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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Nov 10. 2020

성찰 없는 국가에 미래는 없다: 기후위기 시대 경제성장

자유무역 중독, 해외석탄발전과 구린뉴딜, 녹색 분칠과 거짓말들


성찰 없는 국가에 미래는 없다: 기후위기 시대 경제성장과 자유무역 중독, 해외석탄발전과 구린뉴딜, 녹색 분칠과 거짓말들

개요: 기후위기 시대 코로나 환란 가운데에서도 경제개발, 경제성장, 자유무역을 앞세우고 녹색분칠을 일삼는 한국 정부, 공적금융기관, 대기업들의 모순에 대해 짚어본다. 개발, 기후정의, 그린워싱이 이 글을 관통하는 세 가지 주제다.


1. 들어가며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 시대 코로나 환란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와중에도 경제개발, 경제성장, 자유무역을 앞세우고 녹색분칠을 일삼는 한국 정부, 공적금융기관, 대기업들의 모순을 다룬다. 개발(Development), 기후정의(Climate Justice), 그린워싱(Greenwashing)이 이 글을 관통하는 세 주제다.

첫 번째로는 기후위기에도 계속되는 WTO 자유무역 신화를 다룬다. 여기서는 무역과 기후는 호혜적이지 않고 철저한 종속 관계를 이뤄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두 번째로는 모두가 저버린 해외석탄투자를 놓지 못하는 마지막 국가인 한국의 정부, 공적금융기관, 대기업들의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투자·건설을 파헤친다. 세 번째는 ‘한국 기업들의 그린워싱’을 주제로 이 기업들이 세계 곳곳에서 사회·생태적 파괴를 일삼는 현실을 팜유산업을 조명하며 드러내 본다.


2. 기후위기 시대에 경제개발·발전·성장 비전?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진보와 산업 발달의 수혜가 저발전 지역의 향상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새롭고 과감한 사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트루먼 대통령, 1949년


“저는 한국이 저개발 국가에서 거대한 무역 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다른 모든 회원국들도 한국이 누린 경제 발전의 기회를 함께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희 WTO 사무총장 후보, 2020년

한국의 경제 모델이 정말 바람직한가? 각종 환경파괴와 생태위기와 넘쳐나고 온갖 사회·경제적 문제 속에 묻혀 사는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진 출처 : Kateryna Babaieva


2020년, 기후위기는 인류 문명의 과제로 공고히 자리 잡았다. 보수적인 IPCC의 추정치로도 7년 남짓 남았다는 심각한 상황에, 7월 14일 대한민국 정부는 ‘그린뉴딜’을 발표했고, 6월 5일 226개 지자체는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선포했으며, 9월 24일 국회도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9월 22일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가교 역할’로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개도국에 한국의 경험을 충실히 전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9월 9일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기후변화 및 환경 문제 등의 협력을 지속할 것을 강조하고, 뒤이어 코로나19가 초래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연 한국이 개발도상국에 전할 ‘경험’은 무엇인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유무역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유무역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편, 현재 WTO(세계자유무역기구) 사무총장 선거가 진행 중이고, 11월 초순에는 그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후보로 출마했고 그는 ‘25년간 쌓은 통상 분야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국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WTO 개혁과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승까지 진출한 유력한 후보로, 청와대, 외교부, 경총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유명희 밀어주기’에 한창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 7월 17일 스위스 제네바 정견발표를 잠시 들여다보자. “저는 한국이 다자간 무역 시스템을 통해 저개발 국가에서 거대한 무역 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중략) 다른 모든 회원국도 한국이 누린 경제발전의 기회를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경제 성장과 발전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명희 후보가 자신 있게 내건 ‘경제발전’의 비전은 이 세계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불황기로 접어들었다. 지난 몇 십 년간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맞게 수출의존형 모델로 구조 조정된 개발도상국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며 부러움을 표하고 있다. 이미 ‘개도국’의 대표 주자였던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는 경제성장을 국가적 천명으로 내세웠고, 이른바 신자유주의 플랜이라 불리는 자유무역 개방정책과 구조조정을 추진한 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모델이 정말 바람직한가? 각종 환경파괴와 생태위기와 넘쳐나고 온갖 사회·경제적 문제 속에 묻혀 사는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기적이라고만 불려왔던 한국의 개발·발전·성장의 경로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 성과가 눈부시다면, 한 해 만 삼천 명이 자살하고, 극심한 지역 불평등과 정치·경제적 양극화로 몸살을 앓으며, 최고의 집값으로 극악한 주거환경까지에 이르는 온갖 내부의 모순들도 같이 바라봐야 맞지 않은가. 세계 7위의 드높은 탄소 배출량에, 수많은 남반구에 각종 공해·유해산업을 수출하는 기후악당의 부끄러움은 그 눈부심 가운데 있는가? 폭풍 같은 성장 시대를 거쳐낸 후 무너져 내린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보여주듯이, ‘한강의 기적’은 수없이 많은 어두운 그늘을 그 속에 드리우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자유무역은 능사가 아니다. 자유무역은, 민간업체에 의한 무역활동을 국가가 일체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방임함으로써 국가의 무역관리 또는 통제가 가해지지 않는 무역이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을 거의 모든 규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자유무역 정책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높여왔다. 자유무역은 엄청난 양의 탄소를 태우는 원거리 수송을 통한 상품의 대량 수출과, 이보다 소모적일 수 없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화석 연료를 대량으로 연소하는 농업 모델의 세계적인 확산을 가져왔다. 세계 시장의 자유화는 화석 연료를 동력삼아 지구를 소모할 자유를 선사한 셈이다. 그리고 유명희 후보는 이 자유무역의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1

WTO는 “무역 시스템(WTO)과 환경보호는 상호 보완적(mutually supportive)일 수 있으며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2고 말하지만, 실은 자유무역은 늘 기후변화 대응보다 우위에 있었다. 기후변화협약과 자유무역협정의 진행 과정을 비교해보면 모순이 여실히 드러난다. 유엔기후협약과 교토의정서에서는 “기후변화를 저지하는 방안으로 채택된 모든 수단은 국제 무역에 대한 제약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다. 호주의 정치학자 로빈 에커슬리(Robyn Eckersley)는 “기후 협상 대표들은 기후 보호를 위한 규정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국제 무역 규정을 재조정할 것을 촉구하기는커녕, 무역 자유화와 세계화 경제의 팽창, 무역 활동을 기후 정책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9월 12일, 유럽 순방을 마친 유 후보의 귀국에 맞추어 청년기후긴급행동은 피켓팅과 함께 기습 인터뷰를 했다. 우리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후보님, 이번에 사무총장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데, 당선이 될 경우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어떻게 펼치실 생각입니까?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감축 대응에 대한 정책 없으신가요? (중략) 이번에 다자무역 체계를 확립하고 ‘저개발국가’들이 한국처럼 될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국가들이 바로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입을 국가들입니다. 혹시 이런 국가들이 성장만이 아닌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이실 생각인가요?”


오랜 침묵 끝에 온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WTO에서도 무역과 환경이 서로 상생을 일으켜 호혜적으로 작용이 돼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잘 인식하고 있고요. 그런 점에 대해서 앞으로도 계속 노력을 해야 합니다.”3 말들은 번지르르 하다. 그러나 정말로 기후대응과 자유무역은 ‘호혜적’일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이 모순적인 ‘친환경·호혜 자유무역’의 의제가 자리 잡는 데 주요한 일조를 했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덕영 교수는 “기후변화협약 채택 과정에서 기후변화 대응이 통상에 장애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삽입하는 데 한국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4 한국은 외견상으로는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무역 의존도에 따른 통상 우위의 태도를 유지하는 자유무역의 든든한 키다리아저씨를 자임한다.


3. 그린뉴딜 한다면서 해외석탄발전소 투자·건설?


한국이 국민 1인당 탄소 배출량 세계 7위(1인당 11.7톤, IEA, 2019)로 기후악당의 오명을 뒤집어쓴 지는 꽤 되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자국뿐 아니라 해외에 회색 산업 투자 공조를 일삼는 악당 중의 악당이라는 데 있다. 영국의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CAT)’은 ‘세계 4대 기후 악당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한국을 선정한 바 있다. 2015년 세계 투자 철회의 날(Global 


Divestment Day) 국제 NGO 아바즈(Avaaz)는 한국이 지원한 해외 석탄 보조금 규모가 세계 1위라는 OECD 기밀문서를 공개했다.5 한국 정부는 한국전력 등이 2000년대 이후 해외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하면 산업은행(KDB), 수출입은행(KEXIM), 무역보험공사(K-SUR)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금융지원을 해오고 있다.6 규모 면에서도 어마어마하다. 한국수출입은행이 해외석탄발전 사업에 제공한 대출은 2018년까지 총 12건으로 총 6조 1,788억 원, 한국무역보험공사는 2018년까지 해외 석탄발전 사업 총 10건에 대해 5조 1,698억 원을 수출신용 자금으로 대주었고, 한국산업은행의 해외석탄발전 금융제공은 3,356억 원에 다다른다.7 어쩌면 어디선가는 자랑스럽게 말해지는 숫자일 것이다.


하지만 해외석탄발전소를 투자 건설하는 과정 속에서는 온갖 착취와 재난, 비가역적 변화가 빚어진다. 직접적으로 인근 지역주민의 건강피해는 물론이고, 시간과 거리를 두고 (지금 당장도) 불확실하게 닥쳐오는 기후위기의 주된 원인이 된다. 건설과정에서의 생태계 파괴와, 발전소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일어나는 석탄채굴과 운송 과정에서의 파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중앙형 전력구조가 공고화되면 현지 독점 권력이 강화되며, 수출형으로 전력망 시스템 재편되면 경제 사다리(Economic corrido)의 형성에 중추가 되어 지속적인 전 지구적 착취망이 만들어진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한국이 석탄발전소를 ‘수출’한 곳 인근의 선주민, 지역민들은 이러한 생태계 파괴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왔고 중단을 호소해왔다. 인도네시아의 찌르본과 인니 등의 주민들은 석탄발전소로 인해 생계의 터전을 잃었고 대부분 공해와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4GW 용량의 석탄 발전시설이 가동 중인 인도네시아 반텐주는 인도네시아 급성호흡기감염증(ARI) 수치가 가장 높은 5개 주에 속한다. 1984년 석탄발전소가 들어선 이후 물과 땅이 오염돼 주민들은 주요 수입원을 잃기도 했다.”8 이들은 작년 서울중앙지법에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산업은행을 상대로 무역보험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9 한국 정부가 자국민을 위해서는 탈석탄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책 금융기관을 통해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이중적이라고 비판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6월 30일 인도네시아 인니 석탄화력발전소 투자와, 자와 9,10호기 사업(2GW 규모) 추진이 결정되고, 10월 5일 베트남 붕앙 2호기 사업(1.2GW) 투자, 건설을 확정된 것을 보면 그 비판은 그들의 귀에 들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이 ‘이중잣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한국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를 넘어, 이제는 파괴를 수출하는 ‘가해국’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부와 한국전력, 공적금융기관들은 이번 국정감사와 각종 입장표명에서도 다음과 같이 해외석탄투자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폈다. 첫째, 그린뉴딜은 국내정책이다. 둘째, 새로 짓는 발전소는 OECD 가이드라인에서는 허용한 초초입계압 기술로 건설되는 친환경 석탄화력발전소라서 괜찮다. 셋째, 이 석탄발전소들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에서 요청한 것이고 우리는 개발도상국의 단계적 상황 인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니면 중국이 수주를 따가 더 환경에 유해한 발전소가 건설된다.10 책임을 회피하려는 변명의 향연이었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모순이지 않을 수 없다. 상세히 살펴보면 사실이 아닌 것도 있고, 형용모순인 낱말도 있으며, 세계적 추세와 흐름을 읽지 못하는 무지함도 엿보인다. 차례차례 반박해보자.


먼저 그린뉴딜은 국내정책이 아니다. 그린뉴딜은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고, 인도네시아 지구 베트남 지구 한국 지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한국판 뉴딜 속 그린뉴딜이 2025년까지 73조 원의 세금을 쏟아 부어 5년 동안 감축할 것으로 예상되는 탄소 배출량은 1,229만 톤으로 쥐꼬리만 한 규모에 불과하다. 한국이 가장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해의 탄소배출량이 약 7억 톤이니, 6분의 1, 연수로 나누면 30분의 1이다. 새로 짓는 석탄발전소들을 몇 년 간 돌리면 한국판 그린뉴딜의 감축량은 상쇄되고도 남는다.11 자세하게 살펴보면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가 30년간 홀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2억 톤에 달하니 그린뉴딜 감축분의 15배가 넘는 양이고, 같은 햇수로 비교하면 얼추 3배(2.7배)가 나온다. 그렇기에 왈히(Walhi), 350org 등 9개의 국제 환경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신규석탄발전에 대한 자금지원을 비판하며 ‘이게 그린뉴딜이냐’는 전면광고를 워싱턴포스트에 실은 바 있다. 이 이 뉴딜은 기후위기를 막지 못한다. 녹색분칠일 뿐이다. 기후정의는 실종된 지 오래고 말이다.


다음으로, 친환경 석탄화력발전소는 형용모순이다. OECD 가이드라인을 들먹이지 마라. OECD 가이드라인이 규모 500MW를 초과하는 초초임계압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해서는 투자를 허용하는 예외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OECD 국가 대부분은 이미 해외석탄발전 투자 자체를 중단하였다. OECD 가이드라인의 예외 조항을 이유로 해외석탄발전 투자를 하고 있는 국가는 현재 일본과 한국뿐인데, 이마저도 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테이블에서 한국은 강력하게 석탄금지에 반대해 틈을 열어놨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에 기대서 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또한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초초임계압(Ultra-Supercritical) 보일러 기술은 석탄화력발전 설비 중 가장 효율이 높은 설비이나, 노후 기술인 아임계에 비해 에너지효율 차이는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여전히 가스복합보다 2배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친환경 석탄발전소는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기괴한 혼종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는 석탄발전소가 필수적이지 않다. 많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군부와 연계된 개발주도세력이 해외석탄투자를 유치하기도, 전력잉여가 존재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한전의 해외석탄발전사업 소재 지역은 이미 99-100% 전기보급이 완료된 공업지역이며, 오히려 현재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저탄소 발전원 확대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에너지 전환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 나라 정부들에서 석탄화력발전소 수주를 공고한 데는 그 뒷배경이 있다. 이를테면 인도네시아의 경우 군부와 밀접하게 연결된 세력이 석탄투자 유치를 이끌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경제통상부 장관은 장군 출신으로 석탄 채굴계열의 기업지배구조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 산업, 특히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산업은 돈이 집중되는 곳이라, 각종 카르텔과 부패와 곳곳에 연결되어 있다. 특히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경우 지금껏 그런 사례가 많았다. 한국정부의 ‘그’ 나라들이 “전력이 부족하고, 수요가 많기에 어쩔 수 없이 건설(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편향이 숨어있다.


반면 한국정부와 공적금융기관이 해외석탄발전 수주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있다. 기업 살리기, 특히 “두산중공업 살리기”라고 보면 될 성싶다. 대부분의 주류 경제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사를 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은 해외 석탄 발전 사업마저 퇴출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그나마 인도네시아 사업은 진행하기로 하면서 숨통이 트이게 됐다.”12 이미 3조를 국고에서 지원했는데 앞으로 먹고살 사업까지 정부와 공적금융기관이 나서서 따주고 있다. 그 기업의 경영악화가 시대착오적인 석탄발전소 탓이었는데 말이다. ‘팀코리아’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는 가운데 기후는 뒷전이 되었다. 가장 중한 것들이 고려되고 있지 않다.


숨통이 트이다니, 누구는 숨이 가빠 올 텐데, 누구는 목숨이 끊어질 텐데. 숨 하니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8개월 산 아이가 숨이 끊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러운 석탄발전소 옆의 삶이 그렇단다. 이에 분노해 농사지으며 살던 주민들은 활동가가 된다. 진실을 찾고 알리려 온 힘을 쓰는데, 자주 목숨을 위협받는다. 그리고 죽는다. 죽임당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동지 디안은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는데, 자기는 사고라 믿지 않는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아시아 활동가들이 노력하는 연대는 생존을 위함이다.



4. 모두 다 거짓말, 녹색분칠 벗겨 내기


요새 그린워싱이 아주 풍년이다. 포스코는 친환경 ‘철강’을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고, GS칼텍스는 친환경 원료 생산을 늘리겠다고 곳곳에 다짐을 알린다. SK는 ‘환경’이 붙는 온갖 곳에다가 돈을 내밀고, LG는 친환경 선언에 맛들린 듯 공표하기에 정신이 없으며. 삼성은 지속가능경영을 내세우며 곳곳에 친환경 마크를 붙이고 있다. 기업들의 이 열정 어린 수고에 감동을 받기에 잠시, 이 기업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을 해왔고 하고 있는가.

엄청난 면적의 열대우림이 이미 잘려나갔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학살당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대판 노예로 주변화되어 대대로 착취당하고 있다. 사진은 인도네시아 Sukabumi에 있는 팜 농장 전경.
사진 출처 : Tom Fisk


2020년 6월 25일 뉴스타파와 알 자지라(Al Jazeera)의 게코 프로젝트(The Gecko Project)는 인도네시아 파푸아에 터 잡은 한국계 기업 코린도가 2,200만 달러(한화 240억)을 불법 수수하고 서울의 두 배 크기 토지 개발권을 따냈다는 탐사보도를 내놨다. 코린도 팜유 농장의 토지강탈(Land Grabbing)과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함께 파푸아에 있는 포스코 인터내셔널의 팜유산업도 불법 수탈, 방화, 노동 착취, 청부살인 등 각종 만행을 일삼았지만 처벌 한번 받은 적 없이 승승장구 중이다. 삼성물산과 LG상사 등 타 한국 기업 종합상사들도 인도네시아에서 팜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끔찍하고 부조리하게 자행된 수탈·착취·파괴에 누가 책임지고 있는가. 엄청난 면적의 열대우림이 이미 잘려나갔고, 그 과정에서 선주민들이 학살당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대판 노예로 주변화 되어 대대로 착취당하고 있다. 인근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은 그야말로 아작이 났고, 이미 무지막지하게 배출되었고 앞으로도 배출될 탄소는 기후위기를 더욱 가속할 것이다. 이미 죽은 생명과, 죽어가고 있는 생명과, 앞으로 죽을 생명이 도처에 어른거린다.


요새 이 팜유 기업들은 ‘지속가능성’에 삼매경이다. 지속가능한 팜유농업을 하겠다고 발표하며 비판을 피해가려 한다. 지속가능팜유인증(certified sustainable palm oil ∙ CSPO)마크를 붙여 “깨끗한 녹색 팜유”를 팔고 온 곳에서 팔린다. 비건 음식에도 자주 들어간다. 이것으로 얼룩진 그늘의 참상을 가리는 그린워싱 효과가 발생한다. 일종의 위장환경주의다. 하지만 팜유산업은 그 속성상 지속가능할 수 없는 산업이지 않은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재생에너지로 눈을 돌려보자.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 가중치를 통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및 연료 혼합의무화제도 관리운영지침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s)’ 제도를 통해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에너지 생산을 금전적으로 보조하고 있다. 전체 신재생에너지의 27.4%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석탄발전소 또는 전용 보일러에서 목재펠릿, 목재칩, Bio-SRF(폐기물 고형연료, Biomass-Solid Refuse Fuel) 등을 연소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기존 화석연료보다도 더 높고, 온실가스 배출이 저감되기는커녕 오히려 높아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며, 목재 생산지의 산림이 황폐화되는 등 갖은 악효과를 낳는다.


중요한 건 뭘 태우는지다. 우리나라의 바이오매스 발전은 거의 전량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에 바이오매스 발전의 급격한 증가는 곧 바이오매스 연료 수입량의 급격한 증가를 의미한다. 실제로, 바이오매스 중 목재팰릿의 수입의존도는 지난 4년간 평균 97%에 달했으며, 목재팰릿의 수입량은 RPS 제도가 도입된 2012년 약 12만 톤에서, 2018년 약 3백만 톤으로 6년간 25배 이상 증가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대부분의 목재펠릿은 베트남에서 생산되었으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다른 동남아 국가로부터의 수입 비중도 상당하다.13 이 Bio-SRF에는 팜껍질인 PKS(Plam Kernel Shell)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도 상당하나 통계상 집계의 어려움과, 무역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집계 방식 탓에 주목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는 청정에너지라 불리는 신재생에너지의 이름으로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팜껍질을 비롯한 생물연료를 수입해 들여와 태우고 있다. 앞서 본 코린도, 삼성물산, 포스코인터네셔널의 팜유산업과 같이 피로 얼룩진 보이지 않는 생산주기를 거쳐 오는 팜껍질을 청정에너지, 신재생에너지 이름으로 보조금까지 받아다가 태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가 간 기후부정의(Climate Injustice)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한다. 모든 기업이 친환경에 여념이 없는데, 한국과 아시아 국가에서는 착취의 신음이 사라진 적도, 탄소 배출량이 줄어든 적도 없다. 친환경이라 불리는 말들과 제도들을 자세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녹색이라 부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 나가며, 미증유의 기후위기 대응하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21세기 인류는 무엇과 맞서야 하는가. 전 세계인이 한국인처럼 자원을 소비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지구 3.3개가 필요하다.14 반면 현재 한국이 내놓고 있는 위기를 풀어갈 해법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경제위기와 기후위기를 풀어가고자 그린뉴딜을 국책과제로 내걸면서 한쪽에서는 해외석탄발전소 투자와 건설을 일삼고, 재생에너지를 확충하자면서 탄소배출과 기후부정의로 범벅된 Bio-SRF(팜 껍질)을 수입해 보조금을 받고 태운다. 이러한 한국의 경제개발 모델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기후위기를 막지도 못한다. 기후위기를 못내 인정하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정도를 설정하는 ‘형식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은 지구와 생명을 착취하는 사회·경제 구조를 바꾸고 구체적인 규제와 정책을 세심하게 도입하는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응이 요구된다. 이윤을 위한 무한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근본 동학이 존재하는 한, 기후위기를 막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이 위기가 경제성장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기후변화를 마주한 대한민국의 모순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린워싱을 벗겨내고 기후정의를 외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 본 글은 청년기후긴급행동 유명무실팀의 뉴스타파 탐사보도 기획안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함께 지원한 윤서와 민주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공모전에서 탈락한 후 현재 여력과 자금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으나, 이 중한 사안들을 저희는 계속 주시하고 변화를 일구어 갈 방안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도움과 조언을 주실 수 있다면 아래 기재된 주소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노마(장윤석): joel1030@naver.com , 강은빈: ebin105@naver.com



* 나오미 클라인(2014), 이순희 옮김,『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열린책들, 2016, 참고 


UNEP∙WTO(2009), Trade and Climate Change: A report by the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and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http://ecpi.or.kr/ ↩  


    청년기후긴급행동, 인천에 상륙하다 (feat. 유명희 WTO 사무총장 후보) 2020.9.14 ↩  


    환경일보, 김경태기자, “‘기후변화’가 세계 무역질서 바꾼다”. 2015.04.24 ↩  


    그린피스, 당신이 미처 몰랐을 세금과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의 연결고리, 2018.09.10 ↩  


    한국경제, 구은서, 김형호 기자, 문 대통령 “한국이 ‘기후악당’이라니…동의 힘들다”, 2020.05.20 ↩  


    박지혜, 이소영, 김주진, 투자자와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는 나쁜 투자, 2019.1., 사단법인기후솔루션 | 나라살림연구소, “한국은 기후악당이다”에 대한 답 “나(개발도상국)때는 말이야”, 2020.06.02에서 재인용 ↩  


    BBC코리아, “환경: 한국, ‘그린뉴딜’ 외치면서 해외 석탄사업 투자 왜?”, 2020.9.17 ↩경향신문, 김한솔 기자, �석탄 투자국’ 한국 법원 찾아온 인니 주민들 �우리나라에 석탄발전소 제발 그만 지으세요�, 2019.09.29 ↩


기후솔루션 오동재, “[FACT CHECK] 한전의 해외석탄화력발전사업, 오해와 진실(2020. 8. 27.)” 


어쩌면, 정부가 2050년 넷-제로(Net-zero), 2030년 절반감축이라는 그린뉴딜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도 내걸지 않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안소영 기자 “한전, 인니 화력발전 사업 예정대로 추진… 두산重 숨통트여”, 2020.6.30 ↩


기후솔루션 외, 헌법소원 심판청구서 –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신재생에너지법)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및 연료 혼합의무화제도 관리․운영지침(RPS지침)에 대한 헌법소원, 2020.09.28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GFN)의 세계 생태발자국 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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