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 끄적임

광주

by 노마 장윤석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을 중고서점에서 다시 구했다.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하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아마 2018년에 쓰여진 것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광주의 친구에게 허수경 시인의 글을 주고 싶어서 헤메다가 찾았다. 시인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시/글들을 선물하고 싶었지만, 이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는 어려운 것이라서 산문집이 더 낫지 싶다. 광주의 하늘은 개운하다. 이전부터 해오는 생각이지만 사람은 당신이 나고 자란 공간을 닮는 것 같다. 사람이 그러니 철학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암중모색의 끝에 찾은 혁신을 위한 서론의 공간은 결국 광주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녹색전환을 연구하는 연구원의 입장에서도 서울과 부산, 경남과 충남 등지가 빛을 잃어버린 지금의 형국에서 광주는 마지막 등불과 같은 공간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사람의 만남도 그런 ‘류’의 것이라 흘러가는 것이겠다.

가을이다. 만남이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는 바람과 함께, 우리는 모두 사그러드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무력하고 말았다는 것이 새벽녘의 아픔으로 남았다. 인간이란 그러헤 우연하고도 무력한 존재이구나. 만남 앞에서 피어난 환한 미소들이 세상의 비극을 그저 웃어 지나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떤 씁쓸함이 그 가운데에서 남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구한 운명이더라도 삶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괜찮은 척 하지 않기,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은 그런 것이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건강우선주의를 빛내기. 그 정도였다.

사실 사랑이란 지독한 미움과 버거움과 공존하는 것이다. 견딜 수 없음, 참을 수 없음과 함께 애정이 공존하는 것이라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우리의 의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인식의 부조리를 지나보낼 수 있어야 그 다음의 삶과 사랑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란 자기완결성을 갖고 싶어하는 것들이라, 완벽함과 이상의 망상을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유토피아에 가도 그림자는 있을 것이다. 해가 뜨는 한 생기는 것이 그림자니까 말이다. 이 시대의 보편적 문법에 갇히지 않고, 이 세상을 거쳐간 많은 이들의 지혜를 생각하고 싶다. 나처럼 단순하게 여기지 않았을 텐데. 고작 이 정도였을 리가 없다. 선과 악, 검은 것 흰 것의 이 지긋지긋하고 초라한 이분법이었을 리가 없다.

이것은 막막한 정신의 노동인가. 근면과 노력이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안다. 찾아볼수록 모순과 난점은 끝을 모르고 생겨나는데, 이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우연의 일치로 모든 것이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왔지만 사실 끝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웃은 만큼 울어야 한다.

아직, 그 날을 정리하지 못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 당신이 한 말에서 나는 쓰러져 있던 나를 떠올렸다. 이제는 거의 잊어버린, 너무나 아팠고 나약했던 나를 떠올렸다. 며칠 전 머리에 빨간 핏물을 부으면서, 내가 회색 물을 동지의 머리에 뭇는 것을 지켜보던 그 때, 이 모든 것이 시작된 희망과 오염이 공존하던 그 때 였다. 우리는 정부의 그린 뉴딜을 회색 뉴딜이라고 불렀다. 그처럼 희망의 언어였던 녹색이, 이도저도 아닌 회색이 되어 길을 잃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런 자욱한 안개에 뒤덮인 개와 늑대의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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