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 이석원
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보통. 보통에 만족할 수 있을까. 난 아니다. 요 근래 있었던 우울의 원천은 1인분도 고작인 하찮은 몸뚱이와, 천 인분 만 인분을 꿈꾸는 이상과의 깊디깊은 간극이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식상한 명언을 변주하자면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큰 게 나란 사람이다. 내 스스로가 세상의 넘쳐나는 칠십몇억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은 우울하기만 하다. 어느 부분이든 어떤 영역이든 특별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참 자주 인다.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과도 같다. 그러다 보니 꿈과 이상을 가지지 않고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사는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어느샌가 잊어버렸다. 애초에 우리의 교육이 가르친 것이라고는 1등을 향해 질주하는 것 밖에는 없기도 하고 말이다. 잔뜩 꼬인 ‘경쟁’ 원리로 꽉꽉 들어차있는 우리가 ‘보통’에 만족할 수 있을까. 4,5 등급이 찍힌 성적표를 받아 들고 “음 이 정도면 보통이군! 좋아!”라 말하는 친구는 본 적이 없으니. 주위를 보면 특출함이 넘쳐나는 인간들이 보인다. 뭘 해도 잘하는 만능인이 있는가 하면 힙함이 온곳에서 묻어나는 우주힙쟁이도 있고 낭만과 철학으로 중무장한 멋쟁이도 있다. 몽냥님 말을 빌려 '나는 우주의 조빱인걸까'하는 생각이 인다. 조빱이고 싶지 않은데, 특별한 사람이고 싶은데, 그냥 보통의 나라도 사랑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푸념은 일단 이 정도로 하자. 책으로 돌아와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는 참 보통담담하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 책을 향해 ‘유서에서나 만날 수 있는 글쓰기’라는 평을 남겼다. 말처럼 이석원의 문체는 튀지도 강렬하지도 않다. (그럼 누가 튀고 강렬한가? 박민규와 밀란 쿤데라가 떠올랐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이 자신의 글을 꾸밀 리 없듯 이석원의 글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 이상의 수사여구는 없다. 인상에 팍 남는 문장도 없다. 다만, 이 보통의 이야기는 보통의 공감을 자아내 손이 가게 한다. 아마 이번에 읽음으로써 나는 그 어렵다는 서삼독을 해낸 것 같다. (이마저도 방금 깨달아서 놀랍다. 아마 국부론을 삼세 번 읽었다면 스스로 특별함에 잔뜩 도취되었겠지) 세 번 읽었다고 생기는 변화는 없다. 그냥 보통의 기분이다. 자주 입는 옷이 가장 평범하고 보통의 옷인 것처럼 앞으로도 이 책을 자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침고로, 이 책을 읽을 때는 기필코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앨범을 틀어야 한다.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니 명심하시길.
인상 깊은 몇 이야기들과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짓고자 한다. 신기하게도 읽을 때마다 좋았던 포인트가 다르다. 밑줄도 다르다. 사랑에 빠져있을 때는 사랑이야기에 노란 줄이 있고 그런 식으로.
<고통이 나에게 준 것> -90p
내가 만들어온 많은 것들은 불안과 고통의 산물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상력과는 무관하다. 나의 인생에서, 또 내가 속한 집안 환경 속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이 고스란히 나의 창작물이 되어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고통을 잊기 위해 8월의 폭염 속에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달리며 만든 다섯 번째 작품은 내가 만든 것들 중 가장 많은 성과를 가져다 주었다 (...) 현실은 고통스럽고 꿈속의 사막은 달콤하다. 그렇기에 나는 사막을 꿈꾸는 노래를 짓고 부른다. 고통이 아니었던들 내게 평화로운 삶 같은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생의 중요한 것들이 이처럼 고통 속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이 내겐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말과 선언>
왜 선언은 항상 선언에 그치고 마는가.
왜 말로써 세상에 던져지는 것들은 항상 현실에 의해 조롱당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걸까.
<여행의 시작>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과정의 간편함이란 언제나 결과물의 만족감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해 왔다.
끝의 덧없음을 깨닫지 않으리.
힘들더라도 나는 다만 최선을 다해 끝과 마주하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