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7일 끄적임

강박, 엄마, 편지, 성찰, 안일, 기원, 길, 공개,

by 노마 장윤석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아니, 둘이었던가. 그 전에 어떤 원칙을 말하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엔터를 한 번도 치지 않아보겠다. 백스페이스도 치지 않아보겠다. 굳이 그럴 것까지야, 싶겠지만 내가 당착한 어떤 굴레로부터 헤어나오고 싶은 몸부림의 일환임을 밝혀둔다. 쓰지 못하고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오래전에 그닥 오래전에 깨달은 것도 아니지만, 이것이 어떤 깨달음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건너띄는 것들, 망설이는 것들에 그 관성에 사로잡혀버렸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일기를 못 쓴지는 좀 됐다. 일기장에 내밀한 이야기들을 적고 그것들을 읽고 기억하고 돌아보고 생각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5년 동안 쓰던 일기장이 마지막 페이지의 종지부에 다달코 난 뒤에는 잘 모르는 기분으로 살았다. 노트북만한 일기장을 그렇다고 들고다닐 수는 없으니 늘 나의 내밀한 메모 혹은 끄적임이라 부르는 것들은 산발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미련없이 그저 단상들은 흩날리고 가기만 해도 된다. 그런데 나는 움켜쥐고 싶었다. 움켜쥐어서 그것들이 나를 바꾸도록, 적어도 나를 이 치욕에서 데리고 나가 살리기를 바랬다. 어느순간 성찰의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양심이란 여느때나 머무는 것이 아니다. 양심과의 관계가 성찰이려나. 편하게 살고 싶은 본능 혹은 관성에 그대로 편승하고야 마는 그런 것들, 어떤 해류들, 그것들을 발견하는 능력들. 여기에 쓰는 것들은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동시에 보이고 싶은 것들이다. 이런 이중성을 인지하고 고백하는 것들이다. 나약함과 의지를 털어놓고 내보이는 것들이다. 용기이자 치기이자 치자인 것들이다. 오래토록 끄적임을 쓰지 않았고, 과거의 메모장이 그렇든 버려두었다. 문서는 하나 열어두었다. 2021끄적임, 이이가 이이의 쪽수가 150p를 넘어갈 때까지 나는 아무 글도 내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곳이 대나무숲 같이 털어둘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은 맞지마는, 그 이야기의 진가는 대나무숲에 말했음에도 어디선가 듣고 있었던 의문의 청자에 있다. 그가 없었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지 못한다. 사람은 청자가 필요하다. 설령 아무도 읽지 않더라도 말이다. 나는 그 글, 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글을 꼭 보이고 싶었다. 진심들의 집약체이므로 그러므로. 서두가 길었으나, 꼬리까지 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내일은 이상한 날이다. 내일을 예비하는 마음으로 일찍 안정하여 자면 좋으련만, 8시 부터 12시까지 쉴 틈 없이 무언가가 있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자 감내할 것들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나같은 것에 강의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영광이오나, 무거움이 없다면 거짓이고, 나는 이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의 나약함을 동시에 확인하게 된다. 그보다 두려움이다. 일요일이 끝나고 말았다는 두려움, 당장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오늘도 하루 더 늙어가고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말았다는 그런 불안감이다. 아까 잠깐 눈물방울들과 함께했다. 나는 활동가를 그만두었지만, 좋은 연구자이지도 않고, 좋은 자식이지도 않고, 좋은 친구이자 동반자이지도 않은 것 같아서 그랬다. 어떤 직 혹은 관계성을 자신을 규정내리는 것에 일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그것이 관계의 수행성에서 나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나약함과 무력함과 못남을 공개한다. 고백한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해류 같은 자연의 운동은 사람의 운동과 같이 목적성을 띄지 않는다. 내가 생태를 말하면서 목적의 견고함을 내려놓지 안고 정당화된 강박으로 확고히 하고 있었다는 데에서 슬픔을 느낀다. 이렇게 써나가다보면 어딘가 닿을 수 있을까. 끄적임을 처음 열 때부터 썼던 이 물음을 더 묻지 않는 그 날까지 두서 없는 막막함을 공유하는 날 용서해주시라. 연약한 것은 나쁜 것도 악한 것도 못난 것도 아니라,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린다. 몸에 힘을 뺄 때 더 멀리 뻗을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엄마, 같이 잘 살아가요. 내일의 나와 엄마, 그리고 잘못 이끌려 이 것을 읽었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좋은 도(길 도)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끄적임 서른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