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 해변에서 은퇴 후를 생각하다

by 가을밤

잠시 포르투갈 포르토에 머무르고 있다.


몇 달간 휴가를 하나도 안 써서 그런지 독일을 떠나는 날 일말의 후회도 없었고 뒤도 돌아보기 싫었다.


공항을 자주 오는 사람으로서 매번 느끼는 바이지만 떠나기도 다시 돌아오기도 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저 손가락 하나 까딱해서 티켓 사고 가방에 짐 때려 넣으면 준비 끝이다. 짐 싸는 것도 이젠 도가 터서 눈감고 싸도 잊어버리는 게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정해진 날에 시간 맞춰 비행기에 올라타면 그만이다. 해외여행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일인 것처럼, 여러 나라에 걸쳐 인생을 보내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포르토 시내 전경 (출처=직접촬영)


이륙 세 시간 후, 난생처음 밟는 포르투갈 땅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단지 독일보다 좀 더 낡은 갈색빛의 건물이 많고, 사람들의 키가 작고, 날씨가 온화했으며, 햇빛이 안 드는 곳이 없다. 화창한 날씨만큼 사람들도 참 밝고 건물 여기저기 걸린 빨래가 정겹다.


많은 여행경험과 긴 해외생활 덕분에 새로운 나라를 가면 2-3일 안에 ‘여긴 충분히 살 만하겠다’ 혹은 ‘여긴 살기엔 영 아니다’는 각이 나오는데 포르토는 다행히 전자다. 정말 오랜만에 밀려오는 반가움에 내심 설레기까지 한다.



북대서양 해변에 맞닿은 포르토의 석양. (출처=직접촬영)


12월 한겨울에 웃통을 벗고 서핑을 하는 동네. 이 작은 도시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그 흔한 길거리 시비와 인종차별도 (아직까진) 없는 곳. 독일 살며 차별을 구분하는 짬이 늘어 차별 레이더망이 100단은 되는데, 여기 머무는 동안 레이더가 작동하지 않는다. 포르토를 떠나기 전까지 계속 쓸 일이 없으면 좋겠다.




지독하게 아시아식과 한식을 좋아하여 혹시나 싶어 라면국물 티백을 싸왔지만 현지 음식맛이 만족스러워 라면과 김치 생각이 안 난다. 음식과 인심마저 참 좋은 동네다.


스위스에 40년 넘게 살며 여태 자가를 마련하지 않은 한국인 지인이 있다. 그분은 은퇴 후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 남부 혹은 스페인에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자가를 마련할 생각이라고 한다.


여행과 이동이 이렇게 자유로운 시대인데, 발목 잡는 것들이 없는 은퇴 후라면 어디든 못 갈 이유가 있으랴. 내 맘 내 몸 편하고 음식과 날씨 좋은 곳이 최고지. 새삼 지인분의 말씀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보다 열 배는 크고 아름답다. (출처=직접촬영)

제목,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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