 설마설마했는데, 80년대 피아노 제작 기술이 없을 때 껍데기를 만들고 안에 걸 독일에서 수입해 만든 피아노라 한다. 중고 피아노 수거업체에서 안 가져가는 이유라고 알려줬다. 너무 낡아서 가져가 봐야 중국에도 못 팔아먹는다고.
피아노가 부서지는 상상을 하면서 스티커를 붙였다. 미안함이 일어서 어려웠다. 물건이 생산 소비의 과속 사슬에서 천대받는 시대, 물건은 무생물이자 물질이고 감정과 관계와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집이 그러듯, 분명 사람은 물건에 애착을 가진다. 사람뿐이랴, 개나 고양이도 좋아하는 인형과 의자가 있다. 살을 맞대어, 혹은 시간을 들여 생긴 무형의 무언가 – 그것을 정이라 부르던 관계라 부르던 –가 있다.
나는 버리는 걸 못하는 사람인데, 그 무언가에 쉽게 매여서 그렇다. 길에 버려진 인형을 주워오는 사람, 이런 나는 내가 만들어왔다. 현 사회에서 멸시되고 잊혀지는 정서와 감정을 나에게 복원시키며 공부하고 살아왔고, 섬세함과 관계와 맥락을 중요한 낱말로 올렸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온 삶과 내가 소중히 여긴 가치들이, 나를 잡아먹는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든 내가 나를 죽이려 한다. 사람이 물건에 정이 생기고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여기저기 떠돌며 이사 다녀야 할 우리의 주거 환경에서 허락되지 않은 가치다. 버릴 수 없는데 이삿짐을 싸야 했다. 이사 갈 집의 크기가 반으로 줄어 다 들고 갈 수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가구를 길에서 주워왔다. 분명 쫓겨나가듯 이사 나가는 이들이 가져가지 못한 것들일 테다. 샀으면 어쩌면 버리기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하나 데려와 씻고 고치고 배치하고 했던 기억이 각각에 깃들어 있어, 배신해야 했다.
어지간해서는 모든 짐을 가지고 왔다. 가져오지 못하는 가구는 지하실에 두었다. 처음에 지하실에서 데려온 것들도 다시 있던 데로 돌려보냈다. 1.5톤 트럭에 짐이 산더미같이 쌓였다. 낡은 냉장고 세탁기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들고 왔다. 거의 버리지 못했다. 쓰지 않아 모아둔 일회용 젓가락, 비닐봉지 등 잡동사니 묶음까지 들고 왔다. 이쯤 되면 나는 미니멀리즘은 글러먹었다. 소비를 줄이는 데 힘을 쓰지만 주워오는 걸 멈추진 않는다. 게다가 버리지도 않으니 맥시멀리즘에 가깝겠다. 새 걸 사기가 싫다. 이미 충분히 과부하가 걸린 지구에 또 하나의 짐을 추가하고 싶지가 않다. 내 밖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껴안으려 하다 보니 홀가분 해지지 못하고 짓눌리는 것 같다.
벽에 붙인 종이와 편지와 글귀들을 떼는데 아렸다. 머지않아 이 곳은 허물어질 것이다. 개 같은 개발에 밀려나갈 것이다. 그럼 이 공간을 지켜온 경비노동자, 살아온 길고양이, 창문 앞의 목련나무, 오랜 시간 거주한 노인들은 갈 곳이 없어질 테다. 지하실의 가구들도 데려갈 이를 기다리다가 포클레인의 톱날에 생을 마감하겠지. 불로소득을 생산하는 이 과정에서 충분한 대처와 애도가 있었으면 한다. 지속가능함이 뭘까 싶다.
오늘로 그 집에서 산지 일 년이 지났고, 이 집에 몸을 들여놓은 지 삼일 째다. 환경에 적응하는데 얼마나 걸리려나. 요새는 새롭고 낯설고 이동하고 떠나고 여행하고 벗어나고 탈주하는 것에 영 정이 안 간다. 유랑하고 여행할 시기가 아닌 듯하다. 잘 지속하고 정주하는 것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사를 하면서 여러 번 울었다. 나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가서 잘 살 수 있을까? 여기에서 살던 것처럼?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잘 살 거라고 해주어 믿고 있다.
이사 온 곳은 사직동이다. 오래된 고택의 아담한 방 한 칸을 얻었다. 앞에 인왕산 자락과 성벽이 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다. 교통과 문화가 편리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다. 너무 중앙이라서. 예전에 홍건익 가옥에서 너도나라가 모일 때는 이곳에 살고 싶어했는데 지금은 또 묘하다. 서울연구원, 녹색당,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가 옆에 있어서 언젠가 여기서 일을 하리라 마음의 준비를 해두고 있다. 당분간 학교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하려 한다.
이 일련의 과정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토지공개념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다시 헨리 조지를 책장 앞으로 꺼내 두었다. 생태 공부를 하면서 그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에 휩싸였다. 결국 안전하고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지 않은가. 아무도 땅에 빌붙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지구를 공동의 ‘집’에 비유하는 것처럼, 한낱 유한자에 불과한 개인 혹은 숫자에 불과한 자본이 땅과 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는 근대의 발상은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온 곳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공간의 크기 혹은 성질에 따른 구분이 있지만,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토지공개념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땅에 대한 윤리를 회복하려는 생태주의의 토지관은 같은 결이자 공통의 문제의식에 기초해있다 말할 수 있다.. 희년, 지오 멘탈리티, 커먼즈와 커머닝, 선주민의 토지관, 정약용의 경자유전 등 시대와 지역, 접근법을 막론하고 땅과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 하고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연결되는 부분이 짙게 눈에 띈다. 이는 공정과 생태가 같은 말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불평등과 기후위기(생태위기)를 동시에 막아보자는 그린뉴딜의 방향성과도 닿는 맥락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하반기에는 이 지점을 다시 짚어본다.
덧; 함께 살고 이사의 모든 과정에 함께 해준 주현, 현민, 도원에게 다시 감사를 적는다. 너희가 없었으면 나는 엄두도 못 냈을 거야. 잘 살아볼게.
덧;; 집 사진을 찍어둔 게 없다. 사람들 왔을 때 사진만 있다. 공들여 집을 다듬어놓고 찍어둔 게 없다니, 잊힐까 아쉽다. 그래도 그 집을 좋아해 준 사람들이 기억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좀 낫다. 혹 떠오른 사진이 있거든 언젠가 보여주면 좋겠다.
덧;;; 청년주거문제 해결에 힘을 써온 민달팽이유니온에 연구공모를 지원해 합격했다. 같이 녹색 공부를 해온 공생연구소(공기생태사회정치경제연구소)에서 함께 다룰 생각이다. 연구주제는 “기후위기 시대의 그린뉴딜 주거전환정책 모색 – 한국의 부동산 계급구조 속 청년주거문제를 ‘토지공개념(geogism)’, ‘지오멘탈리티 (geo-mentality)’와 ‘커머닝(commoning)’ 이론을 통해 접근하기.” 앓았으니 알 차례다. 궁금하고 함께하고 싶으면 연락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