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 버드나무를 보고 있다. 어느새 버들잎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있다. 그래도 마냥 앙상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떨어진 버들잎의 자리에 이름 모르는 작은 새가 날아와 앉았다. 잠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작은 가지를 배어물고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
이파리가 모두 떨어지고서야 가지들이 뿌리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무는 대칭인지도 모른다. 높게 뻗어낸 가지들만큼 깊게 뿌리를 내렸으리라. 한여름의 버드나무는 웅장하다. 바람이라도 슥 불면 사르르 사르르 소리를 내며 풍성한 머리숱을 흔들어 보인다. 그런 나무를 보아온 한 해 간 뿌리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째 저리 컸을고 하며 그 푸르름과 웅장함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그때 난 나무가 겪어온 억겁의 시련과 인고를 보지는 못했다. 보이는 대단한 것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더 대단한 것들이 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정신을 살피고 있다. ‘정리하다’는 표현을 자주 썼지만 정신이라는 게 정리될 수 있는 건가 싶어 그만쓰기로 했다. 흐트러지고 혼란스러운 것들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 질서 있게 만들려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이러다간 평생을 정리 중이겠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방이나 책상 정리나 열심히 할 일이다.
지금 이 끄적임이 별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모르겠다. 섣부른가 싶기도. 의미야 나중 가서야 있고 없고를 가늠하면 될 일이다.
- 2019.1.11 파주 영상자료원
선생님, 저는 잘 모르겠어요.
뭐가요?
그러게요. 저는 뭘 모르는 걸까요. 뭔지도 모르겠고, 나도 모르겠고, 세상만사도 모르겠네요.
…
선생님은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안쓰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랍에서 작은 알약병을 꺼내 내려놓았다.
그럴 때마다 한 알씩 드시고 푹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막막하고 답답하고 모르겠고. 곧 괜찮아질 거예요.
작은 병을 손에 쥐고 걸어 나오며 사는 게 다 그렇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전 흘려들은 노랫말 하나가 귓가를 빙빙 돌았다. 저의 존재는 무겁고 힘든데요… 로 시작하는 담담한 읊조림이었다. 존재가 무겁다. 몸이 무겁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거움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무거운 몸에 정신의 무게를 더한 것이 존재의 무거움일까. 몸이고 정신이고 어느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다.
습관처럼 방황을 하는 것 같다. 인생에 답이 없다는 느낌이 꽂히면 그때부터 방황 시작이다. 이 정도면 인생에 대해 갈피를 잡을 만도 하다마는 어째 모르겠다는 말이 알겠다는 말보다 수백 배는 잦은지.
곧 이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가 된 듯한 기분도 가시리라. 다시 삶의 굴레에 섞여 들어가 뭐라도 아는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되어 살아가리라. 젠장
- 2019.1월 친구와 쓰기로 약속하곤 망한 단편소설의 초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