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평화, 사랑, 믿음, 가을 ; 지리산 둘레길에서 개천절 바이브
한 해를 넷으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가을은 이상한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공허하다. 시간은 늘 예상과는 다르니,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어찌나 작은가. 한 해간 쌓여왔던 혹은 쌓아두었던 것들을 갈음하고 싶다. 계속해서 실패해온 것들을 역시, 오늘은 내보내고 싶다. 조금 개운하게 자세를 잡고, 따스한 마음을 퍼뜨리고 싶다. 각론하고, 지리산 인월 행 심야버스에 올랐다. 글을 쓰고 싶었는데, 버스는 그러기에 너무 따뜻했다. 기사님의 거칠고 친절한 다독임(?) 덕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내릴 수 있었다. 무엇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을까 하면 이 또한 하나의 인과관계일 수는 없지 않냐고 못된 답을 하겠다. 실상사에서 있었던 일들은 한 달하고도 열흘 전에 있었던 것들이었다. 무언가 깨닫고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 삶의 궤적을 얼마나 바꾸어놓았을지는 모르겠다. 관성 대로 가게 되는 것은 어떤 나이브함 혹은 안일함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 방향과 힘으로 이끄는 복잡하고 뚜렸한 구조가 있는 것이다. 그 뿐이다.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하동이 좋아 글로 내려가겠다는 동지와의 전화가 떠오른다. 늘상 느끼는 것이지만 밝은 목소리를 가진 이들은 지독한 어둠을 끌어안고 산다. 귀향(?) 길을 응원하며, 내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전환의 그림들을 생각했다. 어떤 투쟁, 특히 수도와 중앙에서의 투쟁은 지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어느 지점을 넘어설 때 그 관성이 스스로를 잡아먹을 만큼의 무서운 한계가 있다. 일리치가 말했던 제도화의 반생산성이 이것인데, 한국의 세간에서는 이것을 안주 혹은 변절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무엇이 되었든 나도 동지들도 어떤 치명적 버거움을 감각하고 있다. 사람의 연은 끊어질 수 없다. 붉은 실이라고 불교에서 칭하는 그런 관계 혹은 굴레는 그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의지로 손절하더라도, 기억이 가물가물 하더라도, 고의적이든 우연에 맡기든 어떤 인식상의 착각이 생기는 것 뿐이지 인연은 언제나 맺어졌으니 있는 것이다. 한 해 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문자였다. 감감무소식이었던 이가 다시 돌아왔다, 아니 원래 거기 있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떤 믿음인 듯하다. 믿음,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되고 우리가 되는 어떤 관계성의 본질을 믿는 것. 그 뿐이다. 사랑을 찾아서 새벽길에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오래 앉아있으면 춥다. 일어서야 겠다. 나의 고민들에 갇히지 않고, 타인의 시선들에 너무 얽매이지도 않고, 자아와 타자 사이의 그 널뛰기를 유순한 마음으로 타고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