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턴가 일기를 쓰는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파리, 길, 건물, 녹읍,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내 발에 초점을 맞추고 그냥 걷는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저 잘 흘려보낸다. 대단한 명상법을 배운 적도 없고, 나는 가만히 앉아 하는 명상에는 영 재주가 없는 것도 보았다. 지금 내 마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앞으로 써야 할 글이 어마무시한데 준비운동에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 내 예민하고 곤두세워진 촉각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완벽주의 성향이 내가 했던 많은 일들을 꼬이게 했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너무 이상적인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스스로 괴롭히는 기제 중에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 이것들이 들어나지만, 가장 크게는 그림을 그릴 때.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 무엇을 먼저 그려야 할까, 같은 상념들이 일어나면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다. 그저 산책을 하듯이 자연스레 발 가는 대로 가되 내가 어느 발을 먼저 움직였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앞으로 써야 하는 글이 한가득인데 잘 할 수 있을까도 싶다. 내가 해야하는 발표들, 내가 해야하는 말들 모든 것이 다 기묘한 짐덩이처럼 나를 이상하게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힘을 내야하는 때이다. 월요일이 다가올 때 느끼는 압박감은 우리 앞에 놓인 시련들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앞길에 어떤 무서운 망령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라서 덜덜 떨었다면, 꼭 그게 다는 아니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모두에게 하고 싶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 무엇을 말할지, 어떤 것을 이야기할지 몰라도 괜찮다. 스트레칭을 할 때 어느 근육을 먼저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 없이도 괜찮다. 말에는 힘이 있고 다른 말로는 독성도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무게를 모르고 살았고, 지금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알고, 그것이 무서워서 말을 안 꺼내고 가슴에 파묻어왔던 것을 후회한다. 상처가 되는 말, 못난 말, 날카로운 말, 비겁한 말 같은 것들도 괜찮다. 모든 태어난 것들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용납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바라보고 때로는 용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순례하듯이 길들을 걸어가고 싶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라 말들아. 따스한 햇살 아래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생명들이 – 인간과 건물을 포함하여 – 아름답다고 느꼈다. 비록 지금도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전쟁의 포화가 있고, 이루 말 할 수 없는 비극이 끊이지 않으며, 천마야차가 날뛰겠지만. 그것을 직시하는 법은 나를 그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다. 내가 괴로움으로서 내 마음의 짐을 더는 경향도 이제는 싫다. 가장 평화롭게 비극들을 살피고 보고 싶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이 앓음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자 이제는 할 일을 하러 가야할 시간이다. 다 울었으면 할 일을 해야징. 마무리를 귀엽게 하려는 것은 새로 노력하는 수행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귀엽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 진지해져 버렸다. 따사로운 볕이 모두의 귀여움을 해방시키길? 정성과 평화를 담아, 윤석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