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장윤석 Sep 12. 2021

도반들께

지리산정치학교1기의 소회

    

잘 계시지요? 늦었습니다. 지금 쓰지 아니하면 영영 못 쓸 것 같아서 이리 씁니다. 일찍이 털어버리면 좋았을 것을 귀하고 소중해서 꽁꽁 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마지막에 있어 각자의 소회 혹은 뜻을 담은 문장 하나씩을 남기기로 하였지요. 많은 단상 중 하나를 응축하여 남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결로 현상이 나타납니다. 생각들이 자꾸 생겨나고 이어져 둘이 되고 셋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일선(一線)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가 갖는 심대함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물과 만고의 기치가 하나로 통하는 일통(一統)이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말의 영역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자가 말씀하시기를 “아는 자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따라 장일순 선생께서도 책 한 권 남기지 않고 일언반구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씀도 많고 말도 많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 문장 남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무지를 인정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지리산에서 돌아온 후, 몇 단어들이 마음 언저리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연찬, 문명, 전환, 세 단어를 화두로 있었던 이틀이 강했습니다. 절에 천 년간 불상이 있던 자리에 생명평화 심볼이 오른 것을 보고 숨 막힐 정도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절에서 정치를 내건 것을 보며 우리가 끝에 다 달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후위기가 어떤 사태인지 다시 감이 왔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 실상사를 잊었던 꿈을 찾을 수 있던 시공간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잠이 많은 편인데, 이틀간 몇 숨 자지 않았던 것 같아서 무척 신기할 따름입니다. 종교체험하고 왔다고 주변에 말들을 하고 다녔습니다. 영성이란 원초적인 잊었던 것을 떠올리고 끊어진 것을 잇고, 좀먹은 것을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계에서도 시민사회 계에서도 쉬이 잊거나 논 외시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성과 종교의 이름으로 악용되는 것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리에 불러주셔서 기뻤습니다.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한살림이 처음 선언을 하고 만들어질 때를 보지 못했습니다. 녹색당이 창당되던 때도 보지 못했지요. 너무 어렸습니다. 그러나 읽었던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생명력 있었기에, 커서 이곳에 왔을 때 감도는 적막감이 버거웠습니다. 먼저 걷던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지식과 실력이라고 가혹히 자기 훈련을 해왔던 것 같은데 실은 사소하고 귀중하게도 인정과 지지였던 것 같습니다. 녹색당을 믿어주시기로 한 몇 분의 마음을 아주 소중히 기억합니다. 그 믿음으로 제가 버티는 것도 있습니다. 실은 당찬 호언장담 이면의 그림자가 있지요. 한국 사회와 같은 불모지에서 녹색당이라는 씨앗은 피어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온갖 문제들을 이중 삼중으로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그때 말했던 것처럼 “열매가 열리지 않는 시들고 있는 나무라고 해서 죽게 내버려 두실 것인가요.” 기후위기 시대에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얼마나 자주 마음을 잊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적 내전’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는 심리적 내전을 앓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판도 내분을 겪고 있습니다. 분석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어떤 마음들입니다. 재난이 와도 마음과 신뢰가 무너지지 않고 다른 관계성을 피워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에 남습니다. 한국 사회가 이곳에 다다른 까닭을 더 깊은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악에 맞서다가, 혹은 선을 맹신하다가 무언가를 잃어가는 것입니다. 잃어서는 안 될 어떤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별 효용가치도 없이 쓰잘데 없으며, 투쟁에 짐만 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것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나약함 혹은 여림이 아닐까요. 사람은 변한다지요. 제도는 타락한다지요. 그러지 않는 그 균형점이 어디일까요. 쉽게도, 참 쉽게도 이념과 진영에 편향되고 관성에 끌려가기 일쑤입니다. 입맛이 길들여지듯 생각 또한 한 길로 가다 보면 길들여집니다. 올곧음과 맹목은 한 끗 차이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길일까요. 저는 다양한 연구와 활동을 하지만, 알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가 갈 길을 찾고 싶습니다. 기성의 모든 질서와 철학이 무너져야 마땅한 때에 왔습니다. 자본주의도, 자유주의도, 서구중심주의도, 산업문명도, 주류 경제학도, 근대 과학도, 정치 체제도 몰락을 앞두고 있고 이미 겪고 있습니다. 아직 세력은 강고하지만, 존재사유를 잃은 것이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새 뜻이 필요합니다. 새 뜻이 자라나기 어려운 토양이지만, 씨알은 곳곳에 있어왔고 우리도 그중 하나입니다. 발아되지 못했다고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열리지 않은 나무라고 나무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씨알이고 나무인 한에서 우리에게 희망의 영역은 늘 발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약속이자 환대에 대한 저희 답례이겠습니다. 일 년 뒤에 무언가 하나를 들고 사람들을 찾아다니고자 합니다. 그것이 글인지, 마음인지, 청사진인지 써봐야 알겠습니다. 오래전부터 만들어둔 빈 문서에 써갈 것입니다. ‘한국철학의 지도 - 서로주체적 녹색전환의 길찾기’라 이름 붙였습니다. 항상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들어진 하나를 어떤 언어로든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철학의 언어든, 과학의 언어든, 사회과학의 언어든, 시의 언어든 그들을 관통하는 하나에 기대를 겁니다.


환란의 시대에 만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되고 우리가 되므로, 우리는 항상 서로주체이겠습니다. 몸맘이 허할 때 자주 지리산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덧. 저는 다음 지리산정치학교 도반으로  분을 추천합니다. 남원에서 한국의 미와 현주소와 함께 방황하는 현민, 한국철학을 걸고 녹색당에서 조화를 꿰하는 한사, 지구계 사고를 통하여 새 길을 찾아가고 있는 채운, 기후와 영성을 내화하여 길을 걷고 있는 예빈입니다. 때가 맞고 인연이 맞아서 이들과 함께 실상사에서 찾아뵙기를 소망합니다. 그때까지 모두 잘 계시지요.          

작가의 이전글 닫음의 변 혹은 맺음의 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