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두운 그림이 왜 이렇게 눈물겹도록 따스하게 느껴지는 걸까
좌혜선 작가님은 내가 처음으로 펜레터를 써본 유일무이한 작가이다. 브런치 피드를 훅 넘기다 본 그림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미학 쪽에는 워낙 문외한이라 그간 교과서에 나오는 명화들을 봐도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혜선 작가님의 그림에는 번개 내려치듯 꽂혀버렸다. 유례 없던 일이라 얼떨떨할 따름이다. 그런데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내가 번개를 맞아버린 그 날은 작가님의 <가장 보통의 이야기> 개인전이 끝나버린지 딱 이틀 뒤였다.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좋다!'를 넘어선 무언가를 '숨이 막힌다'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숨이 막히는 것만 같다. 먼저 감동이 슬며시 올라와 눈가가 촉촉해지고, 벅참에 견디지 못한 심장이 쿵쿵거리며 몸이 경직되면 고도의 긴장에 다다른 탓인지 숨 쉬는 걸 잊어버린다. 세상에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숨 쉬는 걸 깜빡하면 어쩐담. 이십여 초를 숨죽인 채 있다가 뇌가 산소가 부족하다고 윽박지르고 나서야 숨을 몰아 쉰다. 참 이상야릇한 경험이다. 많이 해보지는 못했다. 딱 떠오르는 건 천왕봉에서 본 일출, 드넓은 바이칼 호수, 고비에서 본 별밤 정도. 가끔 책을 읽다가도 그러기야 하지만 대자연이 주는 임팩트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헌데 좌혜선 작가님의 그림에서는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턱턱 숨이 막혔다. 그림을 보고 그런 건 처음이라 의아했다.
넘쳐나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펜레터라는 걸 적어보았다. 유례 없는 상황이 유례 없는 행동을 낳았다. 마침 고비를 다녀온 직후라 그림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언어라는 게, 글자라는 게 참 좁은 녀석이라는 생각을 했다. 화폭에 담을 수 있는 건 훨씬 무궁무진했다.
"혹여나 하나의 메시지가 힘이 될까 하는 마음에 적어봅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작가님의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림을 보고 덜컥했습니다. 단어가 서툴어 표현키는 힘들지만, 이상한 느낌이 저를 휘감았네요. 아쉽게도 아라리오 갤러리 개인전은 끝났더군요. 조금 더 일찍 알지 못한 게 유감입니다. 최근 다녀온 여행에서 어쩌다 방랑 화가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막연히 가졌던 화가의 꿈이 절 자극했나봐요. 부족한 실력이지만 즐거워서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몽골 국립미술관, 베이징 798예술구의 거리들을 다녀왔는데 작가님의 그림이 제일 좋았습니다. 어둡고 쓸쓸함 속에 온기가 죽지 않고 남아있는 게 좋아요. 이런 감동은 사뭇 오랜만이어요. 언젠가 다시 개인전이 열린다면 꼭 찾아가고 싶습니다. 앞으로 그림을 배울 계획인데 작가님의 그림을 자주 들여다볼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고맙습니다."
"감사드려요. 깊이 이해해 주셔서 작품을 만든 저로써는 그저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입니다. 귀한 말씀 주셔서 다시 화판 앞에 설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다시 열심히 작품 만들어 인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세 달 전 썼던 펜레터와 작가님의 답장이다. 며칠 전 다시 작가님께 펜레터를 썼다. 이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3호선에서 있었던 일>, <가방 문 열리셨어요> 글을 쓰면서 나는 작가님의 그림을 한 점씩 첨부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그 그림 안에 담겨있는 듯했다.
좌혜선 작가님의 그림에 미약한 평을 해보려 한다. 우선 작가님의 그림은 전반적으로 어둡다. 캔버스의 네 귀퉁이가 모두 검은 목탄으로 칠해져 있는데다가 그림의 시점은 주로 석양이 질 무렵 이후의 밤인 듯하다. 낮이라 하더라도 그림자의 칠흑 같은 어두움에 이게 낮인지 밤인지 긴가민가 하다. 단순하게 면적 대비로 환산하더라도 캔버스에서 검은 부분이 차지하는 면적이 훨씬 넓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가. 작가님이 그려낸 인물은 대부분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옆모습 혹은 앞모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표정이 없다. 뒤통수를 보여주는 검은 인물의 무표정. 짐작할 수 없는 인물의 표정이지만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어둡고 무표정의 그림. 그러나, 절대 차갑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죽음이 아닌 삶을 본다. 따라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역설적이게도 그렇다.
무척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나는 좌혜선 작가님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장광설을 늘여놓았다.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친구야!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자칫 공허해지기도, 이상에만 머무르기도 너무나 쉬운 말이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숙명처럼 세상을 바꾸고 싶어져. 내가 이 지구라는 별에 떨어지기 이전에 진 빚을 이렇게 갚아나가고자 해. 하지만 서울은 너무 괴로운 곳이야.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기도 벅찬 곳이야. 매일같이 미세먼지가 불어닥치고, 살인적인 집값에, 무정하고 야박한 사람들. 이웃 하나 없이 자본주의의 굴레 속에 돈만 남아 돌아가는 곳. 풀 한 포기 발견하기 쉽지 않고 보이는 나무라고는 차의 매연에 신음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가로수뿐. 이곳에서 나는 살 수 있을까. 이 곳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무언가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나의 불행을 담보로 해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좌혜선 작가님의 그림에서 나는 용기를 얻었어. 분명 서울은 삭막하고 차가운 얼음 도시야. 온갖 부조리가 차고 넘치는 곳이지. 하지만 그런 곳이기에 남아있는 온기와 피어나는 사람들의 정이 가치 있는 게 아닐까. 끝이 보이지 않는 시지프스의 굴레에 매여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그토록 가치 있고 아름다울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 나는 좌혜선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밤, 엄마> 그림의 어둠 가운데 있는 붉은 온기를 넓혀나가는 게 나의 숙명이겠구나 하는. 온기를 곳곳에서 피워나가 마침내 흑빛을 따스하게 물들이는 게 나의 역할이겠구나 하는.
나는 좌혜선 작가님이 세상을 똑바로 직시했다 생각해. 서울의 냉혹함을, 차가움을, 어두움을 그대로 담아냈다고 생각해. 소름 끼칠 정도로. 그러나 작가님은 이 도시를 마냥 차갑고 어두운 곳으로는 그리지 않아. 작가님은 항상 그림에 온기를 남겨두어. 빛을 남겨두어. 전체의 어두움에는 비할 바 없이 작은 빛이고 밝음이지만 그래서인지 더 소중할지도 몰라. 그녀는 절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아. 오히려 희망차게 보고 있어. 이 어두운 그림이 왜 이렇게 눈물겹도록 따스하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벅찬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사회과학을 전공하면서, 서양의 언어와 인식틀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르고 분석하고 재단하고 평가하는 일은 불가피하지만 '나'의 생명을 깎아낸다. '구조주의자들의 끝은 자살이었다.'는 명제에 공감할 수 있었던 지난날이었다. 도시의 냉담과 섬뜩한 부조리를 그려낸 그림은 많다. 너무 적나라해서, 그로테스크해서 심장이 철렁하는 그림도 있다. 모순을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기법은 분명 충격적인 효과를 내지만 나는 그런 그림을 좋아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그림은 세상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 생각한다. 부조리의 단면만을 고발하고 있을 뿐이다. 고발의 사회적 의미는 크지만 고발만이 가득한 세상은 살아갈 곳이 못 된다. 그리고 세상은 분명 부조리하지만 부조리하지만은 않다.
머리는 차갑게 마음은 따뜻하게 라는 말처럼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마음 속에는 믿음과 희망으로 충만한 사람이고 싶다.
모든 그림은 '아트온라인', '아라리오 갤러리' 사이트에서 퍼 왔습니다. 저작권은 좌혜선 작가님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