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를 읽고

by 노마 장윤석

역사학과의 거리두기에서 헤어나오기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2010년대 초중고교의 한국사 수업이나 싸이월드를 포함한 SNS에서 자주 눈에 띄었던 글귀로, 유행의 계기가 된 〈무한도전〉에 나온 뒤 단재 신채호의 명언으로 알려졌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그의 저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윈스터 처칠이라는 등 각종 기원설만 난립하고 있다. 이 글귀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만 살펴봐도 역사라는 것은 그렇게 말끔하지 않고 여러 의견이 난립하는 하나의 복잡한 범죄추리와 같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과거 혹은 현재의 ‘사실’ 자체를 다루지만 아무도 사실 그 ‘사실’을 보지도 살지도 못한 채로 ‘사실’들을 엮고 꿰어 해석하고 설명한다는 점에서 역사학 자체가 가지는 어려운 난점과 고민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간 스스로를 과학의 영역으로 ― 뉴턴 시대의 고전 과학이겠지만 ― 위치시키고 싶었던 실증적 성격이 강한 사회과학이 ‘역사학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한 ‘역사’는 이해 못할 것만은 아니다. 사회과학이 인문학의 꽃 ‘문사철’과 구별짓기 및 거리두기 해온 ‘역사’ 자체가 하나의 탐구 주제라고 생각한다.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의 1950년도 강의록을 읽으며 이 패턴이 인류학의 역사에서도 드러났던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사회인류학을 자연과학으로 보는 시선과 인문(과)학으로 보는 시선을 소개하며, 진화론적 인류학과 계몽주의의 전통에 기반한 기능주의 인류학에 대한 “단지 진화의 개념이 진보의 개념으로 바뀌었을 뿐(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 1998: 19-20)”이라며 성찰어린 비판을 일삼는다. 그가 인용하는 마이트랜드의 문장 “인류학은 역사학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 어느것도 아닌 학문이 될 것인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인류학과 역사학의 관계를 재정의하고자 한다. 역사학과의 거리두기에서 헤어 나오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역사학과 연결되고자 하는가


하지만 이는 단순히 거리두기에서 헤어 나오고자 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소 강한 논조로 “사회인류학과 역사학 사이의 방법과 목적에는 어떠한 근본적인 차이점도 없다(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 1998: 24)”고 강조하고, 이렇게 덧붙인다.


“사회인류학이 일종의 역사학이라는 점,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일종의 철학 또는 인문학이라는 점은 사회인류학에서는 사회를 도덕적인 체제로서 연구하는 것이지, 자연적인 체제로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인류학에서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구조에 관심이 있으며 결국 과학법칙이 아닌 패턴들을 찾아, 설명하기보다는 해석하는 학문 분야이다(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 1998: 27).”


나는 전반적으로 에번스-프리처드의 계몽주의, 기능주의 비판에 공감하고 인류학과 역사학과의 재연결을 주장하는 생각에는 비슷한 사유의 결을 가지고 있지만1), 다른 한편으로 ‘사회를 자연적인 체제가 아닌 도덕적인 체제’로 설명하는 다소 분법적인 논리에 고민이 생긴다. 논의에서 한 발짝 벗어난/나아간 질문일 수 있지만, 어떤 역사학과 연결되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인다. 이를테면 자연과 문화를 나누어 보는 이 단순한 주장은, 그간 ‘(좁은 의미에서)인간사’만이 아니라 생태·환경사를 다뤄온 역사학의 맥락과 대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 역사가 클라이브 폰팅(1991)은 환경사의 고전이 된 저작 『녹색 세계사(이진아 옮김, 그물코)』에서 역사를 “다양한 식물과 인류를 포함한 동물이 상호 의존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과정”으로 설명하며 사회의 흥망성쇠가 생태·환경과 맺고 있는 관계를 조명하고, 이스터섬의 문명이 붕괴한 까닭은 삼림 벌채로 인한 환경 파괴라는 유명한 예시를 든다. 이와 같이 생태·환경사 연구를 살피면, 자연과학의 데이터 수집과 연구 방법 및 ‘설명’ 또한 역사학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현대 자연과학의 여러 기술과 방법은 기존에 불가능했던 역사학의 연구 범위를 크고 넓게 확장하도록 이끄는 측면 또한 존재한다. 이 지점을 고려한다면, “인류학자들이 역사학의 토대 위에서가 아니라 자연 과학의 토대 위에서 스스로의 모델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던 탓(19-20)”을 비판하더라도 그 토대를 완전히 내쳐버리거나 등한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배움은 충분한가


다시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장으로 돌아와 보자. 어쩌면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역사의 중요성 또한 주입식 교육의 한 자락에 포함되어 의무적으로 배우고 내재화한 학창시절을 보내온 나를 포함한 대개의 학생들은 이 말에 다소 양가감정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특히 사회과학이나 (문화상대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인류학 공부를 해왔다면, 이 땅에 넘쳐나는 어설픈 민족주의(국수주의에 가까운)와 과다한 민족감정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3) 분명 어린 시절에는 그 이상한 감정들이 내 안에서도 있었던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경우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아무래도 ‘역사’ 들어간 이야기나 접근에 이유모를 저항감이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과다한 민족감정이든, 과다한 경계심이든 모두 알아차리고 경계해야한다고 본다. 오늘 다룬 바와 같이 인류학 연구에 있어서 역사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연구자에게 미래가 있을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한 발자국 더 나가자.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탐구를 우리는 충분히 하고 있을까?

사회과학에서 인류학으로 배움의 터를 바꾸면서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사회과학과 마찬가지로 어렴풋하게 보이는 지점이 있다. 이를테면 이번 학기 듣게 된 수업의 읽기 자료 가운데 (그간 숱한 사회과학 수업에서처럼) 번역서가 아닌 것이 영 드물고 ‘역사 있는’ 국내 자료는 찾아보기는 어렵다. 학기가 끝날 때 즈음이면 영국(및 유럽)과 미국이라는 쌍두마차가 견인한 인류학의 이론과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배우게 되겠지만, 우리 ― 비단 남한만이 아니라 연결된 언어·문화·역사로서의 자문화 ― 의 이론과 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그렇기에 근래의 국가폭력에 대해 배우고 나누는 수업 과정이 반가운 면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대한제국( 이후’로 설정한 역사 연구 범위에 대해서도 작은 질문이 있다. 이를테면 마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의 역사 분석에서 1795년 스피넘랜드 법 시행이 ‘사회’ 발견의 전후를 가르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나는 우리의 역사에서는 19세기 말 대혼란의 시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본다. 특히나 국가폭력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 시대 국가폭력의 기원’(거대한 전환의 부제가 우리 시대 정치 경제적 기원)까지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897년 대한제국’ 이후라는 연구 범위를 3년만 앞당겨 주시길 부탁드려본다(웃음).5)



1) 그가 비판하는 “자연 법칙은 인간의 본질을 연구함으로써 만들어지고,” 이는 “모든 사회에서 인간의 본성은 항상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며, “무한한 발전과 진보의 법칙을 신봉”하여 “인간은 정해진 발전의 단계를 거쳐 일정하게 발전한다는”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 1998: 11) 사회 연구의 흐름은 (인류학과 사회학 내에서 모두) 파훼된 지 오래지만, 아직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강한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3)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덧붙여 둔다. 모든 역사적 비극에 느끼는 슬픔은 당연하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위안부 문제와 한국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등 가해와 피해 주체의 구분 이전에, 역사에 새겨진 모든 비극에는 마땅히 슬퍼하고(애도하고)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 슬픔과 분노가 혐오와 복수 등 또 다른 비극을 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든다면 우리는 과감히 그 점을 넘어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평화학의 논의 주제이고 이에 대해서는 갈등전환에 대해 섬세하게 다룬 다음의 저작을 권한다. 존 폴 레더락, (김가연 옮김), 2005 (2016), 『도덕적 상상력』, 글항아리.

5) 이에 대해서는 먼저 김동춘, 2006, 『전쟁과 사회』; 2000 『근대의 그늘』 등 참조. “김(동춘) 교수 등이 생각하는 ‘백년’의 기점은 한반도 근대의 출발점이자 전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펼쳐보였던 1894년 동학혁명이다. 그가 말한 “강요된 식민지적 근대화, 서구 따라잡기(추종), 국가주의, 물질만능과 인간 존엄성 경시”의 “뒤틀린” 지난 100년은 동학혁명이 일제 등 외세 개입과 내부 역량 부족으로 실패하지 않았다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근대화와 인간 존엄성을 중시하는, 그와는 전혀 다른 100년이 될 수 있었다. (한승동 기자, 2016, “뒤틀린 근대사 되풀이 않도록 새로운 100년 준비”, 한겨레.)



참고문헌

-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 (최석영 편역), (1998), “사회인류학의 회고,”『사회인류학의 과거 현재와 미래』, 서경문화사, 9-31쪽.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김진욱 옮김), 1983, 『구조인류학』1장 “역사학과 민족학,” 종로서적, 3-30쪽.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송태현 옮김), 2003,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13장 “역사의 쓰레기통 속에서,” 강, 187-196쪽.


* 이 글은 2026년 3월 12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류학 전공 수업 <인류학과 역사연구(정헌목)> 과제로 제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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