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2024.9.9.~9.10
한 달간 먼 곳을 다녀왔다. 이상하게도 먼 곳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가깝고도 먼 여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말은 후회 한 점 안 남았다 했지만 괜스레 아쉬웠는지 마음이 방방 뛴다. 동이 트면 다시 익숙하고도 새로운 일상의 수레바퀴로 걸어갈 테다. 이것들은 가기 전에 쓰는 글 조각들이다.
어디로 발걸음을 딛어야 하는가. 언제부턴지 내가 내딛는 발걸음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내 의지로 내딛는 발걸음보다 떠밀리거나 이끌려서 내딛는 발걸음이 더 많아진 기분.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나, 내 마음의 무게 중심이 잘 잡혀있는지 물음표 한 조각 툭.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말을 내뱉는 기분은 썩 좋지 않다. 그럴 때면 어디로든 떠날 것을 권하고 싶다.
유럽 대륙으로 가는 가장 싼 비행기를 끊었다. 이 비행기는 좌석 앞 화면이 켜지지 않아서 내가 어디쯤 왔는지 보려면 GPS를 찍어봐야 했다. 몽골과 카자흐스탄의 드넓은 초원과 고원 위에 내가 있었다. 잠들고 일어나니 우크라이나 인근 상공을 날고 있었다. 한 날 사이에 나는 대자연 위에도, 전후의 잔해 위에서도 날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야간비행 열다섯 시간은 언뜻 길어 보이지만,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하는데 고작 한나절이라고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다. 고작 몇천 년에 이 거리를 걸어서 이동한 노마드들도 있었다. 그들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세대를 거쳤다고 한다. 아무래도 비행기를 따는 건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행기는 파리에 내렸다. 반가운 얼굴들을 곧바로 만났다. 진과 고는 내게 라따뚜이 크레페를 사주었다. 밥 크레페가 나오고 후식 크레페가 또 나왔다. 세상에 크래페도 밥이 될 수 있다. 두세 세대 정도를 이어왔을 낡은 크레페 가게, 작고 아담한 가게는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가는 나무 기둥으로 받쳐져 있었다. 진은 곧 십 년의 타지생활의 막을 내리고 광주로 간다고 했다. 나는 곧 이사할 집에 깨지기 쉬워 보이는 도자기 그릇을 선물로 데려갔다. 파리의 머그컵 가게에서 그가 눈에 띄었다. 제기처럼 생겨서 산스크리트어로 신성한 음인 옴ॐ(옴 마니 밧메 홈 진언의 그 옴)이 적혀 있었다. 가게 주인은 말했다. 우리는 사람이 물건을 고른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때로는 사물이 사람을 고를 때가 있어. 이 경우가 그런 것 같네. 여하튼 하여튼 진과 고의 파리 투 광주 이사가 무탈하기를 빈다.
눈을 떴을 때는 집주인들이 바캉스를 떠나고 없었다. 높은 집 사이로 해가 방긋 고개를 들었다. 해 뜨는 것을 맞으며 Kawai라 적혀있는 피아노랑 잘 놀았다. 그리고 곁의 여러 사람들에게 기도를 빌며 108배를 했다. 그들에게 기도가 잘 도착했을지는 모를 일이나, 내 마음은 편해졌다.
연구소에서 들뢰즈 가타리 천 개의 고원 세미나를 시작했다. 하루 전 봐둔 티베티안 식당에서 모모를 먹으면서 귀동냥을 했다. 리좀 Rhizome(뿌리줄기, 천 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핵심 개념 중 하나)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으면서 신 샘은 그렇게나 가타리를 좋아했으면서 왜 파리에 한 번 가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프랑스 녹색당을 함께 창당했다는 가타리가 파리에 처음 생긴 티베트 가게라는데, 염주를 하나 사들고 길을 떠났다. 가게 주인이 텀블러 놓고 갔다고 뛰어오셨다. 세계 곳곳에 있는 티베트 공동체들을 보면 마음이 묘하다. 쫓겨난 사람들이자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 복수심이 아니라 자비심을 말하는 사람들. 땅을 잃었으나 뜻을 살려가는 사람들. 나는 이분들을 볼 때 존경심을 느낀다.
몽마르트르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 한 부대의 데모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뭔 말인지를 모르겠다. 대충 교사들의 노동권에 대한 집회 같은데, 왜 이렇게 학생들이 많지? 여성단체들과 정당들도 눈에 띈다. 엊그제 907 기후행진을 하고 와서 그런가, 괜스레 동질감이 느껴져 같이 걸었다. 그나저나 매년 9월 반복되던 세계 기후행진이 올해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양차례의 전쟁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2015년의 파리협정이 이제 곧 십 주년을 맞는다. 1.5도(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치를 1.5도 이내로) 지키자는 약속, 전 세계가 함께한 조별과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이 파리협정을 탈퇴한 트럼프가 다시 재선이 되냐 마냐 하는 형국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 사는 세상은 어디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나.
분명 팬데믹 이후 여러 전환 모델들이 있었다. 파리의 15분 도시 플랜이 대표적, 분명 한 해 전 파리에 왔을 때 자동차 도로를 전환한 자전거 도로가 참 보기 좋아 보였다. 팬데믹 이후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꼽히는 15분 도시 플랜은 도시권을 중심으로 계속 상기해야 하는 모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싼 전기자전거들과 허름한 낡은 자동차들이 눈에 띄었다. 자전거는 파리 중심부 시민들의 대표 이동수단으로 자리를 잡은 듯 보인다.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직장인들이 눈에 띈다. 반면 외곽 갓길에 대놓은 아주 허름하고 낡은 자동차들이 눈에 띈다. 내가 알기로는 저 자동차들보다 이 자전거들이 더 비싸다. 자전거로는 올 수 없는 외곽지역에 살고 있는 파리의 하층 계급에게 15분 도시 정책은 어쩌면 남 이야기이자 울분 터지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이번 파리 올림픽의 노-에어컨, 채식 식단 등 친환경 정책이 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를 가르는 결과를 낳은 것과 연결되겠다.)
자전거 정책을 연구할 때 자전거 정책이 장애인 이동권과 상충하는 경우에 대한 갈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꽤 많은 녹색전환 정책들이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정책 대상에서 빼놓고 가는 허점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무엇이든 전환이든 정책이든 말끔할 수는 없다. 그 복잡성 위에서 고민을 덧대야 한다. 얼마 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패럴림픽을 앞두고 유럽과 파리에 왔었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여기에서도 진행했다. 올림픽에 비해 한없이 주목도가 낮은 패럴림픽, 여기에서 반짝 장애인 권리를 말하고 다시 평범한(장애인 차별이 공기처럼 깔린) 일상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균열을 내는 말들이 올랐다고 한다. 진의 집에서 그 사진들과 기사들을 보며 어떤 경이로운 마음이 일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 몇 미터당 한 분씩 모자나 종이컵을 앞에 놓은 빈자가 있다. 친구 하나가 요새 유럽이 전반적으로 가난한다는 소리를 했다. 특히 전쟁들 이후. 그래서 더 소수자와 이민자에게 각박해지는 것 같다는 말이 뒤를 이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각박해진다. 이 흐름을 뒤바꿀 힘은 어디에 있을까. 가난하기 때문에 함께 살 수는 없는 걸까. 이제 다시 기차를 탄다. 다음 행선지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접경도시 이룬Iru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