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장윤석 Aug 31. 2024

2024.8.31.


절간, 밤이 깊어오니까 여러 생각이 스치었다가 말았다가 한다. 일기를 꽤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곁에 있는 사람 덕분이기도 하고, 내가 달라진 것도 있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벗어난 지 조금은 되었다. 스스로를 책망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보다, 좀 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현존하는가? 질문을 받아들면 아직 멀었구나 싶지만은 그래도 지금의 내가 전보다는 좋다. 아니, 이 정도면 좋다. 좋은 것 같아. 다만 하루를 다시 살고 싶다, 제대로 살고 싶다, 끌려가지 않고 충분하게 충만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솟구쳤다.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안다. 그것이 내가 지금 갖추고 있는 오늘의 지혜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그 결핍과 갈망은 더 이상 달래기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나의 터전과 나의 마음가짐을 오롯이 집중하여 다시 태어나야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스님이 농을 던지듯 출가하란 말을 던지셨을 때 마음이 쿵 했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마음 근육이 약한 내가 속상하다. 나는 아침 요가를 잊고, 명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짐한 하루 일과를 못 지키는 내가 속상하다. 나는 약속을 잘 못 지키고 자주 지각하는 내가 속상하다. 나는 거절과 고사를 모르고, 이리 저리 끌려다니는 내가 속상하다. 나는 우선순위를 잘 모르고, 이것저것 이도저도 아니게 혼잡한 내가 속상하다. 나는 현생에 치여서 정작,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흘러가는 내가 속상하다. 나는 풍경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하고, 사랑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시공간의 흐름을 온전히 잊지 못하는 게 속상하다. 나는 이 고민을 몇 년 째 풀지 못하는 내가 지겹도록 속상하다. 나는 속상함이 감사함보다 앞에 오는 내가 속상하다. 이제 감사한 것을 적어보자. 나는 감사함을 적고자 하는 나에게 감사하다. 나는 나를 이 절에 불러준 주님과 스님께 감사하다. 나는 그럼에도 속상함보다 감사함을 입에 올리는 내가 감사하다. 나는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내가 만난 수많은 인연이 내게 남아 함께하여 감사하다. 이 순간에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사랑에 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 점에서 더할 나위가 없다. 내가 했던 많은 근심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고 말았다. 귀한 생명의 시간을 잘 보내고 살고 싶다. 살림의 시간으로서. 살림의 시간이므로. 정성과 평화를 담아, 윤석 성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