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간의 '러시아 - 몽골' 여행기, 그에 들어가기 앞선 글
한 달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소중한 화두와 기억을 한 움큼씩 쥐고 돌아왔다. 며칠이나 지났다고 손아귀에서 스르르 빠져나가고 있다. 마치 모래알처럼. 놓지 않으려고 손을 더 꽉 쥔다. 이 여행기는 그래서 시작했다. 사라져 가는 기억들을 기록을 통해 붙잡아 두려고 한다. 동시에 화두를 얻음으로, 기억을 추억으로 변환하고자 한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와 알혼에서 일주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일주일, 테를지에서 일주일, 고비에서 일주일. 한 달이라는 시간은 애매했다. 푹 즐기기에는 짤막한 아쉬움이 남았고, 그렇다고 해서 미련이 남도록 짧진 않았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것들을 써내려가 볼까. 이르쿠츠크에서 만난 칼강도, 아기자기한 미술관, 알혼 가는 울퉁불퉁한 길, 소금기 하나 없던 바이칼 호수에서의 수영, 귀여운 프로봉, 츤츤 거리던 러시아 친구, 보드카 마시던 밤, 울란바토르행 기차 창 밖 풍경, 칭키스칸 광장, 테를지에서의 말 타고 질주한 거, 친절한 몽골 친구들에게 배우는 몽골어, 강가의 폰 도둑, 고비로 가던 길, 돗자리 깔고 보던 별밤, 비니 눌러쓴 방랑화가의 삶, 일주일 내내 본 윈도우xp 바탕화면 같던 초원...
친절한 여행기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아, 혹여나 있을 독자에게 미리 미안함을 표한다. 나 또한 여행하면서 많은 블로거에게 정보를 얻고, 익명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이 여행기는 정보보다 감상에 주력할 것 같다. 그렇다고 혹여나 있을 댓글 SOS를 외면한다는 뜻은 아니다!
친절하지 못할 두 번째 이유는 사진보다 글 비중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 중 폰을 잃어버렸다. 강가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사라졌다. 아마 청설모의 소행일 것으로 추측된다. (농담) 찍은 사진이 날아감은 물론이고, 이후의 멋진 풍경들을 찍을 수도 없었다. 분명 불운이지만 기회로 삼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방랑화가가 되어 고비를 여행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그림을 간간히 첨부하리라.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같은 여행기를 쓰고 싶다. 설사 내 역량이 그에 못 미치더라도, 노력이야 할 수 있잖아.
쓰는 나에게도, 읽는 그대에게도 좋은 시도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