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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Dec 01. 2018

끄적임 여섯

외로움

나갈 채비를 했다. 따뜻한 내 방이 마냥 따뜻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하루 일과가 분명하지 않은 백수에게 정오는 잔인한 시간이다. 불안감이 엄습해오면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힘들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것 같다. 무얼 해도 마뜩잖다.


요새 왜 휴학을 했는지 뚜렷이 기억나질 않는다. 공부와 휴식이라는 두 개의 축을 가졌던 것은 기억해냈다. 하지만 하나라도 제대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못 다 읽은 국부론을 읽고, 미시경제학 F의 뼈아픈 경험을 떠올려 수학의 기본을 다지고, 고비에서의 수모를 갚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잔뜩 수집하기만 해 놓은 책들을 읽어내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다. 애초에 과하게 마음먹었던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성과가 없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쓰고 싶은 것도 많았다. 여행기를 쓰고 영화평론과 서평을 쓰고 각종 에세이들을 쓰고. 한 번 낙방했던 브런치의 작가가 되었지만 ‘작가’라는 이름을 단다고 만사형통은 아니었다. 매거진만 여러 개 만들어놓고는 각각 서너 개도 채우지 못했다. 얻은 것이 있다면 세상일은 절대로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뿐이다.

그래. 공부야 차차 해가면 되지. 고작 몇 개월로 아등바등한다고 쓱싹 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잘 쉬었나? 푹 쉬고 다시금 서울생활을 해나갈 힘을 얻었다면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 나는 이따금씩 찾아오는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버티기에도 벅차다. 채식과 운동을 했었지만 이 또한 그만두었다. 고부라진 자세와 뻣뻣한 몸 그리고 나약한 체력이 나에게 ‘넌 건강하지 않아’하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슬프게도 끄적거린다는 미명 아래 일도 하지 않아 모아둔 돈 조차 없다. 돈이 없으니 움츠러든다.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기가 죽는다.     


이상하게 외롭다. 애인과 헤어졌고 옆구리 시린 건 맞지만 단순히 그런 류의 연말특선 외로움 만은 아니다. 이 외로움은 친구가 없다는 데서 오는 것 같다. 하나 있던 동네 친구 나라 지키라고 불려 갔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 고작 한 시간이지만 엄청난 거리감에 차마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다.

이상하게 추억팔이를 시작했다. 원래는 잘 안했는데. 기숙사에 살면서 친구들과 밥 해 먹을 때가 그립다. 뭣도 모르는 새내기라 이것저것 발 담근 게 많아 무척 힘든 학기였지만 지금은 그립다.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못 간다고 할 그 힘겹던 때가 왜 그리운지. 그 지겹던 기숙사 주방이 왜 문득 생각나는지. 확실한 것 하나는 분명 힘들었던 시기를 같이 보내며 함께 징징거릴 친구가 있었다는 것.    

따자하오도 드문드문 떠오른다. 따뜻한 자본주의를 만들어 보자고 따자하오라 팀명을 지었다. 경제학개론 수업은 우리끼리 했던 농담, ‘9학점 같은 3학점’처럼 과제도 많았고 시험도 빡셌다. 어느 주엔가는 하루 빼놓고 모두 모였던 적도 있었다. 가뜩이나 장거리 통학하는 처지에 학교를 매일 와야 한다는 건 피곤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그때 참 좋았다. 맥주들고 수목원에 갔던 거, 한 모금 마시고 얼굴 빨개져 놀렸던 거, 피츠버그홀에서 국부론을 펴놓고 피아노 치면서 농땡이 친 거, 세미나 한다고 모여서 닭강정 먹으면서 노가리 깐 거, 시험 전 주에 자취방에 오순도순 모여서 놀다가 쭈그리고 잔 거 모두.


한 번 맺은 인연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을 안다.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간다는 것을 안다. 가끔의 카톡이나 SNS가  따뜻한 밥 한 끼와 같이 노나 먹던 벤치의 맥주를 대신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안다 하더라도 감출 수 없는 아쉬움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그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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