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7 끄적임

녹색당 이야기

by 노마 장윤석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많은 것들이 정신없고 두서없이 일어났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아프고, 서러웠다. 더해서, 이 공간에서 내가 일을 계속 하고 지치는 과정, 덧없음을 느끼는 과정이 반복되어 갈 때 이는 복잡함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런 말들을 내뱉어도 되는걸까. 내가 잔뜩 해야할 일들을 쌓아두고 버티지 못해서 써내려가는 162p에 위치할 이 푸념을 내뱉고, 살고 싶다.

오늘, 머리에 핏물이 부어지는 순간 서늘했다. 추웠다. 지구는 뜨겁다는데 물은 왜 차가운가. 나는 내가 말하는 이 위기에 얼마나 진심인가. 왜 매번 말하고 잊어버리는가. 우리에게 닥친 일들을 잊어버리고, 어찌 살아야하는지를 잊어버리고 마는가. 각론하고, 그저 몸에 들이부어지는 빨간 색소 물이 너무 차가워서 몸이 떨려왔다. 체온반응이라고 퉁 치기에는 공포와도 불안과도 우울과도 증상이 흡사해서 놀랐다. 지나보니, 일부러 웃으려고 했을수도 있겠다. 매 액션 전에 단 한번도 떨리지 않았던 적 없다. 다만, 옆에 사람들을 챙길 여력이 전보다 조금은 더 생겼고, 떨리는 나를 자각하고 안심시킬 정도는 되는 것 뿐이다. 나와 곁을 진정시키고, 웃고,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더니 좀 나았다.

심심한 와중에 찾아온 액션이라서 너무 반갑다고, 매번 줌으로 만나는 우리 기정위 직접 보니 더 반갑다고 호들갑과 너스레를 떨었다. 지나보니 두려움을 반가움으로 이겨내려고 했던 것일지 모르겠다. 사람은 사람으로 아프고 낫고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푸념을 이런 곳에 얼마나 적어댄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입만 아프고 마음만 아플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런 시련들을 얼마나 버티고 지나서 이겨내야 하는걸까. 나는 계속 이렇게 살고 있을까? 녹색당, 이라는 이름은 나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신념이자 품고 있는 사랑이지만, 한편으로 수모와 편견과 버거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녹색당의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말을 하면 기사 한 줄 안 나는 일도 허다하다. 심지어는 보도자료 작업할 일손이나 힘도 부족해서 힘껏 액션 기획해놓고 망하는 일도 수두룩하다. 그래, 우리는 세상에 어떤 변화를 위해 돌을 던졌나. 오늘도 자족하는 하루를 산 것일까? 녹색당 일은 술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대개 보상과 명예 등지가 따르는 일이 아니고, 품은 많이 들고, 관계 기반 공동체라 신경 쓰이는 서늘함도 많고, 아끼는 이들끼리 부딪히는 상처도 아프다. 그래서 마음에 남는 응어리들은 마시고 잊어야 한다. 그게 이 공간이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일지도.

기후정의위원회에서는 미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운영사항에 관해서는 수없이 많은 말들을 해왔고, 힘도 써보려고 했고, (과연 제대로 썼느냐고 나에게도 묻고 싶은 부분이지만) 소통도 노력했고, 많은 것들을 해왔지만 그냥 그렇게 지나왔다. 늘 BAU(하던 그대로)다 우리들은 한 번 지적되고 이야기된 문제가 계속 변화의 물결 속에 놓이지 않는다면, 그저 그대로에 머물 뿐이다. 패턴은 반복된다. 여력은 부족하고, 준비는 미숙하고, 기후위기는 급하고, 우리의 준비도 급하고, 일 분배는 잘 안 되고, 그렇게 계속 그렇게 계속 답답함이 목구멍에 꽉 매일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심각하고, 액션은 시급하고,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라 실천할 때이므로, 잔뜩 온동네방네 찾아가 들수시는 것이다. 기후정의위원회는 녹색당을 농성당으로 만들었다. 이것마저도 안하면 우리의 존재이유가 희미해지는 마당에, 모든 일련의 과정과 행보가 다 하나하나 눈물 없이는 꺼내기도 어려운 것들이지만 나는 버겁다. 정당이자 반정당의 정당인 녹색당의 태생적 모순이 이곳에서 다시 발현된다.

정책위원회에서 나는 매번 갈등한다. 잡다한 일은 다 한다. 속기부터, 회의링크 개설, 진행, 놓친 실무 챙기기, 그리고 등등. 잡무들을 도맡으면서 나는 노동자로 있다. 그리고 욕을 듣는다. 잔소리를 듣는다. 왜 그따위냐는 이야기를 때론 돌려서 때로는 직설적으로 듣는다. 일은 많이 하고, 욕 혹은 훈계도 듣는다. 일과 욕이 같이 많으면 위험해진다. 이 때부터는 자발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책임감과 인내력의 상황으로 돌입되게 된다. 가히 위험한 상태이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게 된다. 이런 마음들 속에서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다. 도대체 정책은 언제 어떻게 만드는 걸까. 누가 나를 가둬놓고 한 달만 연구를 맡겼으면 좋겠다. 내가

오늘 나를 하루종일 우울하게 했던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 큰 절차 없이 그대로 논의되어 나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실력을 방증한다. 논평에 오타를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내보내고 마는 그런 허술함처럼, 치밀하고 분명하게 논의하지 못하고 그저 대강 잡혀버렸다. 이것은 처음 본 것이 아니다. 마감에 쫓겨 서둘러 발간되었던 정책자료집부터, 논평, 당론 모두. 옆에 있는 다른 정당들이 부러워질 때, 그 기분이 참 밉다.

이런 말들을 들었다. 녹색당과 녹색전환연구소에 남아있을 거냐고. 이 공간들에 미래가 막막하지 않느냐는 그런 말들을 듣고, 너 같이 창창한 사람은 어디 좋은 데 가서 편하게 일하고 실제로 세상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는 공간에 있는 것이 어떠냐고 그런 말들을 들었다.

결국 연구자로서의 갈증이 크다. 다른 말로 하면 한심함에 대한 분노와 분개가 가득차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 지경이다. 못 다 쓴 보고서들이, 내가 정말 쓰고 다듬고 말하고 싶었던 글들이 있는데 계속 계속 계속 밀리고 있다. 계속 밀리는 것을 가만 두어야 할까. 그래야 하는 것일까. 정작 내가 맡고 책임져야 하는 일들은, 시급하다는 일들에 무기한 밀려버리고만 마는데 나는 그것들을 그저 두어야 하는걸까. 미쳐버리기 직전의 상태들도 계속 흘러가는 듯하다. 정말 잘하고 싶은데, 떳떳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나의 힘겨움을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어떤 구조, 시스템의 문제로 파악하려고 애를 쓴다. 이것이 내 문제가 되면 너무 쓰리기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가 너무 미워지기 때문에, 소위 건설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기 위한, 나를 너무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한 나의 꿀팁이자, 누군가의 말처럼 너무 ‘착한’ 미련함이다. 구조의 문제로 아무리 치환한다고 해서 마음에 남흔 상흔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리 없으니까. 눈물은 늘 맺히기 마련인 것을.

결국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깨닫는 것은 어떤 착잡한 결론이다. 이 공간이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왜 사람들이 들어오기 두려워하는지, 왜 반복되는지, 왜 떠나는지, 그가 청년이고 (관련한) 재능이 있고 애정이 있을수록 왜 결말은 사랑과 상처를 안고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되는지. 녹색당은 시민사회의 리트머스이기도, 진보정당의 리트머스이기도 한 것 같다. 젊은 나이에 변화를 꿈꾸었던 자들의 최후에도 생각이 미친다. 한국 사회, 그 한 단어 만으로 모든 것이 정리될 때가 잦다. 한국적이다, 라는 아름다운 형용사가 수식하는 게 무엇이든 우리는 그런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니까.

어두운 소리가 길었다. 푸념은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약이기에, 나는 오늘도 비판과 탄식에 머물고 싶은 끝말을 길게 이어낸다. 이어내려고 한다. 씨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마음에 품고 가져왔던 문장 하나는 이렇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시들어가고 있는 나무를 죽게 둘 것인가?’ 약속이 있다. 어떤 약속을 나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했다. 나의 10년을 녹색당에 주어 보겠다고. 신뢰도 코로나보다 빠르게 전염된다. 이 다짐은 다른 이에게서 온 것이기에. 걱정은 많지만 자신감이 없지는 않다. 세 가지 미래 시나리오가 있다고 생각한다. 녹색당이 집권 혹은 영향력 있는 세력이 되거나, 내가 무언가를 통달한 초인이 되거나. 마지막으로 녹색당과 내가 둘 다 잘 되거나. 농담이지만, 우리를 믿고 싶다. 그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인데, 이 공간에는 그런 사람들이 가득하다. 일종의 어떤 실험을 시작한 것마냥,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귀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것 같은 공간이다.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대가와 보상이 따르지 않는, 흐르는 물에 씨를 뿌리는 것 같은 일에 함께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말해주고 함께하는 이들이 곁에 있는 공간이다. 그 까닭에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대가도 돌아오지 않고, 일들만 돌아오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녹색당을 사랑하고 이 곳에서 계속 있을 것이다. 당사에 모두가 돌아가 고요한 이 순간, 등대처럼 내 책상의 스탠드만 켜져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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