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20 감사일기
날이 더워졌다. 꽤나 청하했던 것 같다. 한 주를 돌아보면서 여러 얼굴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던 종걸 활동가가 39일 차 단식을 중단했다고 들었다. 실려갔더니 그 옆에 SPC본사 앞에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과와 원상회복을 주장하던 임종린 지회장이 계셨다고 들었다. 누군가 이게 나라냐 하고 한탄을 늘여놓았는데 공감하면서 이상하래 나는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이 들었다. 그의 “단식을 종료하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는 말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아무쪼록 오래 보식하시며 기운 차리셨으면 좋겠다. 너무 수고하셨고 참 감사드린다.
오늘 날씨는 참 일 년 전 단식농성장 지키던 그 맘 때 같았다. 낮에는 더워서 밖에 있으면 숨이 차오르고, 밤에는 추워서 나다니면 으슬으슬하다. 농성장을 차리고 하루씩 지나가자 거기 있던 모두가 같이 애가 타면서 오만가지 감정을 느꼈다. 5월만 버티자 하면서 6월이 오길 빌었다. 버티는 마음은 자주 갈급해진다. 단식자는 낯빛이 어두워져 가는데 석탄발전소 철회에 응답해야 할 윗선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곁의 이들은 지치는 데다가 더해 온갖 서러움과 서운함이 돌고 돌았다. 어디라고 아니 그럴까. 농성장이던 캠프던 각박한 세상에 뭐라도 해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있는 공간은 다 그러기 쉬운 것 같다.
내가 그때의 시공간을 잊지 못하는 까닭은 그 얼굴들 때문이다. 녹색당 안에서는 기후위기를 알리기 위해 애쓸 필요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구가 몇 년 남았다는 이야기가 자주 입에 오를 때, 녹색당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아프게도 체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식 농성을 시작할 때, ‘이 방식이 생명을 해하는 방식일 수 있다’, ‘홀로 하는 게 아니라 곁의 이들이 너무 힘들다’ 등의 반대가 많았었지만 농성이 시작되고 곳곳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도움과 연대의 손길이 건네져왔다. 다사다난했던 이주의 시간이 흐르고, 5월의 마지막 날 단식을 멈추기 마지막 날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녹색당이 전국 조직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녹색당에는 국제1 국내16 청년1 청소년1 정책1 부문10개의 단위가 있다). 온라인에 하나 둘 들어와서 준비해온 성명을 각각 읽었다. 누구는 가덕도에서 누구는 한국전력 앞에서, 그리고 우리는 단식 농성장에서 있었다. 그때의 성명서를 잠시 발췌하자면,,
“대전 녹색당은 열병합발전소 증설 취소, 토목공사가 아닌 생태하천 사업, 작은 실천이 아닌 실천 로드맵 마련을 말한다. 부산 녹색당은 하늘위 4대강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며 정의로운 전환을 말한다. 서울 녹색당은 P4G가 말하지 않는 기후위기의 문제로 ‘불평등’과 ‘생존’을, P4G가 내놓을 수 없는 기후위기의 해법은 ‘녹색’과 ‘정의’임을, 녹색 정치의 물결을 말한다. 대구 녹색당은 대구시 통합신공항, 대구시 신청사, 달성공원 이전시 동물원 확대 등 전면 백지화와 개발토건이 아닌 선제적인 안전대책을 말한다. 제주 녹색당은 곶자왈과 숲을 밀어내고 짓는 제2 공항을 건설하고 도로 개발을 중단하고, 탈탄소 전환을 말한다.”
지금 녹색당 후보로 나온 이들이 이들이다. 더 말할 것 없이, 이 사람들은 그 자체로 기후 후보다. 절실함에 공명해 손 보태고 목소리 보태고 광장에 함께 앉고 돈 보태고 힘 보태고. 이들이 광장을 지나 의회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그 곁에 있는 선거원들도 기후 선거원이다. 농성장 지킴이들도 기후 단식에서 기후 선거로 넘어가 애쓰고 있다. 미어캣(마포를 숲으로! 이숲!)은 후보자로, 한사는 상현서울시비례 후보자 수행원으로, 은강은 모금홍보국에, 나는 정책국에서 있다.
참 묘한 날씨다. 요새 우리의 운동들에는 어떤 출구전략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고 구호로 줄곧 외치지만 실은 그 끝을 생각하면 영 아득하다. 실제로 투쟁은 끝날 수 없다. 그것이 기후위기 같은 문제일 때는 더 그렇다. 호흡법을 익히고 싶어졌다.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단번에 밑바닥까지 닿을 수는 없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숨을 쉬어야 한다. 하지만 쉼을 모르고 깊이 들어가다가는 위험하다. 나는 아직도 내 상태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여러 차례 고비를 함께 겪은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
누가 보기에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우리가 가진 것에 비하여 충분히 잘하고 있다. 어려운 마음을 잘 개키어 잠시 넣어두거나 잘 추슬러 서로가 나눴으면 좋겠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화도 내고 같이 울기도 하고 잠시 먼 곳으로 떠나버리기도 하더라도. 같이 할 테니. 평화의 힘은, 어느 순간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서로를 믿으려 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축제를! 우리를 믿고 함께 치르려 한다. 그러니 좋은 마음으로 같이 꿈을 이루어보자. 며칠 새 샤워하면서 녹색당이 자랑스러워 혼났다. 이 넘치는 감정으로 정책공약집 마무리하러 가야겠다~
* 덧붙이는 글로 미선님이 단식을 마치며 쓴 글을 공유해요. 눈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