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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18

2022.5.18 감사일기

by 노마 장윤석

해마다 이날이 오면 이상한 기분에 잠기게 된다. 나는 그 세대도 아니고, 5.18을 직간접적으로 겪었을 리 만무하지만 광주의 이야기에 어떤 귀한 씨알이 묻어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 년 전 처음 광주 기행을 갔었다. 대자보도 처음 써서 붙여봤었다. 그때도 함께하시겠습니까? 하고 글문을 맺었으니 참 같이 가는 거 좋아한다는 면에서 나는 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갔던 이들은 재미나게도 이상하게도 각자의 길을 가고 있고 만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원래 시간 쪼개서 김상봉 교수님을 만나려고 했었다. 그는 내 첫 스승인데, 늘 광주의 서로주체성을 말하곤 했다. 비극을 좌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가진 정신, 그것이 광주의 가능성이자 한국 철학의 주요한 줄기로 보았다. 지역을 연구하다 생각하니 그 정신은 나의 말로 전환의 계기 혹은 역량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 에코사이드를 논하는 대화모임에서, 17개 지역의 녹색전환 공론장 투어를 마친 소감을 이렇게 전했었다. “제주나 광주와 같이, 비극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들이 전환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다른 지역도 4대 강이건, 석탄발전소와 신공항 같이 어떤 파괴 옆의 사람들이 다음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생태학살을 녹색전환의 시작점 혹은 과정 중의 지점으로 보고 싶다.”


비극에서 가능성이 태동하는 원리, 역사, 아름다움에 주목을 해보고 싶다. 운동을 아와 비아의 대립 혹은 세력의 투쟁으로 이분법적으로 파악하지 않고(투쟁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투쟁은 더 만발해야 하고 늘 곁에 있어 버릇 하고 싶다) 더 복합적이고 역설적인 순환과 주고받음으로 이해해보고 싶다. 서구철학과 (한정된) 사회과학이 놓친 것들을 다시 짚어보고 싶은 바람이다. 한 마디로 갈등을 재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마음가짐과 관점(세계관 그리고 세계 감)을 평화롭게 재배치하고 싶다.


기후계급에 대해서 작은 소논문을 써서 냈던 적이 있다. 받아 든 김동춘 교수님 표정이 묘했다. 처음에는 피해를 공유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계급 운동으로 기후계급을 말했었다. 마르크스의 생태학에 받은 영향으로, 착취의 한 편에 놓인 이들이 하나의 계급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고 이는 노동의 개념을 생명의 활동(혹은 물질대사)과 같이 발전시키는 것이라 보았다.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나, 하나를 더 생각해보게 된다. 가해와 피해는 뚜렷하게 구분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나의 동력에는 일종의 부채감이자 속죄의 마음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피해를 입은 위치에서의 한과 분노도 당연히 크게 있다. 이것이 뒤엉켜서 나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럴 것이다. (특히 인지하지 못한) 나이와 성별 권력이 가져온 위계, 습관적으로 먹어온 비인간 동물의 목숨, 내가 쓰고 누리고 영위한 생활이 가져온 시공간을 초월한 폭력까지 우리는 누구도 이 가해의 경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다 털어놓고 사과하고 반성하고, 그리고 분노하고 소리 내고 (가끔은) 뒤엎고 싶은 것이다.


기후계급이 이전의 계급론과 다른 지점은 시간관(피해와 가해를 인식하는 시간의 지평)과 노동/활동관도 있겠지만, 이 가해/피해관 일 수 있겠다. 강조컨대 윤리가 덧없어진 시대에 불확실하고 비가시화되어 있고 느린 폭력을 분명히 조명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 아니다. 다만 폭력을 조명하는 만큼 평화를 일구어야 할 뿐이다. 날카로운 칼로는 벨 수 있어도 지을 수 없으니까.


다름을 통해서 동력을 얻는 방식, 가름을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은 유효할 수 있으나 일시적일 것이다. 그보다 한 명의 유리멘탈 인간동물(?)로서 상처주고 상처받고 싶지 않다. 기후 활동가로 3년 차, 그동안 가장 멀리 떠나고 싶었던 때는 곁을 잃었다 생각한 때였고, 함께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상처(어쩌면 폭력)의 순환고리 속에 놓여 갈리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기후위기가 알려준 긴급성(긴급행동할 때 그 긴급)과 정의(기후정의할 때 그 정의)는 우리의 기조였지만 상처 혹은 소진의 명분이었다. 영은 기후위기 대응은 같이 안 가면 절대 안 되는 조별과제라고 했다. 곁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실은 이렇게 쓰는 것은 결국 같이 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듯이 내가 떠날 때는 그 믿음이 부서질 때이겠다. 좁은 나라에 정말 몇 되지 않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하나도 잃고 싶지 않다. 물론 나도. 그래서 더 실망시키고 싶지 않고 그렇다. 앞으로도 자주 상처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자주(가끔이 되기를) 상처 줄 예정에 있다. 무해함은 상처의 (이를테면 전년대비 70% 감축)이 아니다. 잘 상처받고 주고, 이를 돌보고 회복하는 기술에 달려있다. 그래서 그 폭력의 순환고리를 선순환으로 시스템적 전환을 만들어내는 데 근본이 있다.


그렇기에 기후정의의 언어와 녹색전환의 언어는 같고도 다르다. 분명한 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연결되어 있다.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을 생각하면 늘 복잡한 기분이다. 풀뿌리 아래에서 끌어올려서 보냈던 정책이 위에 가더니 (꽤 많은 부분) 인조잔디가 돼버렸다. 당연하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주 쓰지도 않는다. 이 말들에 가해지는 비판에 거의 대부분 동의하고, 겪하게 공감한다. 센 논조로 자주 말도 했고 하고도 있다. 그러나, 혜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 말들을 깃발에 걸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 단어를 폐기할 거야?” 거버넌스와 보고서와 사업과 시도들을 모두 같이 폐기할 것이냐는 말에 나는 답하지 못했다. 실로 근 한 해 지역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참 많은 현장과 사람(주민과 시민과 민중 사이)을 보았다(절대 하나가 아니고, 하나일 수 없다).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얼마냐, 탄소중립이냐 배출제로냐, 그린뉴딜이냐 기후정의냐 같은 기후판의 쟁점은 대다수의 공간들에서 현학적이었다. 그린뉴딜이 가진 경제와 사회를 함께 인식하는 비전, 탄소중립이 가진 온실가스가 없는 시점을 현재로 가져오는 틀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시민사회에서는 아직도 낯설고 긴박한 이야기들이었다. 더군다나 생 집값이 너무 올랐다, 뭐 먹고살까, 일자리 없는데 젊은 사람은 지역을 다 나가고, 태양광 갈등이 너무 심해서, 같은 사람 향 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전환의 상상력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도 짚게 되었다. 석탄발전소 막고자 산자부와 두산 앞에 진을 치고 재판을 하는 일만큼, 구체적인 시공간의 ‘현장’에서 그다음을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싶었다. 갈등의 언어만으로는 전환을 만들어 갈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한다. 기후정의와 녹색전환을 위에서 전유한다면 우리는 이전에 그랬듯이 다시 폐기하고 새 말을 찾아 떠날 것인가? 이미 꽤 많은 공문서에서 이 말들이 인용된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시대적 요청으로. 나는 쓰던 말들을 버리고 새 말을 찾아다니는 여정과 결별하고 싶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유행 따라 버릴 옷가지가 아니라, 우리의 시공간이 스민 뜻이다. 일련의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약세했는지, 뿌리가 얕은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이 시간이 흐르면 단단한 평화세우기에 마음을 쏟고 싶다. 그래서 이 정신없는 때를 잘 나고 싶다. 우리가 겪고 있는 비극에서 전환을 일으키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싶다. 현안이 뜨거운 이 쟁점에 대해서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잘 대화하고 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갈등 전환의 역사를 같이 만들어갈 수 있으면 참으로 귀하겠다 싶어요.


처음 치르는 선거고 정책질의서도 처음 써봤다. 물론 답변서도 처음 쓰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들과 각 당의 서울시당에 질의서를 보냈고 놀랍게도 모두 답이 왔다. 진보정당들을 포함해 송영길 후보에게도, 오세훈 현 서울시장에게도 답변이 왔다. 아주 잠깐 간만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가 가라앉혔다. 물론 의외로 동그라미가 많이 쳐진 송영길 후보의 답변서에서는 지킬까 하는 찜찜한 마음이 인다. 결과는 내일 공개하겠지만 오세훈씨는 역시나다. 그의 전공과 주 분야가 환경이고, 전국의 지자체 중 가장 먼저 서울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했다는 이상한 경력을 생각하면, 참 일관성 없는 답변이겠다. 한 명의 생애는 거울이 되곤 한다. 전두환의 생에서 악인과 그를 비호하는 구조를 읽었다면, 그리고 그와 맞선 586에게서 악과 닮아가는 투쟁을 읽었다면, 오세훈의 생에서는 모순과 그것을 용납하는 정치구조를 읽게 된다. 오세훈씨가 시장에 되던 일 년 전의 어느 날 나는 하루를 그와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었다. 나를 갈아넣어야 겠다는 아주 드센 다짐, 그 뒤로 모든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지금은 후회막심한) 원칙을 가지고 결국 곁이고 돌봄이고 다 말아먹은 마감폭파빌런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많이도 혼났는데 안 바뀌면 아니 되겠다. 맘 덜고 열일을 하러 가는 지금도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지만, 가야 할 길이 있기에 힘을 낸다. 곁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늘 감사함을 다시 전한다.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덧. 꼭 한 해 전에 있었던 오일팔에 대한 기억은 다음의 글을 싣는다. 기후정의위원회의 단식 농성기를 담은 책자가 나올 예정이다!


1. 맘고생 많이한 은강을 비롯해 기후정의위원회 동지들께 1년이 지나서 한 번 더 수고했고 곁에 있어주어서 감사하다고 남겨봅니다.

2. 점심밥 같이 먹어준 어진님께 감사하며 현장으로 녹색이 가야한다는 말 곰곰히 생각하는 중입니다.

3. 귀한 말 건네서 인용하게 해준 혜와 영께 감사합니다.

4. 논의를 건네주셔서 짧고 미숙하게나마 써보게 해준 재각님께 감사합니다.

5. 17개 지역 함께 우여곡절 다녀온 녹색전환연구소 식구(?)들께 감사합니다.

6. 처음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김상봉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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