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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Nov 11. 2020

아야프 프로보케이션 전

Provocation

<11월 12일, 아야프 프로보케이션이 열립니다. Next week, AYARF Provocation is Coming.

- https://stibee.com/.../kEMSv_P4rYYwTnwIRZ5ZEiYObb23Qw==>


내일, 한 시 정각에 아야프 최종 발표가 있습니다. 발표제목은 ‘녹색 분칠에서 녹색 전환으로: 한국 기업의 전 지구적 생태학살’입니다. (15분,,)


네 달 전 처음 이 일들을 봤습니다. 잠 못 이루고 까맣게 타기만 하던 기억이 납니다.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에 아야프에 지원했고, 이렇게 발표를 앞두고 있네요.


여기저기 다니고 이분저분 만나며 보고 들은 게 많은데 15분 안에 다 전할 재간이 없네요. 모두 결과보고서에는 적어 두었습니다. 길어지더라도 줄이지 않고 다 넣어 두었어요. 더 듣고 알고 싶으신 분은 이걸 봐주세요.


보통 연구에서는 좁히는 게 중요하다는 데 저는 활동도 하려고 무리하다 보니 넓어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당장 보는 케이스들이 팜유산업, 해외석탄, 화학사고 이 세 개인데 어떻게 어느 하나 뺄 수가 있나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아직도 진행중이며, 이야기되지도 않아 어떻게든 알려야 하는 그런 슬픔들인데요. 제가 손을 놓는 것 같아서 못 버리고 일단 다 가져가고 있습니다.


한 한달 전부터 이게 발표가 아니라 폭로이자 공론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세게 말하면 선전포고겠구나, 싶었어요. 지구 반대편, 아니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이 학살에 가담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겠다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어깨가 많이 무거웠습니다. 다른 것보다 제게 주어진 이 짧은 시간이 저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요. 나는 대리인이다, 내가 들은 이야기와 본 장면을 전하고 언어를 붙이기만 하는 그런 대리인이다. 파괴되고 사라진 것들과 학살의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의 한을 대신 전하는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가 그럴 깜냥이 되는지 헷갈립니다. 너무 넓게 잡고, 연결되는 것을 다 잡아들어가다가 조금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을 더 청해 듣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그리고 막히는 지점도 많았습니다. 기업들이 움직이는 맥락과 그 분명한 증거를 잡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더군요. 사고는 났고, 지옥은 펼쳐졌는데 누가 그랬는지를 모릅니다. 기업은 그 자체로 책임을 세탁하니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체제의 가장 큰 기능은 비가시화라 생각합니다.


연구활동가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먼저 몸은 하난데 해야 하는 건 두 개였고,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버릴까봐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연구활동가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정말 중요하구나, 계속 고민해야 하는 이름이구나 싶었습니다.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할 뿐더러, 위험합니다.


연구자의 객관성이, 어설픈 중립을 내걸고 결국 힘과 지식이 있는 자들의 옆에 있는 꼴을 많이 봐왔습니다. 제가 계속 만나고 다닌, 또 존경하는 현장 옆에서 연구하고 일하는 활동가 분들은 하나같이 학자에 치를 덜더군요. 짐칫 팔짱을 끼고 계산되고 측정되는 것만 이야기하는 이들과 그들이 속한 학계는 “가망이 없다”고.


학자꿈나무로서 부끄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래서 연구활동가라는 이름이 소중합니다. 이론의 순수함과 현실의 잔혹함이 분명 모순을 빚어내지만, 그 혼란이 없으면 결국 고여 자아와 자신의 위치에 매몰되는 듯합니다.


“만약 세상이 평온하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 위치가 안정적이라서 그런거라고.” 누군가 했던 말입니다. 기후위기로 존재의 집이 모조리 붕괴하기 직전인 지금에, 피해와 가해, 선과 악의 구분선은 생각보다 뚜렷하다 싶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온도는 어떻습니까?" 연구활동가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저는 (저에게도,) 이리 되묻고 싶네요.  그 온도가 양심이고 삶이고 그런 것 같습니다.


발표 이름은 프로보케이션으로. 도발적인 제안이랍니다. 잘 도발하고 오겠습니다.. 회사원은 미생 볼 때부터 맘에 안 들었으니,, 괜찮습니다, 센 연구활동 해도 입에 풀칠만 하고 살게 해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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