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미학
연휴에 집정리를 했다. 오랫동안 미뤄둔 정리를 시작해봤다. 얼마전 친구와 ‘우리’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우리를 인연을 맺고 있는 모두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다. 경인, 경물, 경천이라고 이 생각은 사람 뿐 아니라 물건에도 해당해서 나는 손 때 묻은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아예 버리지 못한다가 맞겠다. 그렇게 무언가를 모으기 시작한 약 십 년, 세 번의 이사를 거치며 모아온 살림살이는 방 한구석을 가득 채웠다.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삼 개월 간의 여정을 먼 곳으로 떠났었는데, 돌아와서도 육 개월 간 손대지 못했다. 매주 꼭 할 일에 적혀있었는데 말이다. 무엇이 이 정리를 막았을까. 시간이 있어도 마음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일에는 연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의지박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일부는 맞는 말이지만, 그보다 잔뜩 엉킨 실뭉치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엉킨 실뭉치를 들여다보고 풀어나가는 일은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려워 한 구석에 치워놓고야 만다. 나는 그 치워놓는 마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젠간 치워야, 풀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 과정에 함께할 용기를 내는 건 그럼에 중요할 것 같다. 무언가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함께하는 것은 어렵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마음도 강박이겠지만, 완벽한 정리를 못하는 것이 두려워 쌓아두는 마음은 안타깝다. 절반 정도를 버렸다. 주로 종이가 많았다. 자료집, 발제문, 소식지, 필기노트 같은 것들. 어떤 걸 버리고 어떤 걸 간직해야 하는지 기준이 마땅치 않아서 늘 어려웠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손이 그 기준이 됐다. 차마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남기는 식으로. 나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어있는 소중한 순간들은 자루정리해서 남겨두었다. 문사철(문학을 읽고 사유하고 철들다; 방과후 인문학모임), 너도나라(우리철학연습소), 따자하오(따뜻한 자본주의 하오; 경제학개론 조모임), GPS(회대녹색당 공부모임)에서 남긴 기록들은 버릴 수 없었다. 그 외에 나를 스쳐지나간 흔적들은 미련을 줄이고 떠나보냈다. 그 과정에서 지식은 쉽게 휘발되지만, 관계 맺으며 모색한 지혜는 오래 남구나 싶었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나 소중해서, 그것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운 마음이었을 수 있겠다. 나는 어제에 잡혀서 오늘을 충분히 살지 못하는 사람 같다. 그런데 그건 어제가 소중해서 그렇다. 그 인연의 세월에 쌓인 지층이 귀해서. 그래도 내일을 맞아야 하니까. 무엇에 집착하는 마음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으니까. 비워낸다는 명목으로 아끼지 않고 무언가를 훌쩍 떠나보나는 것이 영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잘 간직하고 싶고, 잘 기억하고 싶고, 좋은 재해석과 재발굴 그리고 전수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짓누르는 부담이 된다면, 마음에 들어찬 여한이 된다면 그건 떠나보내는 게 맞다. 잘 떠나보내는 것이 내가 배워야 할 길이겠다. 죽은 사람은 물건이 없다는 한 유품정리사의 말이 인상에 남았다. 오직 산 사람의 마음에 미련이 남은 물건만이 있을 뿐이라고. 잘 정리하는 것도 애도의 한 방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