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23.

그지깽깽이

by 노마 장윤석

무슨 말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뭔가 멋들어진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자의식에 취했다가 자기 연민에 빠졌다가 그러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여름이 싱숭생숭하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 실은 세상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랬구나. 오늘도 누가 죽었구나. 이런 일이 있었구나. 죽음에 천착하는 것, 비극적인 서사가 아니면 말을 하지도 못하는 것도 광증이겠다. 내일부터 밝은 생을 살고 싶다 같은 게 없다. 다음주는 계획적으로 착실하게 무언가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야지 같은 것이 없다. 이루고 싶은 것 같은 것도 없다. 실은 나처럼 욕심 많은 인간이 그런 게 없을 리가 없지마는. 배터리가 곧 꺼진다고 알람이 울린 이 노트북과 내가 맺어온 관계는 무엇일까. 어떤 면에서 나는 많은 것들에 참 야무지게도 소홀해왔다. 정리되지 않은 주소록. 손 때가 묻은, 더럽게 정이 든 것들(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에서 대구 고모할머니가 한 말). 너는 왜 그리도 떠나고 싶어했을까. 연기를 멈춰야 살 수 있는 걸까. 내가 모르는 소리들을,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 진심에 가까운- 소리들을 아우성들을 내지르고 나면 조금 숨통이 트이는 걸까. 메이플스토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푹 빠져서 큐브를 한땀한땀 돌리고 있으면 뭔가 잘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집중한 시간만큼 온 몸에 기력이 쇠하면 돌아와서 벗어나고 싶은 골방에 누울 수 있다. 그렇게 누우면 허망한 마음이 한켠에 일면서도 다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잠에 들게 된다. 그러므로 그렇게 무기력하지는 않다. 마음 한 켠에 쌓여있는 다양한 것들을 못 본 척 하고 있다. 곧 이사를 가게 된다. 아, 집을 없앤다 에 가깝겠다. 물건들을 보니 나는 욕심이 참 많았다. 책들을 오지게도 쌓아뒀다. 다 읽지도 못할 것을 그렇게나 두면 내가 뭐라도 아는 기분이 들었던 걸까. 책들을 사들고 그 높은 골방에 오르면 뭐라도 해낸 것 같았나. 이제는 팔아도 값이 나가지 않는 활자들. 나는 그것들을 살 때 별로 아깝지가 않았던 것 같다. 아끼고 싶지가 않았다. *다 흩뿌려 나눠주려고.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긴급하게 산다는 것이 그런 걸까. 기후 그리고 운동은 그런 면에서 나를 속이기 참 좋은 말들이었다. 소중하지만. 속여왔던. 나름대로 뭔가를 쌓아도 왔는데, 나는 그 쌓아놓은 것들이 내 것 같지가 않다. 정상의 허망함, 아니 중턱의 허망함이 쏴아 들이닥쳤다가 철석 나가고. 그렇게 파도소리가 들어왔다가 사라졌다가, 하면 좀 울음이 가실지도.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있다. 오래된 것들은 구수하다. 그 구수함이 답답할 새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인가 나는 그립다. 오늘 아침에 우리집 화장실에 나온 손바닥만한 거미가 무서워서 쉬 한 번 편하게 못 싸면서도 낡은 시골집을 왜 난 그리워 하는겐지. 녹색으로 덮인 카페가 문 닫을 시간이 되었는데 큰 나방 같은 게 들어왔다. 벌새일지도. 아까 스님에게 전화가 왔었다. 어제 왔었는데 피자 사와서 사이렌 보다가 못 받았다. 스님 앞에서는 한심한 내 모습을 보이기 싫다. 그러나 스님의 말을 듣는데 내 생을 거기다가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절간에 나는 무엇을 두고 왔는지 계속 그립다가 말았다가 한다. 나는 입으로 나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명상했던 적이 있었을까. 자기를 모르고 사회를 안다는 불쌍한 우리들,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 참 많고도 다채로웠다. 그래서, 그래서? 말들을 정갈하지 않게 지껄이니까 속은 편하다. 아니 이런 걸 올릴 생각을 하니 편하지 않다. 내 얼굴에 똥칠할 짓을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주는 시원함? 돌아버린다. 나는 멋들어진 척 하는데 너무 애썼다. 좀 있는 체, 똑똑한 체 같은 거. 이론에 천착하는 이들의 대게는 속 빈 강정이라는 거 같다. 신 샘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왜 그의 장례식에서 스승이라고 했을까. 스승님, 스승님? 선생들을 무수히 남기는 것, 제대로 하나에 빠져본 적 없이 이름을 올리는 것들이 좋은지 모르겠다.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무엇과도 다른 일상을 살게 될 것이다. 감옥에 가고 싶다. 실은 그랬던 것 같다.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게 나의 팔자인 것 같아서. 생각하면 우리는 펜데믹의 시간을 거쳐왔다. 나는 그날들이 실은 천지가 개벽할 듯이 낯설었다. 아주 낯설었다. 아픈 몸이라고 아픈 이야기들만 하고 싶지는 않다. 비가 와도 삶은 아주 재미나기도 하다. 할머니의 입관식이 어른거린다. 너무 울어서 부은 내 얼굴이 참 웃겼다. 성화 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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