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예술가들에게 남기는 편지
늦은 연락 남깁니다. 여러분과 함께해서 영광이었고, 간만에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는데 먼저 돌아가게 되어 아쉽습니다.
정말이지 여러분들의 열정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일 새벽 벌어지는 논쟁들 덕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사회학에도 조예가 깊으셨던 동헌 씨,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리고 있던 다인씨, 하루도 허투루 자기약속을 어기지 않는 시형씨, 세상에 대한 관심이 가득한 강욱씨, 이야기를 나눠보고 팠던 정석씨, 성찰이 짙으신 환성씨, 힙합에 대한 제 편견을 깨준 민혁 모두.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특히 동헌 씨의 공감과 인정이 아니었다면 이 캠프를 버티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혁의 존재 어린 공감도요. 새벽 네 시까지 구상을 공부하는 풍경은 그림으로 그렸다면 최후의 만찬 같은 역작이 탄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쓰다보니 더욱 아쉽네요..
제가 떠나는 것에 대해 선생님들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돌아가는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의 ‘무분별함’에 용서를 할 수 없다. 캠프 이래 남녀가 한 방에서 잔 적은 없었다. 부부조차 합방을 하지 않는다. 물의를 빚은 너에게 책임을 묻겠으니 돌아가라. 장정희 선생님의 단호한 결정이고, 다른 선생님들은 이 결정에 이견을 표하지 않으셨고, 저는 거절할 길이 없으니 짐을 싸 돌아갈 수밖에요. 너무 남고 싶었지만, 요지부동이셔 방법이 없습니다. 짐도 제대로 못 챙기고, 친구와 이야기 한 번 못 나누고 떠나 마음이 착잡합니다. 유추하시겠지만 심정적으로 착잡하다 못해 붕괴 직전입니다. 기대와 믿음, 그리고 사랑은 그것이 깨어질 때 그 크기만큼의 상처를 남기니까요.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일단 속초로 와 바다를 보고 있습니다. 다음 발길은 경주가 될 것 같습니다.
장정희 선생님의 ‘무분별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시대적 잔흔에도 동의하지 않고, 저를 남자로 보는 시선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는 캠프 참가 신청서 성별란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답니다. 의도치 않게 커밍아웃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저는 남자가 아닙니다. 간혹 말했다마는 아마 농담으로 들으셨을 겁니다. 이번 캠프로 저도 그간 긴가민가 했던 제 정체성을 확신하게 되네요. 성소수자 말입니다. 참고로 꼭 동성애자만 성소수자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존재하는 젠더만 서른 개가 넘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을 존경하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장정희 선생님의 결정이 어떤 논의와 절차 없이 그대로 진행된다는 것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잔뜩 울고, 커밍아웃을 하고, 남게 해달라고 부탁도 드렸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장정희 선생님이 결정에 이야기 한 번 없이 제가 가기를 명하셨습니다. 그 정도의 신뢰가 어떻게 가능한지 놀랍기도 하지만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여러분과 꼭 나누고팠던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데 이렇게 되어 참 착잡합니다. 꼭 드리고 싶었던 말만 남기겠습니다. 주제넘음을 용서하십시오.
이번 캠프에서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 싹텄습니다. 이 불모의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입니다. 최소 10년을 먼저 내다보고, 무엇이 아름다움인가를 본보이고, ‘자기’를 담아내는 작업은 정말이지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미’에 대한 열정은 저에게 크나큰 경탄을 자아냈으니까요. 자만, 예술가란 ‘자기’를 평면세계에 담는 것인 만큼,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기 안의 악을 나타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드러냄으로써 선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채로 드러나는 악 말입니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이야기를 꺼내자면, 무지는 악의 소산입니다. 모르는 것이 악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주십시오. 생각 않고 살아가는 것이 기득권과 자본을, 기존의 구시대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함을 알아주십시오. 제아무리 의도가 선하고 열정이 넘친다 한들 악은 악입니다. 고은 시인의 작업을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까? ‘미’, 그리고 ‘선’. 윤리는 예술가에게 특히나 중요한 덕목 같습니다. 감각을 기르느라 윤리를 놓치지 마십시오. 특히 자본주의와 페미니즘을 공부해 주십시오. 서있는 곳에 따라 보이는 게 다릅니다.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부장제의 언덕에 서서 세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동화되지 마십시오.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여러분들의 예술이 한 층 성장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세부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배려와 존중이 참으로 감사했지만, 그 공간에서 맘 편히 있지는 못했습니다. 알다시피 프로-불편러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말처럼 제 삶은 망가졌습니다. 어느 곳에 가도 불편하고 버겁습니다.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은 몇 안 됩니다. 슬프게도 말이지요.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 온갖 배려를 기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민혁과 저만 한 방을 쓸 수 있던 것처럼, 제 빨래를 개 주신 것처럼. 하지만 여러분들의 심성이 선하고 의도가 선하다 하더라도 저는 계속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간략하게 적자면. 육식 위주의 식사, 정육점 냉장고, 여성 혐오적 언사, 화장실 청소, 선-후배 관습, 나이 계급, 나갈 때 보일러-불, 분리수거, 청소가 있겠습니다. 제가 이렇답니다..
‘진정성’은 참으로 중요한 덕목이지만 때로는 무지-악을 포장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대의를 공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정성을 바탕으로 세상과 사회에 대한 공부도 같이 해나가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읽고, 수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면 쓰지도 않았습니다. 최근 각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성폭행 문제로 마음이 아픕니다. 내부 자정이 정말 정말 시급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토록 존경스러우신 황재형 선생님께서도 ‘창녀’라는 말을 공공연히 쓰시지 않습니까. 시대적 세대적 한계는 젊은이들만이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제 본 ‘스물’의 말을 빌리자면 ‘젊은 날의 의무는 시대의 부조리와 싸워나가는 일’이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을 믿겠습니다.
주제넘은 말이었지요. 말로 했다면 조금 더 진솔하고 생생하게 전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다시 한번 함께 지내 영광이었고, 남은 캠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심적 여유가 없어 전화는 못 받지만, 언젠가 다시 만남이 닿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