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비가 내린다. 아야프 레지던시를 마친지 꼭 일주일째. 얼추 정리도 되었나. 누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물었었는데, 나는 마지막 날 밤 밖에 앉아있다가 비가 내리길래 주욱 맞고 있던 때가 떠오른다. 원최 스스로에 대한 이해 없이 살아가는 터라 나는 닥쳐오는 마음의 시련을 잘 지나 보내지 못한다. 그냥 맞고 있다. 현명한 대처도 건강한 다짐도 충분한 쉼도 없이 그냥 오면 오는갑다 하고 퍽 맞고 있고 푹 젖어 있다. 이걸 기후우울이라 언어화 한 지는 일 년가량 됐다. 말로 할 때는 사뭇 거창해지기 쉬운데 그냥 세상이 곧 아작 나리란 걸 알고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조건의 변화에 민감하고 그걸 삶의 까닭과 연결 짓는 버릇이 있는 정도일 뿐이다. 쓰다 보니 또 거창해졌다. 그냥 우울한 건 그뿐, 그뿐. 이게 쉽지 않은 것은 철저하게 팩트에 근거한 감정이라는 점이다. 여기까지 오면 희망이라는 건, 이성의 합리적인 판단을 감당할 수 없어 형성하는 마약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경구와 더불어 산다. 그람시의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아마 그람시도 누군가한테 들었을 거다). 일리치의 ‘미래도 기대도 예측도 없고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 김상봉의 ‘추수를 바라지 않고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엄청난 마음의 곧음을 필요로 하는 삶의 태도다. 이 태도가 아니고서는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수양을 요하는 것 같다.
열린 제안(Open Proposal)의 시작에서 미래가 어떨 것 같냐고 묻기에 녹색 분칠로 범벅된 녹색 자본주의 속에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FutureCitiesAreinGreennwashingCapitalism). 아마 제안자인 강은지 선생님은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되어야 하는’ 미래를 그리시길 바란 것 같지만, 솔직하게 지금 기후변화의 속도와 이에 응답이랍시고 곳곳에 범벅되고 넘치는 그린워싱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미래 못 그린다.
백 캐스팅(Back Casting)이 절실한 만큼,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이상적인 미래상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단 걸 안다. 상상의 빈곤을 떨쳐내고 적어도 자기 머릿속에는 들고 갈 청사진 한 장은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 때, 내 그림이 설계도가 아니라 추상화였다는 생각이 사무치게 닥쳐올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점에서는 늘 모르겠다.
2.
기업들의 행보를 예의주시 하다 보면 미래가 보이고 희망은 사라진다. 어제는 무심코 팔로우 한 몽냥툰(에서 광고를 받아 포스코를 친환경기업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자원순환의 날이라고 철은 재활용이 잘 되니(90% 이상) 포스코는 친환경기업이라는 것. “(냥) 지금은 경량화에 노력해 최종 제품의 환경성을 개선하고 있대.” “(냥) 생각해 봐.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40% 이상 가벼운 강판으로 만들어져서 연비가 많이 좋아졌잖아~” “(몽) 차체 무게를 줄여 연비 효율이 높아지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감소되겠다.” “(냥) 완전 친환경적인 미래 소재지?”
그린워싱 중에 그린워싱이다. 포스코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평균 7000만 톤 이상) 1위로 ‘전체’ 배출량의 11.3%를 차지하고 있다(한국기업지배구조원). 철이 친환경이라는 사실도, 철강 산업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4%를 차지하고 있다(Annualreviews)는 것을 생각할 때 감히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포스코는 ‘일각의’ 비판이 마음에 걸렸는지 친환경 구호를 탐내고 있다. 워싱과 디펜스에 열중이다. 홀로 기간산업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이미 에너지 효율 기술면에서는 중국과 인도 대비 선진이지만, 더 친환경 기술로 애쓰겠다는 말들로 대강 넘어간다. 댓글을 보면 아연실색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칭찬과 격려 ‘친환경’ 독려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린 모빌리티 산업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자동차들은 어떤 철로 만들어지나요. 철강산업은 탄소배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완성품이 그린이면 그 과정도 그린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그저 그런 뉴딜이 아닌 진정한 그린뉴딜을 원한다. (2020.7.17.)(https://www.youtube.com/watch?v=rQ_N5JcCQTg) 3:35 다연님의 말.”
3.
돌아와서 원래는 남기지 않으면 사라지는 소회를 적어보려 했다. 한 권 가득 채운 노트도 정리해야 하고. 늘 낙관과 절망은 공존하는 것 같다. 아야프에 지원하게 된 건 철저하게 절망감, 그리고 절박함 탓이었다. 아시아의 생태 학살(Ecocide)을 두 눈 뜨고 지켜보기가 힘들어서, 도와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아야프를 발견했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학위도, 연구실적도, 일 경험도 없는 걸 알았다. 전부 영어로 진행한다는 데 마지막으로 영어 써 본건 열 살 때 인도에서 잠깐 살 때? 내가 안 하면 한국 기업의 인도네시아의 토지 강탈이나 인도의 화학사고를 아무도 연구, 공론화, 활동을 안 해줄 것만 같아(지금은 많은 동지들을 찾았지만) 무턱대고 지원했는데 기회를 주어 무척 감사하다. 지금은 학교도 안 가고, 일도 안 하고 오직 이것만 파고 있다. 눈에 불을 켜고.
처음에는 사명감이었다. 하지만 분노는 풍화되어갔다. 날아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켜켜이 퇴적된 응어리도 있다. 지금은 재미있다. 단순한 재미라기보다, 부드럽고 유쾌하게 정의를 추구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고 해두고 싶다. 눈빛도 더 총명해졌다. 거진 한 달만에 본 개발 공부하는 친구들이 내가 표정이 밝아져서 좋다고 한다. 물론 간극이 심하다. 그러나 이렇게 널뛰기하며 걸어가는 길이 멀리서 보면 곧을 거다. 그렇기에 지금을 방황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름대로의 직진이다.
잘 살면서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이건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사진에 표정은 좋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