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마음의 생태학
그레고리 베이트슨(1904-1980)은 이 책 『마음의 생태학』에서 시스템 이론과 생태학에서 나온 새로운 인식론을 바탕으로 ‘마음’이라 부르는 관념들의 집합에 대해 ‘마음의 생태학 또는 관념의 생태학’이라는 사고 방식을 제안한다 ― 그의 제자 피터 해리스 존스는 이를 순환적 인식론 또는 생태학적 인식론으로 부른다. 하지만 그 새로운 사고 방식을 따라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는 기존의 정신분석학과 정신의학과는 사뭇 다른 ‘마음’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이 저작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잠깐 읽다가 동그란 동공과 물음표만 안고 다시 책을 덮었던 게 떠오른다. 이 책은 (책장을 열기 전 기대했던 바와 달리) 익숙한 생태학이나 생태주의에 대한 책도 아니었고, 또 심리학이나 마음공부 책도 아니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혼잡한 글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카테고리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 책 자체가 그가 제안한 사고 방식을 드러내는 아주 독특한 구성물이다. 어쩌면 우리가 익히 기대했던 책은 어떤 탐험가가 어떤 과정과 고민을 거쳐 어디에 다다랐는지에 대한 일종의 여행기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탐험가는 탐험이 끝날 때까지 자신이 탐험하는 것에 대해 결코 알 수 없다(32)”고 말하둣이 탐험을 끝낸 ― 혹은 멈춘 ― 탐험가가 그 기록들을 엮고 또 엮어서 일종의 (탐험이란) 과학의 일반 법칙을 코딩한 것에 가깝다. 인류학, 정신의학, 생물의 진화, 유전이라는 네 가지 주제와 시스템 이론과 생태학에서 나온 새로운 인식론을 결합한 탐험론 ― 탐험기가 아니다 ― 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횡단해 온 삶과 연구의 ‘단계’들을 이 책에 독특한 카테고리에 따라 배치했고, 그 시작이 제1부 메타로그다.
스님: 저 소리가 들리느냐?
행자: 네. 졸졸. 물소리가 맑디맑네요.
스님: 이놈아 그게 왜 물소리냐! 왜 돌소리라고 하지는 않고? 물이 돌이랑 부딪혀 소리가 났으니 물과 돌 소리라고 해야지.
- 현기스님과의 대화 중
불확실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인식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대화 ― 커뮤니케이션 ―뿐이다. 읽기나 듣기는 인식의 기본을 이루고, 관찰이나 실험은 인식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지만, 그 해석을 통해 기본 원리를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재인식하기까지의 과정은 대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것은 비단 인간이 ‘이야기의 동물’이어서라는 비유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 『성경』, 『논어』등 성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오래된 책의 시조들이 문답 형태의 ‘메타로그’로 기록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만 알고 배울 수 있다.
아편이 사람을 잠들게 하는 ‘원인과 결과’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의 박사들이) “아편에 최면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38). 사람과 아편의 상호작용에 주목하는 대신에 귀납법을 지나치게 선호해 내놓은 대답이다. 이는 메리 캐서린 베이트슨이 말하듯 “우리는(가) 존재,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덜 익숙한 상태(8)”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이렇게 “형태와 물질 간의 고대 이분법에서 잘못된 쪽에 다리를 놓으려 했”던 과학적 경향을 ― 자신과 동료들을 포함한 ― 비판하며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와 물질의 보존 법칙은 형태보다 물질에 관여한다. 그러나 정신의 과정이나 개념, 커뮤니케이션, 조직, 분화, 패턴과 같은 것들은 물질보다는 형태의 문제다(45-46).” 베이트슨은 이 고대의 이분법/전통적3) 이원론을 넘어서 ‘상호작용’에 계속 관심을 기울인다. “생명과 행동에 대한 사실들[자연이 작동하는 방식]과, 패턴과 질서의 본질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인간이 생각하는 방식]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하는(46)”것이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태제로 요약된다: “세상의 주요 문제들은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과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The major problems in the world are the result of the difference between how nature works and the way people think.”4) 그는 상호작용 하지 않고 단절되거나 오해되는 이 차이에서 여러 비극이 일어난다고 보았던 것 같다. “배르사유 조약(1919)의 왜곡에서 생긴 나치즘과 파시즘의 병리 … 매카시 시대와 냉전 시대의 병리(10)”부터 “지구온난화, 오존층의 파괴, 그리고 먹이 연쇄를 통한 독극물의 전 세계적 이동(20)”, 전쟁과 군비증강까지 그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여러 문제의 근원을 이 지점에서 찾고 “더 나은 인식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20)”고 한다.5) 메리 캐서린 베이트슨이 말처럼 “확실히 비가역성이 우리 모두를 둘러싸고 있(20)”는 시대다. 어떤 면에서 연일 확전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 어떻게 베이트슨의 궤도에 응답하고, 공감하며, 행동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3) “마음은 과정과 패턴을 위해 배열된 다수의 물질적 부분들로 구성된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마음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물질적 기초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육체에서 마음을 분리하거나 물질에서 마음을 분리하는 전통적 이원론은 잘못된 것이다. 마음은 다수의 유기체들뿐만 아니라 살아 있지 않은 요소들도 포함할 수 있으며, 잠깐뿐만 아니라 장기간 동안 기능할 수도 있으며, 반드시 피부의 외피와 의식 같은 경계에 의해 정의될 필요는 없다(14).” 참고.
4) Nora Bateson, 2010, 〈An Ecology of Mind〉. http://www.anecologyofmind.com/index.html
5) “모든 문제는 너와 나를 갈라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 씨알 함석헌의 이해를 같은 궤도로 살펴볼 수 있을까?
참고문헌: 그레고리 베이트슨, 김대식 역, 1972/2006, 『마음의 생태학』, 책세상, 서문-제1부(7-140쪽).
* 이 글은 2026년 3월 18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류학 박사과정 수업 <인류학의 쟁점 2 (조일동)>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