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2. 재판 축하연 소회

청년기후긴급행동 붕앙재판 축하연 폭싹 속았수다

by 노마 장윤석

내일이 오기 전에 오늘의 마음을 적어두고자. 얼마 전 오래도록 끌어오던 재판이 끝났다. 찐찐찐 최종 같은 느낌이었다. 법원명령을 받고 시작된 재판,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던 2021년 즈음의 우리들은 오늘이 이렇게 다가오리란 걸 알 수 있었을까. 시간의 신비한 점은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모두가 공감과 걱정을 전하면서도 한국이란 나라의 법원에서 기대를 내려놓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안타깝게도 새만금을 비롯해 법정으로 간 환경 관련 재판은 모조리 줄줄이 쓴맛을 봤기에, 우리가 알기로는 단 한 건의 승소 사례도 없기에, 가보지 않은 길이었지만 가기가 두려워지는 그런 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에 와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 말고는 하늘에 한 점 후회가 없다. 잠깐 정리해 볼까. 2023년 5월 두산이 건 재물손괴 배상의 민사재판이 기각되는 승소를 거두고, 2024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에서 재물손괴죄 선고를 파기환송하는 승소를 거두고, 2025년의 우리들은 절반 감형 그리고 벌금형의 집행유예라는 신비한 판결을 받았다. 벌금형의 집행유예라는 판결은 (재물손괴죄를 파기하였더라도) 집회시위법 위반을 법리상 인정해 선고한 판결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보수적인 실정법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진보적인) 판결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재판을 함께하기 전에는 승소와 패소를 재판부가 내려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법의 언어에 승과 패는 없다. 그건 재판장에 서 있는 이들의 인식이자 평가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결국 우리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여정을 승소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 반 컵 비유와 같이, 반밖에 없네라 할 수도 있지만 반이나 되네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누가 봐도 이건 물 반 컵이 아니라 한 컵 같은 반 컵이다.


비단 결과가 좋아서만은 아닐 거다. 그냥 우리가 함께한 모든 시간과 일이 (돌아보니) 좋았다 같은 거랄까. 4년이란 과정이 깊었다. 처음에 재판을 할 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 스스로와 동료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우리가 하는 이 재판이 나 하나 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붕앙과 지구와 생명들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져 버리면, 그다음 재판들도 판결의 영향을 받아 줄줄이 질 가능성이 높아질 테고, 우리에게는 우리 이상의 책임감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고. 돌아보면 참 무겁게도 생각했지 싶다. 나는 나의 삶을 사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사는 것뿐인데. 돌아보면 부끄러워서, 이건 전생이다 하면서 흐린 눈을 하는지도. 그러나 그 무거움과 긴급함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기에. 강약약중강약약이 중요한 듯 하다.


아무래도 말은 거창하고 삶은 단순하다. 이 여정의 시작은 (나에겐) 생태학살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이지만, 걸어온 지금 나에게 가장 남는 말은 "즐겁다"는 생뚱맞은 슬로건이다. 언어란 참 신기하여, 이 재판을 걸어오면서 우리의 말들이 바뀌어고 있었다. 주어에 두산이 오거나 석탄발전소가 오거나 기후위기와 생태학살이 왔었는데, 점차 우리와 서로가 주어에 온다. 철회, 저항, 운동, 긴급 등등 명사들에 강조점이 찍혔었는데, 즐겁다, 돌보다, (다른 법질서)를 꿈꾼다, 만든다 등 동사에 방점이 찍힌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이라는 무언가를 부르는 말도 운동조직, 기후단체 같은 말들에서 요새 보면 공동체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띈다. 무언가를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임시로) 모인 팀/TFT/조직이었는데 살다 보니 추억과 관계와 유대와 우정과 기대와 꿈을 가진 공동체가 되어간다. 내 생각에 우리의 목적은 더 이상 석탄발전소를 막아내는 게 아니다. 물론 우리는 석탄발전소가 문 닫고 다른 에너지와 문화가 자리한 세상과 사회를 계속 꿈꿀 것이다. 다만 우리의 목적은 우리 안에/곁에/옆에 있다. 우리는 목적에 앞서 살아가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어려운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싶다. 나는 기후운동을 그만둬도 긴급행동이란 공동체와 함께할 것 같다는 말이다.


무엇이 우리를 우리로 만들까. 결국 내가 오래도록 변주해 가면서 질질 끌고 또 마감 못해서 엉엉 우는 연구의 주제는 이게 아닐까. 저항과 꿈이 공동체가 되어가는 과정과 길, 그것이 주는 감동이 내가 가장 귀하게 느끼는 게 아닐까. 오늘의 축하연은 참 즐거웠다. 눈물 날 것 같아 참느라 잔뜩 혼났고. 이 끝없는 이어달리기에 함께해주고 있는 구성원들 각각이 너무나 참 귀하고. 왠지 모르게 미안하고. 또 왠지 모르게 고맙고. 나는 이 걸 꼭 써야겠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꼭 담아야겠다. 감정이 과다해, 시간이 야속해, 앞날이 막막해 미루어 온 이 이야기들을 잘 다듬어 마치 봄날에 두릅같이 밥상에 올려놓고 싶다. 그러다 보면 폭싹 속아서 석탄발전소가 문 닫는 날 같이 환갑잔치를 신명 나게 열 수 있을 거다. 혹시 또 모른다. 우리의 즐거움이 우리의 꿈을 앞당겨 서른 맞이를 석탄발전소 조기폐쇄와 함께하게 될지도. 이 이상하고 슬픈 시대에 축하하고 기뻐할 일과 이야기들이 앞으로 여럿 있으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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