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서른둘

12.1

by 노마 장윤석

0.


십이월이다. 저번 달, 의 마지막 주말은 태풍의 눈이라 좀 쉬기도 하고 그랬다. 마감을 어겨, 마감이 코앞이라, 마감이 남아 마음은 못내 편치 못하다. 생태학살, 기후위기와 주거,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해 연구보고서 세 편을 써야 한다. 두 편은 저번 달이 가기 전에 갈무리하려 했건만, 몸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못했다. 연구‘활동’을 한답시고 시간이 허락하지 않을 때는 한 풀 지나갔지만, 막상 활동이 다 취소되며 잠시 시간이 뜨자 마음이 잡히지 않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섰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론가 가다 보면 온 게 있으니까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도 가물가물 하다. 내 이야기나 하자고 온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초심을 뒤적이는 게 중요하다 싶다. 그보다 내 이야기나 하자고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덜어내고 싶다. 한 두어 달 전만 해도 나를 내보이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초라하게 여겨진다. 언제까지 눈을 자기에게만 둘 것인가. 세상에는 더 시선이 가야하는 일들이 많다.


1.


이를테면, 서울역에서 십이월의 첫날 두 시에 있었던 철도노동자들의 파업 장면 하나. 철도공사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 네트웍스의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말하며 비정규직 총파업에 들어갔다. 코로나 2.5단계를 코앞에 두고 준계엄 분위기가 얕게 깔렸음에도 노동자들은 역사에 나와 머리끈을 묶어야 했다. “투쟁”을 외치는 게 조금 어색해 보이는 내 또래 젊은 노동자 몇 분이 눈에 띄었다. 저이는 파업, 투쟁 같은 말이 자신의 삶에 절박한 말로 다가올지 알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인국공 일이나 전공의 건에서 보여진 청년 세대의 민낯은, 어떤 시대적 불안함이라고 본다. ‘고용 없는 성장(도 없는)’ 시대에 비정규직 문제가 (당위보다 확률적으로) 남일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알려야 해서 거리에, 광장에, 혹은 어디든 나서야 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다. 얼마 전 근 한 달간 기획한 베트남 붕앙-2 석(탄)지순례 액션을 취소했다. 이 사업(나는 이 ‘사업’을 ‘생태학살’이라고 부른다)에 참여하는 한국전력, 수출입 은행,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하나은행 이 다섯 군데 ‘팀 코리아’ 악당들 본사 앞을 자전거 타고 순례하며 반대를 표하는 큰 액션 기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얼 해도 시선이 좋지 않을 분위기라, 조금 허탈한 맘으로 나가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총파업을 결의한 저분들도 그 고민을 했을 것이다. 긴 구호들 속에 “국민들께 저희 상황을 좋게 봐주시기를,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는 말이 껴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보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노동조건)이 더 무섭”기에 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한편 ‘태업’이라는 단어가 못내 걸린다. 조선일보 기자가 기사 제목으로 “코레일 노조 태업…예매 열차 확인하세요.”하고 썼고, 철도공사가 “27일 철도노조 태업으로 일부 열차 지연 운행 예상”이라 보도자료를 냈다. 노조에서는 ‘태업’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파업’이라고만 쓰고 있을 뿐이다. 어찌 된 영문일까. 노동법에서 ‘노동쟁의 행위’에 파업(Strike)과 태업(Slowdown)은 분류되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파업은 “노동 조건의 유지 및 개선을 위하여, 또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한꺼번에 작업을 중지하는 일”, 태업은 “노동 쟁의 행위의 하나. 겉으로는 일을 하지만 의도적으로 일을 게을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손해를 주는 방법”이라 정의되어 있다. (준법 여부가 파업과 태업을 가르는 것은 아닌 듯한데, 맞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조선일보와 철도공사가 쓴 ‘태업’에는 근무 태업 쓸 때처럼 일을 게을리한다는 조소와 비아냥이 섞여있는 것 같을까. 무엇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유독 싸늘하게 느껴져 걱정이다.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민주노총을 향해 국무총리는 “노동자의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지금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고, 수능도 앞두었고(수능이 핑계로 등장했다) (...)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방역을 흔드는 집회에 무관용의 원칙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단다. 내가 놀란 점은, 언제부터 노동자와 국민이 다른 사람들이었나.


그린뉴딜을 계속 들여다보며, 지금은 ‘정의로운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말이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내거는 모든 대안에 정의로운 전환은 핵심이 되어있다. 그렇지만, (국무총리가 쓴 것처럼) 노동자가 ‘국민’에서 분리되어 ‘사회’ 안의 특수한 집단, 그것도 밥그릇에 목숨 거느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방역을 흔든다는 식으로 불려지고 보인다면, 정의로운 전환은 위태롭다. 기차를 타는 사람과 기차역에서 일하는 사람이 시위의 장면에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떤 착각일까. 노동자가 ‘노동자 민중’하고 민중의 다른 이름 격으로 불릴 때가, 노동 운동이 민주화의 주역으로 여겨질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무언가 달라졌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과 발을 주로 쓰는 현실 노동을 하고 있고, 그 조건이 나아지기는커녕 비정규직, 플랫폼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쿠팡, 콜센터 감염처럼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그 모순이 여실히 드러났는데 ‘노동’이라는 말은 떠오르기보다 오히려 보편의 자리에서 ‘특수’의 자리로 옮겨진 듯하다. ‘플랫폼 노동’이 ‘노동’으로 불리지 않는 것처럼 (의제로서) 노동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세계고 한국이고 불평등 수치는 인류가 전쟁 말고는 풀어본 적이 없다 할 정도로 최고로 높은데(1930년대 이차 세계대전 직전과 같다는데), 적색은 희미해져 분홍빛이 된 듯하여 수심이 깊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으면 한다. 내가 노동이 어떻고 저렇고 할 처지나 자격이 되지 않는다 생각한다.) 그저, 자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싶은 것이다.



2.


하지만 그곳에도 이곳에도 사람은 분명히 있다. 두 번째 장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서울역에 가기를 피하는데, 보아서는 안 될 것을(하지만 보아야만 하는 것을) 보고 돌아와 기분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문득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하고 썼던 태일 씨가 생각난다. 그가 60년에서 70년 사이 적었던 서울역의 풍경에는 박스와 판자와 비닐과 넝마를 덮은 노숙인들이 가득했는데, 오늘도 그랬다. 오늘은 유달리 많은 분들이 계셨다. 서울역 광장이 가득 차 보일 정도로. 코로나로 안 그래도 극심한 노인빈곤율이 심각해진 탓일까. 이번 2단계로 많은 곳이 문을 닫은 탓일까. 그보다 어젯밤은 영하 4도였는데 저분들은 어떻게 밤을 나신 걸까.


저분들은 방역이 이단계든 삼단계든 거리두기 못한다. (거리 못 둘 만큼 많이 계셨다.) 국민의 안전과 방역은 명분으로 많이 들먹여지는데 누가 국민에 포함되지 않고, 누가 방역에서 제외되는지는 답할 필요가 없는 물음이다. 난민은 저 먼 곳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기후난민도 저기 투발루, 동남아시아에서만 나는 게 아니라 이 나라 내부의 기후난민도 생긴다. 코로나 여파를 포함하여 말이다.


서울역 옆에는 쪽방촌이 있다. 강준모 연구원이 ‘기후격차와 사회복지의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의(동자촌) 주거문제를 다룬 사례 연구를 하신 바 있다. 역시나 쪽방촌 주민들의 탄소발자국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재난과 스며드는 폭력에는 취약하기 그지없겠지만 말이다. 참 막막하고 부끄러워지고 그렇다.


“왜 사회는 진보하는데 빈곤은 도처에 널려있는가?” 141여 년 전 헨리 조지의 명료한 물음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 나는 (기후위기로 파국 직전의) 세상이 진보했다는데 별 동의하지는 않지만, 차라리 빈곤이라도 다 해결되었으면 기후위기로 모든 것이 다 무너진대도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겠다. 그간 이룩했다는 부와 진보는 어디에 있을까. 잘 살게 해 주겠다고 약조하고 그렇게 경제성장했으면, 적어도 거리에 토사구팽처럼 노동력과 젊음을 빼앗기고 나앉은 사람들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얼마면 될까. 저분들께 숙식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다시 마땅한 일상을 찾을 수 있게끔 하는데 얼마나 필요할까. 나는 행정을 잘 몰라 섣불리 말은 못 하겠지만, 지금 광화문 광장 갈아엎는 데 쓰는 800억이면 되지 않을까. (세월호 추모공간도 포클레인이 집어다가 한편에 치워놨다. 차로를 자전거도로 바꾸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건 페인트로 선만 그어도 될 일이지 않나, 아니면 그 큰 나무화분 가져다 놓던가..) 그보다 전 국민(만 13세 이상)에게 나눠준 통신비 2만 원 총 9천300억이면 전국의 노숙인들이 겨울을 나고도 남지 않을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광화문의 옆 저 호텔 하나면 충분하겠다는 생각도 했다(서유럽 권에서는 코로나가 심각해지자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수용해 노숙인들에게 제공했다).


원래 조를 넘어가면 수 감각이 사라졌는데, 요새 기업 뒷조사나, 정부 주무부처 예산이나 정책을 찾아보다 보니 보이는 게 조금 있다. 이 나라의 국방비 예산이 한 해 50조라던가, 그중 방위비 분담금으로 미국에 넙죽 주는 돈만 1조 2000억이라던가, 30대 재벌 계열사 사내보유금이 1000조라던가, 삼성전자 한 해 R&D 예산이 18조라던가 같은 거 말이다. 이 갭이 너무 커서 현실이 초현실 같다.


한편, 서울역의 노숙인 생각을 하니 최민식 작가가 떠오른다(조세희 작가도). 나는 그의 사진을 보고 예술을 판별하는 기준이 생겼다. 어느 만큼 타자의 고통에 가닿으려고 했나, 왜 찍어서는 혹은 그려서는 안 될 것을 찍고 그렸고 어떤 마음이었나. 내가 보는 눈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요새 미술관이나 사진전에 열리는 전시들에서, 자아를 화려한 수사여구로 치장해서 팔아먹는 듯한 작품(이라 불리는 것)들을 자주 본다. 서점에서도 심지어 독립출판 서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왜 일기장을 출판하나.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나 모르겠다.) 그렇게 자기만 보고 자기 말만 할 거면 자기 혼자 방 안에서 짝짜궁 할 것이지 굳이 자원과 에너지를 써다가 타인 앞에 전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지어 파나. 이 비판에서 나도 자유롭지 않지 싶어 멎쩍다. 곧 내가 쓴 글을 인쇄해야 할 텐데, 나는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은 글을 써낼 수 있을까.



3.


요새 기후운동이 누구의 목소리를 올리고 누구의 곁에 있고 누구와 연대해야 할까 생각을 많이 했다. 기후와 녹색이 가진 넓은 범위와 총체성이, 모두의 문제라는 정체성이, 연대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워싱으로 이어지는 것을 줄곧 본다. 적어도 광고판에 실린 녹색은 웬만해서는 그린워싱이라고 보면 되겠다. 분명히 존재하는 갈등과 처참함에 눈을 두지 않고, 미래의 위협과, 미래의 설계, 탄소배출량의 수치적 측면만에 몰입할 때, 이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코로나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애써 찾아보려고 했을 때가 있었는데, 무서운 익숙함은 마스크처럼 일상에 스며들어 사람을 무감각하게 하는 듯하다. 하지만 변화는 조금씩 천천히, 누군가에게는 급속하고 단절적으로 일어났다. 숫자 몇 개가 드러내는 이 변화는 때때로 말문을 막는다. 20대 여성의 자살률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조용한 죽음이라 했나, 배달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인 모두 어떻게 되어나. 도대체 우리가 사는 곳은 어디로 가고 있나. 먹먹해지는 부분이다.


결국 서울인권영화제의 구호처럼 “연대가 희망이다.”(이번 주 까지 26편의 섬세한 이야기들이 무료로 평등하게 온라인 상영되니 많이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구체적인 말을 할 실력과 실현해낼 힘이 부족해 여간 머쓰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한 끼 굶지 않고 따뜻한 도서관과 방에서 세금으로 연구비 받으면서 글을 쓴다는 먹물에 속하는 이로서(내가 나를 연구노동자라고 부른다고 어떤 특권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끄러움은 계속 마음 한켠에 남겨두어야겠다. 부끄럽지 않은 연구활동을 한다는 게 뭔지 물어보면 또 쉬이 답할 수가 없지만서도.

내가 이번 달 마무리 지어야 하는 연구에 쓸 말들과 개념과 이야기들이 위에서 꺼냈던 장면과 물음과 마음과 동떨어지 않았으면 한다. 쉬이 잊게 될까 쉬이 지나쳐 버릴까 쉬이 ‘선택과 집중’해버릴까 겁이 나므로 내 곁에 계신 여러 분들이 자주 되새겨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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