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5. 야옹 센세

by 노마 장윤석

오대산 기슭에 살게 되고 좋은 것이 하나 있다면 곳곳에서 손님이 방문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강원도 어딘가라는 물리적으로, 심적으로 낯설고 먼 거리를 헤치고 달려와주는 사람은 반갑기 그지없다. 자연스레 피어나는 환대와, 자연스레 찾아오는 관계의 깊이를 느끼다 보면 이 공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오늘은 참 귀한 손님이 오셨다.

야옹 센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를 이경룡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어쩐 일로 내가 다닌 고등학교와 인연이 닿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선생님은 첫인상부터 참 귀엽고 편안한 할아버지(?) 셨다. (좋은 의미로) 이렇게 나이가 안 들 수 있을까 싶은 그런 푸근한 멋쟁이 할아버지 선생님. 대부분의 시간은 선생님이 기증한 책으로 한 층을 이루는 원형 도서관에서 보내셨고, 다른 시간에는 소일거리처럼 아이들을 가르쳤다. 정규 수업 교과목을 맡은 건 아니지만, 둘셋 삼삼오오 책을 같이 읽고 언어 공부를 하고 그런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은 어림잡아도 열 개 가까이(혹은 그 이상) 하실 줄 알았다. 어떻게 그 많은 언어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엔, 사시사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하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 답이 나와 있었다. 공부라는 단어 앞에 어떤 단어가 오는지에 따라 말맛이 참 달라진다. 시험공부도 있고 인생공부도 있고, 즐거운 공부도 있다. 여하튼 하여튼, 그다지 성실하지만은 않았지만 선생님과 읽었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원서와 간간히 읽고 나누었던 사르트르 같은 철학 책은 내 삶에 큰 파동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긴 줄 알았지만, 지나 보니 너무나 짧은 3년이었다. 당연히 그땐 선생님과 같이 일상을 보내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건지 잘 몰랐을 거다. 지금 내가 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10년 정도의 시간 동안 겪은 이야기들이 있을 거다.

학교를 졸업하자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애당초 올해 일흔다섯을 맞은 할아버지가 카톡을 쓰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고, 원래 선생님의 집이 있는 교토로 돌아가셨으니까. 역시나 늘 바쁜 척을 하게 되었고, 선생님도 선생님의 시간을 보내셨을 것이다. 잘 살겠거니 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누가 유학을 떠나거나 변고가 생겼을 때 서울이나 전주에서 애들이랑 잠깐 얼굴 뵙는 게 다였다. 선생님과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간만에 해본 것은 아마 2020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남원의 실상사에 지리산 정치학교 참가차 갔다가 우연히 오하이요를 통해 선생님 안부를 들었다. 한쪽 눈이 안 보이신다고. (아마도 책을 못 읽어서) 우울해지셨고 몸과 마음 모두 시름시름 아파가신다고. 남원에서 순천까지 끽해야 2시간일 텐데 이 걱정되는 안부를 듣고도 아니 갈 수 없어 다른 일정들을 날리고 남쪽으로 향했다. 한쪽 눈이 잘 안 보이는 선생님의 얼굴을 그때 처음 보았다. 누가 봐도 아파 보였다. 작은 단칸방에 독일어 사전 라틴어 책 같은 것이 널브러져 있었고, 간촐한 세간살이가 있었다. 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모습만 봐 왔는데,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선생님을 보게 된 것 같았다. 그날 나눈 이야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나에게 고맙다고 했던 것 같다.

그다음 만남은 2022년 겨울이었다. 뉴진스 Ditto가 막 나왔을 무렵, 선생님의 집에서 같이 며칠을 보냈다.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가족이 살았던 교토 집을 그때 처음 봤다. 선생님 집에 쌓여있는 책들과, 청빈한 살림살이를 보면서 나는 이다음에 어찌 살게 될까 곰곰이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젠가 저녁 한 끼를 사고 싶다고, 소바집에 가서 선생님께 국수 한 그릇을 대접했는데 그게 좀 뿌듯했던 것 같다. 선생님과 오랜만에 만나면 이런 식이다. 나는 그간 새로이 알게 된 것을 쫑알쫑알 자랑하고, 그럼 선생님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세상에) 특유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표정으로 이것저것 질문하고 언어적 기원을 찾으러 떠났다가 이것저것 공부해 보라고 권해주신다. 나는 내가 부처님 손바닥 안이구나 싶어 피식 웃다가도, 선생님과 같이 이것저것 나눌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게 즐거워 미소가 피어났다. 어떤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어떤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석사를 입학했다고. 이번에 박사를 간다고. 이런 근황을 나눌 수 있는 게 기분이 좋았다. 어떤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어떤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석사를 입학했다고. 이번에 박사를 간다고 등.

2023년 신 샘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상실에 대한 감각이 그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괜스레 선생님 걱정도 시작했는데, 2025년 초에 보낸 신년인사에 아무런 답장이 오지 않아 초조해하며 선생님 안부를 수소문하기도 했다. 카톡 아이디를 바꾼 것으로 결론 났지만, 사람은(그것도 연세가 많은 이들은) 언제 떠날지 모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능한 한 자주 찾아뵈어 관계를 이어가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작년에 후쿠시마에 갈 때 어떻게든 교토에 들렸던 건데, 선생님은 한국에서 친척이 돌아가셔서 길이 엇갈려 버렸다. 그래서 아쉬움만 가득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한국 기행을 오셔서 강원도까지 선생님이 이르게 된 것이다! 종일 집을 정리하고, 저녁 내내 김치찌개를 끓이고 계란찜과 가지스테이크를 구웠다. 정성 담은 한 끼를 대접할 수 있어서, 그것을 맛나게 선생님이 드셔주셔서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오늘의 저녁에 나눈 이야기도, 잘 정리해서 올려봐야지 싶다. 내일의 대화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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