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과 정리와 이사
갈피를 잃었다가 잡았다가 또다시 놓쳤다가 가까스로 잡았다가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글을 쓰지 않은지 꽤나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고는 타자에 손을 올렸다.
다사다난, 이라는 단어로 저번 학기를 이름 붙였다. 정리되지 않은 이 녀석을 한 구석에 구겨놓고는 다시 꺼내보지 않았다. 정리해야지 해야지, 방학이 가기 전에는 해야지 하고서는. 개강을 맞고서야 이제야 꺼내본다. 마지막 끄적임인 열입곱 번째 끄적임은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은 끄적임이었다. 그 일은 상처들을 가득 남기고, 마무리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마음 쓰이는 일만 잔뜩 남겨놓았고 그랬다. 나는 처음의 다짐과 호언장담과 약속을 저버렸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스스로를 괴롭혔다. 마지막 끄적임에서 나는 변화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정혜윤의 말을 빌려 변화의 편에 선다고 당당히 말했었는데, 내가 내뱉은 그 말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한동안 숨어 지냈다.
개강을 했더니,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몸맘정신이 가지런히 정리된 상태로 이 마주침 들을 맞고 싶었는데 갑자기 개강을 맞아버려 그제 어제는 무거움 버거움에 시달렸다. 교정을 거니는 것이 어려워 사람들을 피해 다니게 된다. 낯가림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정도가 세다.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과 같이 수업을 듣는가 하면, 무척이나 애정하는 사람이 보이지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긴장한다. 참 다채롭게 버겁다.
정리를 하고 싶었다. 청소를 하고 싶었다. 완전히 새 마음 새 부대로 학기의 시작을 알리고 싶었다. 폰과 노트북의 파일들, 사진첩, 일기장과 갖가지 끄적임, 저번 학기의 필기들, 쌓아둔 이삿짐, 할 일 리스트, 끝내 못 한 말들, 못 다 쓴 글을. 낯선 사람을 맞을 마음가짐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건넬 환대의 마음가짐을 갖추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강박임을 안다. 대청소를 하려는 마음이 특히 그렇다. 저번 주에 갑작스레 급작스레 부리나케 이사를 했다. 촉박한 이사로 인해 정리되고 청소되지 않은 짐이 집이 나를 괴롭혔다. 안정되고 익숙해진 집에서 낯설고 새로운 집으로 쫓기듯 나오며 잊어버렸던 불안과 걱정이 다시 피어났다. 계속 머릿속에 해야지 해야지가 맴돌아, 견디다 못해 집 앞의 수목원으로 뛰쳐나갔다. 요 근래 ‘정리’를 머릿속에서 어림잡아 수백 번은 되뇌인 듯하다. 아마 내 불안과 걱정들을 해결해 줄 방도는 정리뿐이라 생각해서 그렇다.
깔끔한 시작을 할 수 없음이 아쉽다. 하지만 생이란 것이 깔끔할 수는 없는지라.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다 알지도 못할뿐더러 다 할 수도 없는 것처럼.
어쩌면 나는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러겠다. 이삿짐을 싸면서 내가 버리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인 걸 알았다. 버리면 쓰레기가 되니까. 버리면 잊혀지니까. 모아둔 플라스틱 용기에 각종 팸플릿들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이사를 했다. 근데 이는 물건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억들이 망각되어 가는 걸 아까워 어떻게든 일기장에 기록의 형태로 남겨놓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한 친구는 나를 기록 변태라 불렀다. 널 보면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알겠다고. 넘어진 거 기록하지 말라는 왕의 말에 그마저 기록한 사관을 나에게서 본단다. 스쳐가는 시간이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어떤 모양으로든 남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걸 완벽하게 온전하게 기억하고 담아두고 싶어 부단히 애쓰는 나를 본다.
믿음이 중하다. 내가 존재를 지속시키는 이 순간순간들이 나를 형성해가고 이뤄간다는 걸 믿는 것. 내가 듣고 보고 말하고 쓰는 모든 것들이 어떤 형태로든 어떤 모양으로든 남는다는 것을 믿는 것. 루미의 여인숙에 나오는 시구처럼 모든 손님들이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라 믿는 것.
잘 모르겠다. 안정과 균형을 찾았다가도 또다시 불안과 걱정의 늪에 빠져버리고. 사무치게 벅차게 기쁘다가도, 설명키 어려운 두려움과 불안에 우울해지고. 삶이 원체 이런 걸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걸까.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삶이라는 이름의 이 길을 용기 내어 걸어가겠다. 함께가자 이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