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나는 이 시집에 묶인 시들을 反전쟁시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특별히 평화주의자라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이 시집에 묶인 많은 시들이 크고 작은,
가깝거나 먼 전쟁의 시기에 씌어졌기 때문이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反전쟁에 대한
노래.
이 아이러니를 그냥 난,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을 뿐.
2005년 가을, 알텐베르그에서
허수경
反전쟁시
전쟁의 목적은 말하기 나름이고
전쟁의 효과는 당장의 주가와 신보로 체감할 수 있겠지만,
전쟁이 낳는 대대손손 죽임의 업은 후회의 사안을 한참 넘은 것일텐데
그 한맺힘은 쉬이 말할 수도 없는 것일텐데.
가깝거나 먼 시기에 전쟁을 겪고 겪을 우리에게
공동의 위기를 함께 헤쳐나갈 수 없다는 믿음이 생긴다면
그 때 운은 명을 다하는 것일텐데.
지구가 침몰하는 때에
평화의 이름은 어찌나 가벼운가
우리가 겪은 펜데믹은
우리가 겪고 겪을 기후위기는
그저 농담이었나
한 날 한 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못한다면
과거와 미래의 비운의 것들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2022년 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