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해갈이글 (一)

by 노마 장윤석

지난겨울 오대산 전나무숲에서 푹푹 쌓인 눈밭을 걸었던 게 떠오른다. 눈이 쌓이면 세상에는 적막이 흐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새삼 낯선 고요함. 뭔가 이 순간을 멈추고 싶다는 마음도 일어났다. 그 길의 끝자락에서 오랫동안 끙끙 앓았던 글 <희망, 시간, 생명>을 썼다. 이 글은 앞으로의 길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다. 세 낱말을 부여잡고 가게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일었다. 언젠가부터 이런 식으로 어떤 예감이 찾아오면 나는 저항하지도, 고민하지도 않고 순순히 따라간다. 특이하고 혼란한 시대와 세계에서 내 손에 유일하게 쥐어진 나침반 같은 것이다. 희망, 시간, 생명.


원래 연말이 다가오면 미련 섞인 마음이 가득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쳐내야 하는 일과 마감도 눈앞에 선했고, 안부 인사를 포함한 어떤 연락들도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아쉬움이 많으니까 뭘 해도 가뿐한 마음으로 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고. 송구영신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니까 - 잘 써야지 하고 마음먹은 글이 더 안 써지는 것처럼 - 오히려 갈무리와 내다보기가 더 어려웠달까.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 해를 잘 시작하고 싶은데, 그 ‘잘’이라는 녀석에게 오히려 좀 치였던 것 같다. 너무 힘을 주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되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강하고 굳게 마음먹지 않으니 - 혹은 돌아보고 계획해도 소용없다는 마음이 생겨났는지도 - 의지박약과 일상적 안일함에 굳이 뭘 하기 싫어지는 관성도 생겨났던 것 같다. 올해는 그 힘주기와 힘 빼기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보려고 애썼던 해이지 싶다. 의미추구와 의미 없음 사이에서의 조율이기도 하고.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단번에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어느 정도 시간과 경험이 쌓여야 그 형상이 나타난다. 국 끓일 때 국물 내는 것처럼. 청소도 그렇고 설거지도 그렇고 분리수거도 그렇다. 얼마 전 몇 년간 미뤄두던 피아노 조율을 했다. 아마 이모네에서 우리 집으로 피아노가 처음 올 때가 마지막일 테니, 무려 17년 만의 조율이다. 조율사 님이 한 두어 시간 걸릴 거라고 하시고는 장장 다섯 시간 반 동안 고생하셨다. 한두 해에 한 번은 조율을 해야 악기가 사는데, 그동안 쌓인 걸 한 번에 하려니까 끝없는 대장정이 되는 거라고 한다. 피아노 안의 현들을 하나하나 매만지며 음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피아노와) 이상한 동질감을 느꼈고 - 이 피아노는 나와 태어난 시기가 비슷하다 - 내 삶을 이렇게 조율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변화, 전환이라는 말보다 조율이라는 말을 더 애정하게 된 것 같다. 작지만 귀한 변화겠다.


이렇게 몇 마디를 쓰다가 1월 3일이 와 버렸고, 다시 밤이 넘어가는 중이다. 뭔가 '잘'이라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리 쉽게 이렇게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다만 내가 염원하는 건, 깊고 기쁜 마음이 주욱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하는 것. 순간의 소중함을 계속 감각하면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곁을 살피면서 가는 것. 생명은 살아간다. 사랑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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