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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Oct 01. 2018

양파의 무게

이천 원 어치라기에는 양파는 너무나 무거웠다

냉장고 속 부추가 명을 다해가고 있어 부추무침이나 만들까 하여 양파를 사러 나섰다.


길을 걷다가 선택의 순간에 마주했다. 대형마트와, 좌판 위 채소를 파는 할머니. 잠깐 갈등하다가 얼마 전 글을 쓰다 기억해낸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사람이 너무 좋아 탈이었다는 외할아버지는 시장에 나서면 좌판 할머니가 파시는 채소를 모두 사들고 오셨다 한다. 외할머니께 등짝을 맞아가면서도 매번 그러셨단다. 나에게 그 사람 좋은 피가 흐르는 까닭에 나는 대형마트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할머님께 걸어가면서도 별별 걱정을 했다. '혹시 비싸면 어쩌지?', '내가 순해 보인다고 바가지 씌우면?' 대형마트의 정직한(?) 가격이 아니라서 불안한 걸까. 할머님이 임의로 정하는 가격을 믿지 못하는 까닭일까. 


"할머니, 양파 한 망만 주셔요"


"- 천 원이여유" 


가격을 듣지 못했다. 이천 원인지 오천 원인지 둘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이천 원 일리는 없구.. 다시 할머님께 여쭈었다.


"할머니 양파 가격이 얼마라구요?"


"이천 원이유"


"아, 네.."


할머님은 양파를 한 망 가득 담아 주셨다. 옆 대형마트에서 오천 원에 파는 양보다 많았다. 이천 원을 내밀면서도 내가 할머니를 속이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할머님께 사드리고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할머님은 한 마디 더 말씀하셨다.


"총각 사줘서 고마워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다. 아마 할머니가 한껏 담아 주신 양파 무게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품었던 내가 부끄러워 그럴 것이다. 고작 이천 원으로 할머님이 몇 개월 간 정성껏 기른 양파를 뺏어온 찝찝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저 이천 원이 모이고 모여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어느 손주에게 가겠지. 나와 같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천 원 어치라기에는 양파는 너무나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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