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17 감사일기
마감이 있어서 퇴근길 정당연설회를 하고 출근(?)을 했다. 일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심란해져서 일이 안 잡힌다. 핑계인가? 그보다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보는 게 현명하다. 마음이 늘 울렁이는 거다. 그게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면서, 동력이자 활력인 것이다. 연이어 감사일기를 쓰다가 그만두게 되었는데 열흘이 지났다. 하나씩 보이는 곳에 마음을 던지면 홀가분하지만 금세 불편해진다. 나의 말이 유독하다면? 누군가에게 언짢음을, 불편함을, 심란함을 가져온다면 어떻게 하나. 무해하고 싶다. 이 이룰 수 없는 바람으로 말미암아 풀려날 수 없는 굴레에 매여버린다.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다. (안 그래도 우울한 세상에) 누군가에게 무거움을 한 스푼 더 얹고 싶지 않다. 사소하게는 안 그래도 정보량이 많을 내 곁의 이들에게 이런 걸 읽히고 싶지 않다. 힘 1g도 아까울 때에 힘 빠지는 말들을 얹고 싶지 않다. 힘이 되고자 하는 의도가 정성이 부족하여 부담으로 다가가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나의 선의와 나의 미숙과 나의 판단이 늘 두렵다. 실은 말이다. 내가 있는 공간의 평화를 만드는 일과, 성공 혹은 승리를 일구어내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후위기를 막는 것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자꾸만 절실한 마음에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것 같다.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함에 기대서 털어놓고 의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홀로 설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완벽함은 없고 완벽한 생명도 없다. 늘 자라나고 무너지고 태어나고 이어가고 하는 사이에서 ‘있다.’ 좋은 마음들이 만발했으면 좋겠다. 자신을 그대로 보고 보이는 것, 믿음을 발굴하는 것, 그리하여 곁님과 그 곁님들과 함께하는 것을 바람에 다시 이 끄적임을, 감사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찍 문자가 와있었다. “윤석님 오늘 정당연설회에서 시 읽으실래요? 한 편 골라와 주세요” 무엇을 읽어야 할까, 기후위기 시는 무엇인가 종일 골머리를 앓았다. 비극에 익숙하지 희극에 약한지라 다 망해버렸다는 논조 밖에 안 떠올랐다. 기후위기를 알고 내가, 우리가 늘 사용해왔던 서사는 위기의 서사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일 수 있지만 이것은 참 위험한 서사이기도 하다. 부정성만을 조명하고 위기감에 고조된 언어를 남길 때 사람이란 생명은 상상력을 역으로 잃거나 외면할 위험에 처한다. 이 서사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폭은 좁아지고 우리의 동력이 버티기와 갈아넣기에 한정될까 봐 겁이 난다. (그렇지만 비극이 조명되지 않는 세상에서 경각을 알리고 진중하게 짚는 시도가 어찌 무의미하겠는가) 다만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허수경 시인의 ‘해는 우리를 향하여’를 낭독했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시집에 수록된 시다. 가깝거나 먼 전쟁의 가까이에서 쓰여졌다는 이 시집은 비극을 짚지만 늘 무언가를 발굴한다. 시인 허수경이 고고학자이기도 한 까닭일까. 시인은 먼발치의 비극을 알고 보고 아파하면서, 그렇기에 첨 덧없고 공허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고대의 유물과 흔적을 발굴하면서 가능성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 이야기들을 자신이 감출 수 없는 감정선에 담아 간다. 그것을 전하고 싶었고, 다시 전하고 싶다.
가능성은 늘 잠재되어있다. 광화문 사거리에 선 녹색당이 지켜보는 사람 몇 없는 어찌 보면 초라한 정당연설회를 하고 있더라도. 기후가 실종된 선거 속에서 많이들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야 할 길은 늘 멀고도 험하다. 우리는 그에 비해 참 쪼그맣다. 그렇지만 단순하게 비교해 절망할 사안은 아니다. 초점을 맞춰야 될 것은 과정이자 가능성이다. 한 사람의 지혜, 한 공동체의 뜻이 돌고 돌아 다른 세상을 만들어 온 역사의 연장선에 살고 있는 한.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큰 울림으로 퍼져갈 수 있을 것이다. “기후정치 실현하자”는 오늘의 구호가 녹색당의 자기실현으로 이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결국 우리는 해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다. 내일의 해가 새로(그렇지만 익숙하게도) 떠오를 것이고, 우리는 이미 걸어가고 있다.
해는 우리를 향하여
허수경
까마귀 걸어간다
노을녘
해를 향하여
우리도 걸어간다
노을녘
까마귀를 따라
결국 우리는 해를 향하여,
해 질 무렵 해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해 뜰 무렵 해를 향하여 걸어갔던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나이 어려 죽은
손발 없는 속수무책의 신들이 지키는 담장 아래 살
았던 아이들
단 한 번도 죄지을 기회를 갖지 않았던
아이들의 염소처럼 그렇게
폭탄을 가득 실은 비행기가 날아가던
해 뜰 무렵
아이와 엉겨 있던 염소가
툭 툭 자리를 털면서
배고파, 배고파 할 때
눈 부비며 염소를 안던 아이가 염소에게 주던 마른 풀처럼
마른 풀에 맺힌 첫날 같은 햇빛처럼
1. 곁에서 각자의 함께의 전환을 만들어가는 녹색당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2. 이제 일을 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 믿고 일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3. 시낭독을 권해준 지선님, 든든히 기타 연주를 해주신 태제님께 감사합니다.
4.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처음 선물해준 좐에게 감사합니다.
5. 먼 곳에서 취재를 와주신 단비뉴스의 유지인 기자님께 감사합니다.
6. 각종 마음들을 나름의 고민 끝에 나눠주시는 이들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