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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Jun 23. 2024

사랑은 옳다

2024.6.20 여덟 번째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우연히 다시 마주친 친구는 그간의 여정을 세 문장으로 요약했다. 이분법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나아간다. 언제나 사랑은 옳다. 이 아름다운 문장들의 배열에 잠시 넋을 놓았다. 누가 신승철학을 요약하라고 해도 똑같이 말할 수 있겠다. 삶에 가장 중요한 것들은 때론 가장 단순한 문장들로 온다. 오늘은 그 미묘하고도 어려운 사랑에 대해 추억에 잠겨보려 한다.


신 샘은 가끔 분자혁명이니 배치니, 국지적 절대성이니, 온갖 어려운 개념들을 말하다가 결론을 말할 때 사랑의 샛길로 빠지곤 했다. 정신줄 놓고 듣다 보면 어느샌가 “그래서 사랑입니다.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집니다.”하고 짐짓 진지한 얼굴로 사랑과 정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럴 때면 솔직히 띠용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하면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던 형식과 시스템만 남고 관계와 사랑이 부재하기 일쑤인 듯하다. “타자화의 논리는 사랑에 무능할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66p)”는 말도 깊게 남는다.


신 샘의 사랑을 묘한 철학의 주인공들만큼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무엇이 나로 하여금 계속 이곳에 발걸음을 옮기게 할까 물으면, 사랑 말고는 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부채감도, 후회도, 존경과 경의도 표면이고, 안에 있는 것은 복잡한 사랑이다. 내가 받았던 사랑과 내가 가졌던 사랑이 있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 가까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저마다의 다양한 그 사랑의 형태와 모양이 섞이어 우리가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추모축제의 초대장을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는 곳곳에 전하면서 신 샘 생전에 미처 인연을 만들어두지 않은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내가 받았던 사랑의 기회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지나고 후회하는 것은 늘 늦기만 하다. 그리고 찾아오는 작은 깨달음은, 신 샘이 돌아간 지금 그 역할을 우리가 나누어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 이럴 때 그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그리워함을 내가, 너가, 우리가 그가 되며 풀어가면 되는 게 아닐까. 스피노자와 가타리를 거쳐 사랑은 변용이고, 그 변용은 우리에게 지혜를 선사한다는 신 샘의 말이 깊게 여겨진다. 사랑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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