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이 돌아가셨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을 안다. 감정은 동조화되기 마련이라 일면식 없는 이의 죽음으로 이상한 기분에 있다. 아마 만나 뵈었다면 한 판 했을 것 같지만, 깊은 마음으로 돌아왔을 것 같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모든 운동은 이어달리기라는데, 우리의 운동은 자꾸 과거와 멀어지려고 한다. 실은 충분히 같은 마음이다. 이제와 전후 세대와 386을 불러내는 것은 멋쩍다. 새 길은 우리에게, 어쩌면 그다음에 있으니까. 잘못 늙은 이들을 너무 많이 봐서 어른에 대한 공경심과는 결별한 지 오래다. 그러나 이 결별은 줄곧 허망함으로 돌아온다. 누구에게 인지 모르겠지만 버려진 기분이랄까. 내가 꾸는 꿈, 내가 하는 일에는 뿌리가 있을진대 늘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지식, 경험, 조직 모두 전수받기보다 새로 만들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좋은 어른과의 만남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다.
사발님을 지리산에서 만나고 끊어진 길을 이은 것 같아 감사했다. 지도의 한 페이지를 찾은 기분이었다. 녹색당 현관 옆에는 2004년 만들어진 초록 정치연대 간판이 있다. 녹색당의 전신이라 볼 수 있을 텐데, 사발님은 그 간판을 만든 사람이다. 옛사람이 아직 있구나, 늘 그렇듯이 이 땅 곳곳으로 모두 흩어져 나름의 녹색으로 살아가고 있었구나, 그 반가움에 취해서 힘을 내왔다. 나의 녹색 한국철학 잇기 프로젝트(풀뿌리 캐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어느덧 미움, 애잔함의 애증까지 오만 감정을 느껴가며 나는 녹색·생명 2세대와 같이 가고 있다.
사상가를 자처하는 이들은 많지만, 사상가로 불리는 이들은 적다고 생각한다. 사발님은 1989년 써진 한살림 선언 이후 계속 생명사상을 업데이트 해왔다. 주목받지 않는 작업에 매진하는 것은 외로운 것이었을 테지만 결실을 맺었다. 얼마 전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발간된 <몸-생/명’의 세계관, 저항과 꿈꾸기의 생명운동>은 생명사상의 대전환을 다룬다. 체계이론, 정동 이론, 페미니즘 이론을 통해 생명사상을 다시 구성하는데, 그 다채로운 만남 속에서 가능성이 태어난다. 세계관이 아닌 세계감, 생각과 느낌의 구분이 희석되고 이에 따라 동학 이래로 이어지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이 유기적으로 얽힌다. 내가 무언가를 쓴다면 이 작업을 전수받고 나서 그다음의 것에 대해서 쓰게 될 것이다. 다음을 끌어갈 생각은 지금까지 보지 않았던 땅에서 피어난다고 생각한다. 진짜는 (중앙이 될) 변방에 있다. 사상가 사발은 진짜이므로, 이 기회에 와서 만나보시길.
봄 잉태하는 동짓날
자시 거칠게 흩어지는 육신 속에서
샘물 소리 들려라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샘물 소리 들려라
한 가지 희망에
팔만 사천 가지 괴로움 걸고
지금도 밤이 되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날 뿐
아무것도 없고
샘물 흐르는 소리만
귀 기울여 귀 기울여 들려라
-김지하, 「동지날」
*사발님의 글은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