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앙팀원들께,그리고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함께해온 이들께.
닫음의 변 혹은 맺음의 변 - 붕앙팀원들께, 그리고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함께해온 이들께.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잘 계시지요? 유종의 미를 짓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 올립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붕앙팀에서 짧게는 몇 달간 길게는 한 해간(2020.10.31.~2021.9.15.) 동고동락(?)하며 걸어온 아니 날아온 여러분께 수고하셨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리 써봅니다. 반년도 전에 쓰려고 했던 말을 이제야 적어보아요. 선출되지는 않았으나 처음 문을 연 제안자로서 팀장을 맡아왔으니 문을 닫는 것도 저의 책임이라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책임을 다하려 합니다.
닫기 위해서는 정리가 필요하지요.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파일 백 개, 링크 오백 개, 사진 오백장 모두 뭐가 새겨진 마냥 지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걸 알아서 몇 달이고 미뤄온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왜 보기가 힘든 걸까요. 얼마나 되었다고 한참을 넘어온 것 같은 이 복잡함은 무엇일까요.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기억들과 함께 살아왔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군요.
요새 초심에 대해서 자주 생각합니다. 되돌아보라, 돌아보라, 되물어라 곳곳에서 들려온 말들에 매인 것도 있겠지요. 지금은 길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 우리가 말했던 것처럼 ‘개와 늑대의 시간’이니까요. 당장 내가 서 있을 공간과 위치와 입장에 대해서 혼란을 앓고 있습니다. 이 기로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가능한 한, 내가 설 수 있는 위치와 입장은 골고루 다 서보려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도 거지만, 이해하려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청년기후긴급행동 운영위원직을 사퇴했음에도 사퇴서를 내지 못하여 두 대표에게 다정한 잔소리를 잔뜩 받았습니다. “늦은 변을 올립니다.” 한 문장 써놓고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뭐가 참 안 써지더군요. 정리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달려왔습니다. 그때, 5월, 누구는 차에 뛰어들고 누구는 곡기를 끊던 그 시절, 저는 활동가라는 이름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친 듯이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의 심정적 절박함과 불의에 대한 분노와 시간에 대한 조급함과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생명에 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활동가로 살아온 시절들이 너무 귀하고 그래서 활동가로 살지 않겠다 말을 해놓고도 쉽게 지워버릴 수는 없었네요. 지운다고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닌데요 말이죠. 그래서 사퇴의 변 문서를 세 달간 열어놓고 내지 못한 채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쓰게 됩니다. 이런 말들은 정말 의지와는 무관하게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정리될 수 없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지키지 못했다는 부채감, 책임지지 못했다는 자괴감, 붕앙을 비롯하여 가덕도까지 막지 못했다는 절망감 속에서 같이 함께해온 소중한 이들에 대한 애정과 증오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믿음과 신뢰는 굳게 남아있어 애정과 증오의 긴 스펙트럼 중에서 남은 것은 애정입니다.
동시에, 어느새 첫 재판을 일주일 안되게 남겨두고 있어요. 이게 뭐 별거라고 나는 떨립니다. 달려온 일들에 후회는 한 점 없습니다. 다만 가혹하게 조여 오는 현실의 제도적 역학관계를 냉철하게 느낄 뿐입니다. 두산중공업이 저희에게 건 소송을 보면서 화도 화지만, 어떤 냉혹함과 서슬 어림에 죄인 듯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디일까, 정말 가끔씩 걸어 다니다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 가끔씩 저 어딘가에서 살해당한 활동가들을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연구자로 살아가려 합니다. 사실 일 년간 미뤄온 생태학살(Ecocide)에 대한 보고서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연구활동가라는 말이 얼마나 모순되는지요. 몸이 하나인 이상 둘 다 못합니다. 활동하고 운영하고 하는데 쓸 시간도 부족해왔습니다. 일 년간 붕앙에 대해서 쓴 글과 발표자료만 각각 열 개는 됩니다. 정리하는데만 며칠 걸릴 것들을 쓰고 말하고 알려왔습니다. 보고서, 일주일만 있으면 끝낼 수 있는데, 그렇게 일 년간 생각해왔습니다. 나의 나태함을 탓하는 것도 일 년 해오니까 구조더군요. 아주 악순환의 구조더군요. 지금을 기점으로 한 명의 연구자로서 갈무리에 들어갑니다. 정리하고 다듬어서 꼭 남길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길 가능성이라고는 손톱만큼인 첫 기후재판과 기후소송의 승리를 만들어 갈 수 있게끔 하고 싶습니다.
붕앙팀이 걸어온 일 년을 돌아보며 계속 놀랐습니다. 이 환란의 시대에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어찌 이렇게 해올 수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추모였습니다. 한국의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추모하던 것에서 점점 탄소오적과 겨루어 볼 수 있는 정도로 깜냥이 커지고 단단해져가고, 이제 기후재판과 기후소송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 동지는 자신이 살아갈 2030년의 세계가 2050년의 사회가 이런 식으로 결정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감하면서, 나의 용납 불가의 대상은 있었던 일들에 명확한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는 것임을 생각했습니다. 한국이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공모’했던 배경을 묻어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시나리오와 청사진 등 전환을 위한 모든 작업은, 무색해지지요. 전환 전에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 있습니다.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공모했던 이들(법인격)을 재판장에 세우려는 기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무소불위의 기업들과 현격하게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대등하게 올려놓는 것을 오래전부터 말해왔습니다. 결국 말한 대로 흘러간다고 어느덧 여기까지 왔네요. 첫 기후재판이자 기후소송이라는 말들이 무겁고 그렇습니다. 끝과 시작입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이제 닫을 시간입니다. 저는 버리는 것을 못하는 사람이라 엄두를 못 내왔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합니다. 제가 간직하고 있는 낭만은, 이반 일리치의 CIDOC(문헌정보자료교류센터) 이야기입니다. 설립된 지 10년이 되는 날 이것을 만든 이들은 제도화의 경계와 다음을 위한 선택으로 성대하게 축배 속에서 문을 닫았다 하지요.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으리라, 우리도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해체인 동시에 진화일 테니 아쉬워하지는 않겠어요. 붕앙팀은 청년기후긴급행동 전체회의의 결과에 따라 재판팀으로 새 옷을 입고 한 판 하러 갑니다.
요새 기후판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참 모르겠습니다. 관계와 갈등을 보면서 복잡합니다. 우리는 이전과 다를 수 있을까. 저의 화두입니다. 10년 뒤에도 우리는 친구일 수 있을까요? 기후위기를 막는 다양한 길과 채비들이 있을 텐데, 그것들이 서로 다양성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형태로 존재하고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믿는 것뿐이겠습니다. 기후위기가 역사상 미증유의 위기인 것처럼, 그것을 막아내는 우리의 활동 혹은 운동도 미증유의 것이어야겠습니다. 우리의 운동에 진영과 배제와 분리와 선긋기와 적대와 증오와 상처를 두지 않겠습니다.
아무래도 시간도 없고 품도 없지만, 우리 같이 살아가요. 붕앙팀의 장을 맡아오며, 이 일 년을 살아오며 내가 이해 못하던 무언가를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함께 각자의 위치에서 곁과 품을 내준 동지들께 다시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