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윤석입니다. 벌써 가을이 되었고, 저희와 한국 사회는 첫 기후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환절기에 몸맘 시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짧은 편지를 남깁니다.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2020년 10월 5일, 한국이 짓는 마지막 석탄발전소 붕앙이 한국전력 이사회에서 통과되던 날로 가보지요. 저는 안 될 줄 알았습니다. 정부가 그린 뉴딜을 받고, 대통령은 탄소중립을 발표했는데 설마 석탄발전소를 더 얹을 리가. 그 설마의 쓰림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신년을 맞아 탄소오적 저지선언문 연명을 요청드렸지요. 여러분을 비롯하여 총 389분께서 연명을 해주셨습니다. 연대의 말씀도 많이 남겨주셨죠. 그 이름들이 새겨진 선언문 현수막을 들고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공모한 이들 앞에 섰습니다. 날이 너무 추워 선언문을 읽다가 입이 얼고 그랬지요. 그래도 내가 말하는 것이 내 말이 아니고, 내 이야기가 아니기에 이를 꽉 물고 말을 했습니다.
두산중공업 앞에 갔을 때를 기억합니다. 분당 신사옥 빌딩은 그 부조리의 크기마냥 너무 큰데 우리는 너무 작았습니다. 저희의 직접행동이 낸 균열이 무엇을 갈라지게 할까 복잡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작은 이미 된 것이겠죠.
아무래도 점점 소란과 균열의 크기는 커지고 있습니다. 어느새 첫 재판을 일주일 안되게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게 뭐 별거라고 떨립니다. 달려온 일들에 후회는 한 점 없습니다만, 가혹하게 조여 오는 현실을 느낄 뿐입니다. 검찰의 500만원 벌금 구형이 보여주는 제도의 냉철한 역학관계, 두산중공업이 건 1840만원의 민사소송이 보여주는 위계에서, 어떤 냉혹함과 서슬 어림을 느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디일까, 종종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행보는 어떨까요. 저희가 처음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썼던 것처럼, 지금은 길이 잘 보이지 않는 때인 듯합니다. 안개는 짙어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저희와 여러분의 발걸음이 어디로 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후위기 앞에 정직한 발걸음들이 줄줄이 이어지면 없던 길도 만들지요. 다시금, 탄원서에 많은 연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재판을 기점으로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붕앙팀은 쉼표를 찍고 재판팀으로 진화합니다. 붕앙팀을 제안하고 장을 맡아온 저와 팀원들은 임무를 일단락 하고 내려와 다음을 예비하려고 합니다. 어느새 붕앙을 알리는 것에서 시작해 기후소송을 준비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앞으로도 각자의 위치에서, 때로는 만나고 때로는 갈라져 끝까지 잘 가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막는 마음으로 글을 한 편 더 남깁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전 붕앙팀장 장윤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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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판 탄원] 아시아 곳곳에 석탄발전소를 건설하는 자칭 "친환경에너지기업" 두산중공업의 녹색분칠(greenwashing)을 폭로한 청년기후긴급행동의 탄원서에 연대해 주세요.
청년기후긴급행동의 재판에 연대하는 방법
① 탄원서 읽고 서명하기
② 주변에 탄원서 링크 공유하기
③ SNS로 탄원 참여와 지지 표현하기
④ 9/15(수) 11시 형사재판 방청하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⑤ 활동밑천 후원하기
후원 : 청년기후긴급행동 475801-01-268677 (국민은행)
문의 :
climate.kimgongryong@gmail.com
공동대표 강은빈 010-4305-0040
[탄원서 전문]
사건번호 : 2021고정593
탄원인 : 청년기후긴급행동과 연명에 동의하는 개인 또는 단체
피탄원인 : 강은빈, 이은호
한국 기업들의 석탄발전소 건설을 반대해 온 청년기후긴급행동은 2021년 2월 18일 두산 본사 앞 ‘DOOSAN’ 로고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칠하고, “Shame on DOOSAN, 최후의 석탄발전소는 내가 짓는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은 이은호, 강은빈 활동가에게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재물손괴죄 혐의로 각 300만 원, 200만 원 벌금형을 약식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수사 자료에 기록되지 않은 진실, 법정에서 변론할 우리의 이야기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2007년부터 추진된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현지 주민들의 반대와 석탄발전의 시장 경쟁력 하락 등의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었습니다. 제너럴일렉트릭,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중화전력공사를 포함한 국제적 기업들이 하나 둘 붕앙-2 사업을 철수하는 와중에, 2020년 '팀 코리아'라는 이름 아래 한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그 빈 자리를 메웠습니다. 그 중 하나의 기업인 두산중공업은 베트남 외에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곳곳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합니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기후위기의 주 원인입니다. 두산중공업이 작년에 수주한 붕앙-2, 자와-9·10 석탄발전소만으로도 향후 25년 간 온실가스 5억 톤을 배출할 전망입니다. 이는 웬만한 국가가 한 해에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보다 큰 규모입니다. 기후재난은 나날이 잦아지고 심해지는데, 두산중공업은 눈 앞에 놓인 이익만을 취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 기반 사업에 의존하다가 재무 상태가 악화된 두산중공업은 2020년 3조 6천억 원의 구제 금융을 받으며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은 여전히 세계 각지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며 핵심 자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현 수준으로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시 20년 내에 한계점 1.5℃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 폭이 1.5℃를 넘으면 기후 시스템은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붕괴되어 기후재난이 더욱 극심해집니다. 올 여름 독일을 강타한 홍수는 수백 명의 사상자와 8조 원에 달하는 복구 비용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유례 없는 위기 앞에 지금 당장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도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은 어쩌면 가장 즉각적이고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해 한국이 인도네시아·베트남 석탄발전소 수출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저지 선언문을 발표하고, 산업통상자원부를 찾아가고, 한국전력 본사에 방문해 담당자를 만나고, 대사관 앞에서 붕앙-2 철회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2021년 1월 29일에는 두산중공업을 포함한 붕앙-2 수출 참여 기업/기관에 질의서를 발송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피와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이 국가 범위를 뛰어넘는 전지구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임을 인지하고, 국제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하여 정부와 적극 협력한다." 21대 국회가 97% 찬성으로 가결한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석탄발전 수출을 승인했고, 국회조차 이를 외면했습니다. 2021년 2월 18일, 붕앙-2 석탄발전소 착공을 몇 주 앞두고 우리는 절망 대신 저항을 택했습니다.
두산중공업은 청년기후긴급행동으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고, 임직원들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1,840만 원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묵묵부답하는 기업에 찾아가 친환경 수성 스프레이로 녹색 칠하고 두산중공업이 석탄발전소 건설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쳤을 뿐입니다. 우리가 선량하고 정중하게 요구할 때는 들은 체 않다가, 참다 못해 저항에 나서자 이를 불법행위로 규정합니다. 국경을 초월하는 대기업의 경제활동이 생태계, 지역사회, 기후위기에 미치는 피해는 과연 얼마로 값을 매길 수 있을까요.
존경하는 판사님, 우리는 벌금보다 기후위기 앞에 드리워진 절망이 더욱 두렵습니다. 모두가 기후위기를 말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암담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자 우리는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이상의 정황을 참작하여 청년들의 절박한 심정을 살펴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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