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서운 꿈을 꾸었다. 꺼내기는 조금 그렇고 뭔가 적으면 나을 것 같아서 염치를 불문하고 적는다. 아픈 걸 페이스북에 꺼내놓는 친구들을 보면 그 용기에 놀랍고 뭐라 말을 건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못 본 체 하고 마음에 담아둔다. 지금의 애도 혹은 치유방식일까 하면서 어딘가로 미숙한 기도 하나 보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지금 이리 쓰는 것이 누군가의 아직 덜 아문 마음을 헤집는 것일까봐 두렵지만, 말하지 않고 이 수렁을 헤어나가는 것을 알 지는 못해서 쓴다. 그래도 내가 소중한 곁에서 배운 게 이런 거라서.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다. 지금 당사이자 연구소에서 전기와 건강을 낭비하며 밤을 새고 있는 멍청한 현재와, 6차까지 보고서를 내며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만들고 있는 미래의 변화와, 누구에게나 있는 과거의 어둡다 표현되는 그 인간사 자연스러운 슬픔들은 말이다. 너무 복잡하게 연결도어 뭐가 뭐 때문이고 소상히 관계를 따지려면 머리 아플지만, 지금, 지금은 말이다 내 친구 해강이가 떠오른다. 2년 전에 해강이가 군대에서 자살했다. 선을 넘었나. 막 미칠 듯이 그립다던가, 그 때만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다던가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 왜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흐려진다. 이 생각만 하면. 보통 아플 때 아픈지 잘 모른다. 미숙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건강한 발전적 마음 먹기 뿐이었다. 나는 그 때 녹색당에게 진 빛을 아직도 갚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참 녹갱이였고, 우리가 같이 녹색 책들을 읽었고, 내가 그가 죽은 뒤에 녹색당에서 잠수를 탔었으니까. 가여운 이 당이 더러워 버리는 한국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무너져 갈 때 나는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뭐 때문에 슬픈지 모르고 에는 마음 부여잡고 있었었다. 눈물 한 방울 못 흘리면서 그랬다. 글쎄 시작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꽤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테다. 너무 여려서 사람 감정이 너무 깊어서 언제 죽을지 모를 것 같았던 내가 사랑하는 엄마가 기원으로 생각된다. 나의 강박적인 갈등 조정 및 방지 프로세스는 평화를 사랑해서도 있겠지만 심연의 불안에서 시작되는 듯 하다. 전쟁이나, 기후정의 논쟁이나, 당내갈등이나, 붕앙 모두 그 차원을 건드린다. 오세훈이 10년 만에 다시 시장이 되고 나서 아침에 눈을 떴더니 누가 또 죽겠구나 싶었다. 그 때가 당 9주년이었는데 나가서 청소를 했다. 나의 하루는 그의 하루와 다르다 생각하고, 모든 자기 돌봄 체계를 의식적으로 예외 조항을 둔 채 고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살기로 결의문을 채택했다. 기후위기 말하면서 자기만 비상선언을 하지 않으면 그것 참 견디지 못할 일이다 싶었다. 내가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와 맥락이 같은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해강이의 죽음을 내 삶 곁에 둘 방법이 없다. 희미해가는 기억 속에서 사람이 죽었으면 무언가는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결국 객기이겠지만, 그마저 안 부리면 존재사유를 찾을 수 없는 그런 이상한 게 생인가 보다 하고 그리 살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거 병이다. 모르고 있던 건 아니지만, 이 죽음을 빌미로 각오를 다졌던 나의 마음가짐은 이상한 회피이다. 차라리 펑펑 울고 깊게 애도하고 장례식장을 나왔으면, 그 몫 까지, 아니 그 몫 기리며 살아갔을텐데. 울지 못하여 한 맺어두고 아득바득 살겠다 결심하지 않으면 어찌 살지 모르는 것이다. 감정이 봉인된 고통을 겪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남 일 같지도 않고 소름이 돋는다. 녹색당의 10년, 결코 흔쾌히 축사를 쓸 수 없는 까닭이 이 이야기 안에 있을 것이다. 나부터 여기를 정당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이미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되어 있는 거 같다. 쓸데없는 사회학 연구들은 세상이 망가질 때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많이 증명해냈다. 이를테면 나와 이름 두 글자 같은 것 때문에 내 일주일을 망친 윤석렬이 얼마나 사람을 죽일까. 조금 공들이면 대강 보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녹색당이 공중분해 되면, 가치들을 꼭꼭 뭉쳐담은 이 공간에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이 무사하리라 나 생각을 못하겠다. 그래서, 이 망할 사회에 녹색당은 잘 살아있어야만 한다. 땅이 썩었어도 잘만 자라나야 한다. 독기를 정화하면서. 물론 여기는 참 식물 같은 면이 있어서 태풍 불면 휘청이고 온도 높아지면 적응 못하고 아주 약하디 약해 빠졌지만 말이다. 너무 자연을 닮으면 안 된다. 세상 험난하다니까. 되었고 이 자리 뭐 없지만 빌어서 기린다. 진심으로 그가 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너도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어디에서는 귀하디 귀한 생명이 스러지고 있고, 우리는 생명 어린 정치를 만드는 데 실패했지만, 이것은 우리가 더 나와 너의 생명을 귀하게 임해야 하는 사태이지 내려놔야 하는 사안이 아니다. 물론 맘 같아서는 참 만사가 덧없건만, 그런 때일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들이 왜 있겠니 하고 생각하면서 없던 힘과 기억들을 돌아보고 산책도 하고 그러자. 오랜만에 각종 안부들을 묻게 되더라. 고작 몇 년 살아오면서 만나고 이야기한 많은 은혜들을 생각하고 온기와 활력을 나누어 받으며 살아나가는 거지 뭐.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있으면 괜찮다는 우리 도마의 말도 내가 여든이 되든 백 살이 되어 RCP 8.5를 눈으로 보든 까먹지 못할 거니까 다 괜찮다. 그저 우리 이런 비극과 비탄의 시대에서는 희망을 발굴하는 연습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거다. 지혜롭게. 강령에 녹색당원 다 농부라더만 뭐. 뭐 심지 뭐 기르지 하고 살아가는 거라 안 그랬나. 나는 종교가 없는 편인데, 녹색이라는 것이 그 층위의 것일수도 있겠다 싶다. 기후위기라는 게 너무 사람 참 이상하게 만든다 그지. 어떤 사명감과 부채감, 그리고 독기와 분노 등등의 것들로 잘 버무려져 걸어왔던 길과 인사를 고한다. 그것들은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건강하지 못하다. 감정의 되물림, 악순환의 구조 같은 많은 것들을 놓아주자. 바람에 물에 실어서 날려 떠내려 보내자. 그리고 다시 우리의 하루로 가보자. 그 이름 두 글자 같은 분과 그 곁의 사람들로 인하여 꼭 일주일 동안 모든 것을 손 놓고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상태로 있었는데 일주일이면 잘 쉬었다. 나는 더 주저앉아 있기에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이 자리 – 이상한 자리 –를 빌어 곁에서 같이 길 걸어가고 있다고 나 혼자서일지도 모르지만 착각하는 이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아프지 말고. 아프면 밥먹자.
뭐 애당초 분수에 맞지 않는 일들에서 너무 나댔더니 약간 살려줘다. 아무래도 신영복 선생님이 사람이 자기 분수보다 조금 못 되는 자리들을 맡으라 했건만 나는 주제도 모르고 이것저것 하면 다다익선인가 하고 해왔던 게 글러먹었던 것 같다. 그냥 내 그릇만큼만 할 걸 괜히 무리하다가 무안하게 되어버렸네. 하기로 한 마감들을 한 열 개 동시에 하다보니 이게 뭐지 싶긴 하다. 하나하나 돌솥밥 짓듯 알뜰살뜰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섬세하게 온갖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데, 몇 년 동안 잔뜩 배워버린 기후활동가 특유의 조급한 시점에 뭔가를 일궈내는 그 급속충전 같은 마감만 하고 있다. 아 녹색당 정책을 이런 마음으로 만들면 아니 되는데. 돌솥받 짓는 마음으로 해야하는데. 녹색당의 기후정의 정책을 만들겠다는 책임과 다짐은 그 점에서 내가 꼭 해내고 싶었던 것이면서 내가 마지막까지 못 갚은 부채인가보다. 손을 못 대는 많은 까닭이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사람인지 들키고 싶지 않아서는 아닐까. 은혜를 갚기는 해야할텐데 말이다. 뭐 자고 일어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무책임의 망령에 사로잡히기 보다 녹색당의 수많은 귀한 똑똑이 풀뿌리들께 도와달라해야겠다. 연구소도 마찬가지, 핵강국 코리아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외치는 경남, 신공항 동남권 메가시티에서 녹색전환 말하는 부산 정책은 나는 장만 열고 사람들을 믿어야겠다. 이 들꽃 같은 풀뿌리들, 우리 그래도 세면 꽤 많다. 기후위기 같이 살아갈 벗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잡초는 없다. 그러니 조금 티격태격하고 그래도 다 같이 잘 살아보세. 아플 때는 약도 좋지만 세미나도 좋다. 산과 책을 늘려야겠다. 그리고 사실 연구하고 정책 만들고 이런 게 제일 재밌다 그러니까 하는 거겠지. 그런데 그림은 다시 그리련다. 철학도 다시 할거고. 끊었었는데
담배도 아니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찾아가고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