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에는 죄가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빚어지는 문제들이 있다. 나는 그럴 때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문제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한 명 한 명 아끼는 사람들을 탓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아리기에, 구조적 어려움의 실체를 밝히고 개선 방안을 갈구하는 것이 시린 마음 잊기에는 제격이다. 매일 밤이 고비지만 어제도 만만치 않았다. 연구소 책상에서 잠들어 여덟 시 회의를 알리는 알람을 듣고 깼다. 일어나서 '일하다가 잠드는 게 최고로 건강하고 좋다.'하고 썼다. 심란함에 뒤척이는 것보다 그게 낫다.
하고싶은 말이 명확하게 있지 않다. 그저 사르트르가 썼던 구토처럼 이 세상에 감도는 무언가를 형용하려고 투쟁하는 것 뿐이다. 힘든 소리를 반복하고 싶지 않지만, 그 힘듦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안다. 이를테면, 간밤에 썼던 것과 같이 '마음이 답답할 때는 잠을 자는 것이 좋다. 가장 건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울림이나 깊은 연대는 이런 막막한 마음에서 나오기에 적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혹여나 이런 마음이 전해져서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그것도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겠다. 만남 속에 길과 빛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겨울에 조금 들어가볼까 싶기도 하다. 긴급한 일들에 밀리고 치여서 쌓인 중요한 것들이 있다. 글을 써야겠다 싶어 꺼내든 문서가 200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다. 그래, 그리 쌓인 말들이 많았나. 눈으로 울지 않고 손으로 울었나.'
늘 이런 식이다. 해가 매일 아침 밝아오는 것이 낯설 때가 있고, 어떤 덧없음과 무성함이 마음을 채울 때가 있다. 어제 저녁에 대안 대학의 공간에서 했던 강의는 묘했다. 나도 감이 안 잡히는 것들을 같이 나누자고 꺼내들어 말잔치를 벌여놓았다. 어떤 기술적인 측면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실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전하는 말이 나에게, 그리고 가닿는 너에게 얼마나 순도가 높은 진심인가 하고 묻게 된다. 초심에 대한 말이다. 초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중요한 시도이자 수행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만물은 흐르고 마음도 거기서 예외는 아닌탓에 우리는 계속하여 흘러갈 뿐이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느냐." 그리고 답은 없었다.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