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마지막 석탄발전소
마음이 안 좋았다. 마음과 숨이 연결되어 있는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숨이 막혀온다. 2020년 10월 5일, 한국전력 이사회에서 한국이 짓는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선고받은 날이 그랬다. 이런 세상이면 차라리 무너져 내리는 게 낫다 싶었다. 한 경제지가 쓴 문장이 오래 뇌리에 남았다. “정치권 일각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전이 계획대로 투자를 결정하면서 국내 석탄화력발전 업계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한국경제신문, 2020년 10월5일자) 이 결정으로 누구는 숨이 가빠 올 것이고 누구는 목숨이 끊어질 텐데, 한숨을 돌리는 이가 있었다. 기후위기가 어떻게 빚어지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어떤 나라인지 사무치게 알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붕앙이다. 그들의 이름은 한국전력, 한국수출입은행,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하나은행이다. 그들은 베트남 하띤 성 지역에 붕앙-2 석탄발전소를 짓는다. 스스로를 ‘팀 코리아’라고 자칭한 이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조용히 비극을 빚어내고 있었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
우리를 움직인 문장은 “그곳에 사람이 있다”였다. 석탄발전소가 지어지는 마을에는 사람이 산다. 그곳의 사람들은 석탄발전소 옆의 삶은 지옥이라고 말한다. 8개월 산 아이가 숨이 끊어졌다는 이야기를 건너 들었다. 내가 뭘 해볼 수 있다기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심히 넘어가기에는 목이 너무 메였다. 우리는 그렇게 모였다. 그렇게 반 년이 지나도록 붕앙을 잡고 있다. 정부와 기업에게는 이미 지나간 결정이겠지만, 나는 붕앙을 놓지 못한다. 불을 끄지 않고 잠든 날, 꿈을 꾸었다. 내가 손을 잡고 있던 누군가가 검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이지 않았지만, 들리지 않았지만 손 안에 감도는 죄책감이 하루내 서렸다. 이런 까닭에 나는 붕앙을 놓을 수가 없다.
그들은 기후위기를 알고 있었다. 정부가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기어이 짓겠다고 결정한 그 10월은, 그린뉴딜을 국가 정책으로 내건 직후이자, 곧이어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그 달이었다. 국가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과 목표를 내걺과 동시에 마지막 석탄발전소 수출이 진행되었다. 국정감사장을 비롯한 각종 공론장에서 비판에 쏟아졌지만, 친환경 석탄발전소면 괜찮다, 개발도상국은 아직 석탄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니면 중국이 짓는다는 식의 적나라한 추태만이 이어졌다.
그들은 모두 탈석탄을 선언했다. 한국전력과 삼성물산은 붕앙 결정 직후에 신규 석탄 사업을 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하나은행은 탈석탄 선언과 함께 사업에서 빠져나갔다. 얼마 전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열린 기후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공적 금융 기관의 신규 석탄투자 금지를 약속하며 한국수출입은행도 탈석탄의 반열에 진입했다. 결국 붕앙을 짓는 탄소오적은 두산중공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석탄과의 결별을 선언했지만, 붕앙은 오늘도 지어지고 있다.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과 철회 없는 선언을 탈석탄 선언이라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이것을 녹색분칠(green washing)이라고, 지금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참혹한 착각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놓을지 모르겠다.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로 불린지 한 두 해 가 지났는데, 이제는 생태학살(Ecocide)이라는 말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당장 석탄발전소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생태학살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사시사철 날리는 잿가루와 미세먼지 등의 대기오염부터, 석탄재 누출로 인한 수권 파괴, 온배수로 인한 산호초 군락 절멸과 같은 생태계 파괴는 일정 반경의 공간을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든다. 국가의 대규모 발전소 건립에 따른 강제 이주 문제, 발전소에서 추출한 전기를 옮기는 송전탑이 낳는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비할 데 없이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은 이 비극을 미래로 가져다놓는다.
붕앙2가 지어지는 하띤성 지역은 극심한 환경재난으로 ‘죽음의 땅’이 된 곳이다. 붕앙1호기의 대기오염과 수권 파괴와 더불어, 낙동강 페놀 사건과 닮은 포르모사 유독물질 사태로 베트남 역사상 최악의 환경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이곳에한국이 마지막으로 석탄발전소를 한 기 더 얹는다. 이것이 이 사업의 실체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기로 했다
일개 사업이 아니다. 누군가의 생명과 미래를 앗는 범죄다. 현재의 제도와 법이 이를 용인한다면 어떻게 해아 할까. 이를 넘어서야 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기로 했다.
'탄소오적 저지선언문(20.12.31)'을 시작으로, 1월에는 탄소오적 적지순례(2021.1.09.)를 다녀오고, 탄소오적을 대상으로 한 스텐실 액션(21.01.28)을, 베트남 대사관 앞에서의 붕앙- 철회 릴레이 발언(21.01.27)을 진행했다. 2월에는 베트남 붕앙2 석탄발전 수출 참여 철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21.02.01)를 참여 기업에 보냈다. 그리고 삼성 홍대 디지털프라자 앞에서 차례를 지내는 설날 액션(21.2.12)을, 한국전력 나주 본사 앞에서 공개질의서 무응답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21.02.26), 마지막으로 두산중공업 분당 사옥 앞에서 두산의 로고를 녹색스프레이로 칠하는 직접행동(21.02.18)을 시도했다.
결국 마지막 직접행동으로 인해 집회신고법 위반과 재물손괴죄로 벌금을 선고받았다. 두 명의 활동가에게 도합 500만원, 탄소오적이 저지른 2조 6천 억원 어치의 범죄보다는 싼 값이지만, 우리에게 죄가 있는지는 재고해볼 일이다. 그 부당함과 우리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청연은 '녹색 미래'를 이야기하는 P4G 서울 정상회의(5월30-31일)를 앞두고 5월18일부터 회의장인 DDP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해 14일간 싸움을 이어갔다.
어떤 이들은 묻는다. 왜 집회를 신고하지 않았냐고, 굳이 이런 급진적이고 자극적인 행동까지 필요하냐고. 그러나 그들에게 왜 석탄발전소를 짓느냐고 묻지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나. 직접행동 중에 들었던 날선 질문이 떠오른다. “여긴 사유지인데, 감당할 수 있겠어?” 삼성의 경비원이 겁박하듯 던진 물음에 결심이 섰다. 감당하겠다. 그리고 질문을 돌려주겠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겠냐고.
반성을 모르는 이들, 법정에서 보자
누가 죄를 지었는지는 가봐야 할 일이다. 죄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면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 빠르면 몇 년 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생태학살 법(Ecocide Law)이 제정된다. 판이 바뀐다. 이제 그들이 사업이라 불러왔던 것은 생태학살이라는 이름의 범죄다. 위기의 경고나 짓지 말라는 윤리적인 요청에서 이 사안의 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구도가 역전된다. 논의의 정도가 반인도적 범죄의 처벌로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석탄을 막는다. 반성을 모르는 이들은 법정에서 보자. 나날히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시간은 슬프게도 우리의 편이다. 당신들의 극악무도함 만큼 기후위기는 나날히 커지고 속도가 붙을 것이다. 현행 법과 이론이 지금의 문제를 해석하는 데 부족하다면, 해야할 것은 미래를 내다보고 그 시점을 끌어오는 일이다. 입으로 위기를 말하며 학살을 이어간 이들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 생명을 앗아가고 세상을 아작낸 역사에 발 들인 선택을 뼈저리게 뉘우칠 것이다. 그 이전에 녹색전환의 자격은 없다.
기후에 대한 마음은 종잡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애도와 추모였던 것 같은데 분노를 거쳐 마침표를 앞둔 지금은 마음은 한이다. 생태학살이라고 붕앙을 부른 후로 분명 나의 심경에 무거운 응어리가 앉았다. 삶의 궤도도 달라져간다. 그런데 한편으로 붕앙은 기후위기처럼 너무 멀고 잘 안 보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붕앙이 지어지는 곳에 가보지 못했다. 한번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생명들을 말하고 이어가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잘 보이지 않기에, 마음이 중요하지 싶다. 엄연한 일들이기에 마음 내어 가닿고 이야기하여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붕앙은 붕앙만이 아니다. 상징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지어지는 자와 9, 10호기이자 국내의 신서천화력, 고성화이화력 1, 2호기, 강릉안인화력 1, 2호기, 삼척화력 1, 2호기이다. 나아가 가덕도와 제주의 신공항이자 호주의 석탄 광산이자 미얀마의 가스전이다. 기후위기를 앎에도 앓음과 성찰 없이 역행하는 모든 것이 붕앙이다. 마지막 석탄발전소와 함께 시대의 부조리를 지탱했던 모든 것들을 막고 싶다. 위기 속에서 평화를 위해서 투쟁을 준비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우리 시대의 표정이겠다.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막는 마음은 아직 스러지지 않았다. 계속 붕앙하자.
* 함께 붕앙한 은빈, 예빈, 다연, 윤서, 민주, 미어캣, 사포, 지혁, 동재, 두원, 남훈, 청연,
지운, 명성 그리고 단식 농성장을 지키는 은강, 한사, 영준에게. 그밖에 마음 내어준 모든 이들에게. 마지막 석탄발전소 앞에서 모두의 일상에는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학교를 그만두거나, 단식에 들어가거나. 단식 농성장을 지키며 글을 맺는 나로서는, 평화를 위해 싸움의 터로 나선 이들이 그 선택과 책임을 오롯이 감내하지 않도록 하고 싶다. 어쩌면 이 마음이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막는 나의 진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 ‘붕앙이야기’는 베트남 붕앙 석탄발전소가 준공되기 전까지, 붕앙과 그 곁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기록합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붕앙팀의 활동가들이 번갈아가며 씁니다.
* 이 글은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여름호에 기재된 글입니다(http://www.wnwmagazine.kr/news/articleView.html?idxno=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