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28.

by 노마 장윤석

어려운 아침이다. 온몸에 분노가 서려있다. 어려운 감정에 가득 싸여 있다. 돌아온 느낌과 생경한 감각이 공존한다. 생은 돌고 도는 것 같다. 한이 맺혀 있으니 한풀이가 필요하겠다. 차로 인한 비극과 전환에 대한 글을 이틀간 썼다. 내가 썼지만 내가 쓴 게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어디에 공개적인 글을 올리는 것이 꽤나 두려워 올 해는 올려본 적이 없는데 친구가 언니의 차충돌과 이후의 경찰과 행정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해서 뭐라도 보태는 마음으로 썼다. 직장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쓰는 칼럼이 되어서 더 어려웠다. 글이 좋고 안 좋고 같은 수식어도 못 견딜 것 같아서 피드백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내 친구만 괜찮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세상에 글의 성격을 가르는 관점은 여럿이 있다. 형식적으로 판단하여 글의 성격을 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극의 관점도 있다. 보도윤리, 연구윤리와 같이 글이 지니는 무게에 부합하는 윤리적 책임이 있다. 그 관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몸과 손에서 생생히 느껴지는 무게감이 짙었다. 그리고 다시 쓰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주는 것이 실로 내게는 서운함이겠지만, 내 안은 아마도 어쩔 줄 모르는 분노로 차있어서, 용서가 안 될만큼 화가 났다. 하라는 대로 수필의 성격을 지우고 연구의 관점을, 정책의 관점을 추가해서 고쳤는데 성에 찰지는 모르겠다. 글은 꽤 건조해져서 나는 혹여나 내 친구가 슬픈 눈으로 읽을까 겁이 난다. 어쩌면 다시 피드백이 오면 글을 지울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게 서려있는 분노의 크기에 너무 두렵다. 화라는 것은 그 대상을 너무 쉽게 옮겨다녀서, 자기에게도 화가 났다가 애꿎은 세상 탓을 했다가, 옆 사람을 다치게도 했다가 하는 것 같다. 지금 내게 있는 분노의 출처 혹은 기원은 어디일까. 사람이 죽으면, 혹은 그에 준하는 상해나 고통을 겪으면 왜 이렇게 어려울까. 당연한 질문일 수 있지만 저마다의 배경은 다를 것이다. 나는 엄마를 잃을까봐 공포스러워 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커서는 친구를, 어떤 공동체를 잃을까봐/죽을까봐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과 그의 이면으로서의 분노를 건강하게 승화하는 방식을 찾아보려고 했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나, 자기 달래기 같기도 하다. 근본적인 것, 근원적인 것은 해소되지 않고/해소될 수 없고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가장 격정적인 때로 돌아간 것 같다. 3년 전 붕앙과 기후에 미친 때처럼. 슬픔을 슬픔만으로 남길 수는 없을까. 어떤 죽음을 꼭 사회적으로 연결짓고 운동해야 할까. 운동을 꼭 대의와 사명과 맥락에 역점을 두지 않고 그냥 밥 먹듯이 일상적으로 두면 안 될까. 그리고서 내 친구와 그 충돌을 생각하면 이건 다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생각만 든다. 그 까닭도 사례도 역사도 다 찾아서 정리했다. 그렇다면 끝일까. 할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한 주 정도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들었다. 이 이야기를 마지막에 쓴 것이 기묘하다. 내가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방방 뛰고 있는 지금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다. 29년 생 박, 할머니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손자와 할머니의 관계 이전에 한 사람의 생이 어땠는지 나는 아직도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듣지 못한 아쉬움에, 그리고 그걸 묻지 못했다는 죄책감 등에 한동안 괴로울 것 같다. 할머니는 내 입원한 친구가 있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코로나라 격리가 되어 아무도 못 들어간다고 한다. 의료 보건 돌봄 계의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와 운동이 떠오른다. 내가 제대로 슬퍼하지 못하고, 애도하지 못하고, 애꿎은 그러나 진실로 추상적인 사회에 화풀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내가 지을 표정이 궁금했었다/아니 궁금하지 않았다. 나에게 유일한 조부모이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더 할 말이 없다/할 수 없다. 밖으로는 힘듦을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실제로는 두 배가 된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망설이다가 올린다. 모두의 저마다의 어려움에 정성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친구 언니의 회복에, 할머니의 존엄에 기도를. 장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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